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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알자스 로렌”, “지브랄타”, “보르도”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목사

지금부터 500년 전 시대는 한 마디로 정복을 통한 식민주의 시대였다. 약소국가에 대한 식민지 정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이 약속이나 한 듯 경쟁에 나섰다. 한때 영국은 본토의 100배가 넘는 식민지 땅을 확보하기도 했다. 50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식민지국가들이 독립했지만, 반면 영토분쟁은 끝나지 않고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주인이 17번이 나 바뀐 “알자스 로렌”
 
“프랑스 말은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분명하며 굳센 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말을 잊지 않고 있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알퐁스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1873년)”내용이다. 알자스와 로렌( Alsace-Lorraine)지방은 “마지막 수업”의 무대로, 소설 속의 내용처럼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치열한 영토분쟁에 시달렸다. 제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프랑스의 땅으로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  로마시대부터 통치권이 자그마치 17번씩이나 바뀐 피의 땅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지난 비극적인 역사를 떠올리기엔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 있다. 여름의 끝과 가을을 시작하는 계절, 보쥬산맥에 펼쳐진 포도주의 가도, 170km “알자스의 포도주 길”보다 가을의 서정을 깊게 느끼게 하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과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수많은 포도송이와 알갱이들, 가도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옥들이 춤을 추듯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는 풍경은 알프스 산자락과는 또 다른 색감과 맛을 선사한다.
 
독일과 프랑스가 영토소유권을 놓고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알자스와 로렌은 두 나라가 역사적으로 원한(怨恨) 관계가 농축되어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 전쟁(1618-1648)이 끝나고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에 따라 패전한 독일은 알자스 로렌이 프랑스의 소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1870년 독일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알자스 로렌은 독일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알자스 로렌은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조약으로 프랑스에 반환되었다가 1940년 제 2차 세계대전 초 프랑스를 점령한 히틀러에 의해 독일에 합병되었고, 1945년에는 프랑스가 두 지역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두 나라가 알자스 로렌 지방을 놓고 끊임없이 쟁탈전을 벌인 것은 라인강을 둘러싼 실익 때문이다. 프랑스가 유럽의 젖줄인 라인강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알자스와 로렌지역을 차지하면 라인강과 아르덴 고원이 프랑스 동쪽을 방어하는 천혜의 장벽이 될 뿐 아니라 라인강을 관통하는 독일의 교통로를 단절시켜 전략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독일이 알자스와 로렌을 점령하면 라인 강을 통해 직접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로마시대부터 재배해 오던 170km 알자스와 로렌지방의 포도생산지 또한 분쟁을 가속한 요인이기도 했다.
 
영국과 스페인, 왕위 계승권과 맞바꾼 “지브랄타”
 
이베리아반도 최남단 끝자락에 붙어 있는 지브랄타는 길이 약 8㎞, 폭 3㎞, 총면적 6.5㎢, 인구 3만여 명으로 영국의 직할령으로 되어 있다. 영국에게 지브랄타는 진주만큼 소중하지만, 스페인에게는 본토를 빼앗겼으니 이보다 비통할 수 없다. 지브랄타는 유럽과 아프리카,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그야말로 군사 요충지이자 황금 땅이다. 1년에 400만 명이 쏟아 붓고 가는 짭짤한 관광수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거기다 심심하면 한번씩 영국 본토에서 군함과 잠수함까지 동원해 스페인 코앞에까지 와서 무력시위를 하고 가는 것을 볼 때마다 속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이런 꼴을 보기 싫어했던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는 지브랄타를 빼앗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1969년 그는 지브랄타를 독 안에 든 쥐처럼 16년 동안 아예 국경을 봉쇄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어떤 진전도 없다. 스페인은 대외적으로 유럽연합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영토를 식민지로 삼고 있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을 퍼 붙기도 하지만, 영국은 “지브랄타 주민들이 영국을 선택  했다.”라며 동문서답만 되풀이한다. 다시 말해 주민들이 영국 주권을 선택했는데 그걸 식민지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도 지브랄타 주민들이 “우리는 스페인보다 영국이 더 좋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 할 말을 잃고 있다.
 
