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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역사탐방] 이곳에 우리를 부르신 뜻 “+”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지난 1월 20일부터 25일까지 프랑크푸르트교회협의회 목회자들이 부부동반으로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하고, 목회자 세미나 및 회의를 가졌다. 특히 이번 일정 가운데는 예정에 없던 선교현장을 방문하는 기회가 주어져 생생한 선교 최전방의 모습을 살피고 벅찬 감동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오게 되어 무척 감사한 시간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교협, 이스탄불 탐방

이스탄불(Istanbul)은 현재 터키에서 가장 큰 도시로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운데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쳐있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불렀으며 오스만 제국 때까지 수도로 존속하다가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w-2013-03Tky-03프랑크푸르트교회협의회(회장 김용한 목사)는 2013년 정기총회를 역사적인 도시 이스탄불에서 열기로 정하고, 지난 1월 21일부터 25일까지 회의 및 목회자세미나 일정을 가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회칙에 의해 총회를 위한 성수가 부족했고, 회칙상 정해진 총회 개최 시기를 준수하지 않는 등의 절차상의 문제가 있어 총회를 진행하지 못한 채 대신 한국으로부터 초청된 강사 김대조 목사(주님 사랑의교회)의 세미나만을 가졌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오전과 저녁에 세미나를 듣고, 낮시간에는 이스탄불 역사탐방 및 선교현장 방문 등의 일정을 가질 수 있게 되어 그나마 큰 위안이 됐다.

도시 어디를 가나 모스크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스탄불을 돌아보며 강력한 이슬람 국가인 터키를 선교하는 일이 마지막 영적전쟁의 보루가 될 것을 예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한편, 이러한 현장에서 한인 사역자들의 그 수고를 잘 감당하게 해달라는 마음의 소원도 간절해졌다. 또한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볼수록 우리에겐 낯설지 않을만큼 한국민족과 비슷한 환경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다만 다른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서울에는 곳곳이 교회와 십자가가 보이는 것에 비해, 이스탄불에는 모스크가 곳곳에 빼곡히 있다는 점일 것 같았다.

인구 1천3백만 명이 넘는 대도시  이스탄불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기까지 1,000여 년 이상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려졌었다. 이 도시를 정복한 메흐메드 2세는 여기로 수도를 옮기고 동지중해를 지배하는 대제국의 중심지로 삼았다. 결국 이슬람교의 지배 아래 들어가자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포함한 많은 동방정교회의 성당과 수도원들이 강제로 접수되어 모스크 등으로 개조당했으며, 도시의 각 구역에는 술탄이나 귀족 등 유력자들이 설립한 모스크와 공공시절이 설립, 정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이스탄불은 터키인뿐만 아니라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그리고 서유럽 각국에서 온 상인과 사절 등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다문화 도시이자 동서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그런 탓인지 겉으로 드러나 보일만큼 강력한 이슬람 종교의 색채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 사역자들의 긴장감은 높았고, 그 현장을 돌러보며 피부에 와닿는 열악함이 매우 강한 것에 놀랐다.

아울러 독일과 터키와의 관계로 볼 때 독일에 있는 한인디아스포라교회가 터키 선교에 적극 나서는 것이 좋겠다란 자연스런 동기부여가 생기는 것이었다. 우리를 이곳에 부르신 뜻이 이것일까 내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현지인 교회 르포]

연약함이 만들어내는 큰 힘 “우린 씨를 뿌렸습니다”

w-2013-03Tky-05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이 흐를 뿐이었다. 목이 메였고, 할 말을 잃었다. 이게 현실이던가, 그저 상상으로만 다다랗던 선교의 현장이 그대로 다가온 순간 우리 모든 일행들은 순간 깊은 침묵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느낌을 맛보았다. 이름하여 샘물교회라는 현지인교회였다. 교인이 일곱, 여덟명 정도라 했다. 그들이 겨우 예배할 수 있을만큼 공간도 작고, 좁았다. 지하로 내려서는 계단을 통해 밖으로 노출이 된 교회당이었으나, 교회간판도 없이 문화센타라는 작은 안내판이 걸려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키며, 사역 중인 K선생은 언어장애를 가졌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장애는 사역엔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외형적인 조건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그는 억척스러우리만치 활동 중이다. 지역주민들에게 마당발이란 별명을 들을만큼 그의 활동에는 거침이 없는가 싶다. 자신의 말그대로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터키 영혼을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슬림에서 개종을 하는 순간부터 가족, 친척, 사회로부터 거의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현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크리스챤들. 그래도 한번 믿기로 하면 목숨을 거는 젊은이들이 사랑방이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간다.

K선생도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산다. 때론 그들의 직장을 알아봐주기 위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한다. 그들이 생활의 자립을 이루기까지는 K선생의 몫이 크다. 그래도 이일이 기쁘단다. 한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세례를 받고 즉각 자신의 신분증에 표기된 “무슬림”에서 “크리스챤”으로 바꾸는 그 순간이, 그에겐 더 없는 보람이다. 이로 말미암아 개종한 형제자매들이 겪게 될 십자가의 길은 매우 고달프고, 험난한 여정이 되겠지만 영원한 하늘나라가 보장된 축복의 길이라며, 격려하며, 안 믿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 이 나라의 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단다.

다른 곳을 방문해 만난 한 사역자는 여성이며, 18년 째 사역 중인 L선생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올 구십을 넘김 노모를 조국에 두고도, 고달픈 길을 기쁘게 가고 있다. 자신도 육십을 넘긴 나이지만, 현지인 제자를 키워내 신학교를 다니게 하고, 사역을 이양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가슴은 알 수 없는 감동으로 가득찼고, 이길을 인도해 주심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며 발걸음으로 돌렸다. “주여, 함께 하소서”
<취재/ 이스탄불=이창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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