지브랄타가 영국에 넘어간 것은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00년 합스부르크 마지막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죽자,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손자인 필리프 앙주공이 펠리페 5세(1700-1746)로 즉위하였다. 이는 양국이 해상권, 특히 신대륙 무역을 장악하기 위한 제휴였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영국은 당장 에스파냐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는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3국과 동맹을 맺고 선전포고를 했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 왕위계승(1701-1714)”전쟁이다. 오스트리아가 마드리드로 진격할 때, 해상에서는 영국과 네덜란드의 함대는 프랑스와 에스파냐 함대를 격파하여 1704년 8월4일 불과 6시간만에 지브랄타를 점령하였다. 1713년 쌍방은 “위트레흐트조약”을 체결하였다. “영국은 펠리페 5세의 에스파냐 왕위를 승인하며, 프랑스로부터 허드슨만, 아케디아 등 미국 식민지 일부를 할애 받고, 에스파냐로부터 지브랄타를 획득한다…” 이 조약으로 스페인은 왕위 계승권을 확보했지만 지브랄타를 영국에 넘겨주어야만 했다. 펠리페 5세가 지브랄타를 영국에 넘겨주고 “발에 박힌 가시”라고 토로한 그 때 그 가시는 300년이 지난 지금도 스페인을 계속 찌르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100년 전쟁의 격전지 “보르도”
 
지금 영국은 유럽본토와 고속전철(TGV)로 연결되어 있지만 섬나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500년 전만 해도 영국은 프랑스 본토를 차지하고 있어 섬나라가 아니었다. 영국은 1066년 노르만 왕조의 성립 이후 프랑스 내부의 일부 영토를 소유한 것 때문에 양국 간 분쟁이 지속되었다.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100(116)년 전쟁(1337-1453)으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수 없이 치러졌다. 하지만 1492년 영국은 “에타플 조약(the Treaty of Etaples)”에 따라 유럽 대륙내의 마지막 발판이었던 브르타뉴를 막대한 보상금을 받고 프랑스에 내줌으로 지금껏 5백년 넘게 섬나라의 처지가 되었다. 백년 전쟁의 명분은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였지만, 사실은 프랑스 내 영국령에 대한 쟁탈전으로, 특히 브르타뉴를 비롯 아키텐지방 보르도 와인산지에 대한 쟁탈전이었다. 이 지역이 100년 전쟁의 불씨가 된 것은 1152년 프랑스 보르도 출신 왕녀인 엘레오노르가 루이 7세와 이혼한 후 영국 헨리 2세(Henry II, 1133-1189)와 재혼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녀가 헨리 2세와 결혼하므로 보르도 지방은 자연히 영국의 소유가 되어 버렸다. 이를 토대로 헨리 2세는 비교적 바다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남쪽, 툴루즈 지방까지 지배권을 넓힐 수 있었다.
 
그에 비해 프랑스는 졸지에 프랑스 대표적 와인산지는 물론 프랑스 서남쪽을 잃어버림으로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브르타뉴와 보르도 지방을 되찾기 위해서 100년 동안 수 없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마침내 프랑스는 1453년 헨리 6세(1421-1471)의 명을 받고 출전한 영국의 장군 존 톨벗(John Tolbot)과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300년 가까이 빼앗긴 와인 생산지, 보르도를 되찾게 되었다. 프랑스는 전쟁에 승리한 후 곧바로 보르도의 명품 “샤토 탈보(프, Chateau Talbot, 1400-1453)”와인을 생산했다. 보르도의 명품 “샤토 탈보”와인은 영국 존 톨벗(탈보)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는 프랑스가 영국과의 100년 전쟁을 끝내고 300년 만에 보르도 지방을 되찾은 승전품으로 생산한 것이다. “샤토 탈보” 포도주는 그냥 명품 포도주이기보다 프랑스가 영국을 섬나라로 만든 승전품이자 기념품이라 할만하다.

글: 김학우 목사(kmadrid@hanmail.net),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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