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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김학우칼럼] 오줌싸게상, 인어공주상, 로렐라이상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 로렐라이 언덕의 “요정상”은 뛰어난 명성과는 달리 주변은 지저분하고,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오줌싸개 동상”, “인어공주상”, “로렐라이 요정상” 은 언제나 찾는 이들로 북적거리는 세계 최고의 명소들이 되었다…..

유럽 3대 실망스런 볼거리로 분류되는 세 곳이 있다.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 그리고 라인강의 “로렐라이 요정상”이 그것이다. 대부분 이곳을 방문하고 나면 곧바로 허탈해 진다. 아주 작은 동상 하나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작은 동상들을 끊임없이 찾고 있어 엄청난 관광수입은 물론 그 지역과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 동상에 얽힌 이야기는 실제가 아닌 후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애국심이 만들어 낸 “오줌싸게 동상”
 
불과 60cm밖에 되지 않는 오줌싸개 동상(Mannekin Pis)은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 기구(NATO)가 있는 브뤼셀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이나, 베를린을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와는 대조적이다.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사람들이 오줌싸개 동상을 보는 순간 감탄과 환호보다는 너무나 평범하고 작은 동상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내 사람들은 평온을 되찾고 오줌싸게 동상을 배경으로 너도나도 열심히 기념 사진 찍기에 바쁘다.  오줌싸개 동상은 1619년 제롬 뒤케노스(Jerome Duquenenos)에 의해 만든 것으로 “꼬마 쥘리앙”(Petit Julien)으로도 불린다. 벨기에 대사관 홈페이지에 오줌싸게 동상의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6세기에 프랑스군이 브뤼셀을 침략해 도시에 불을 지르자 한 소년이 오줌을 싸 불을 끄게 한 기특함을 기려 오줌싸개 동상을 만들게 되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오줌싸개 동상은 한 소년의 애국심이 벨기에 인들의 가슴을 메아리치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한 소년의 애국심은 이웃 네덜란드 총독까지 감동시켰다. 네덜란드 총독이 벨기에를 방문했을 때 오줌싸개 동상을 위해 네덜란드 고유의상을 입혀주었고, 프랑스 루이 15세 또한 침략을 사죄하는 뜻으로 화려한 옷을 제작하여 선물하였다. 이후부터 세계 각 국의 귀빈들이 벨기에를 방문할 때마다 오줌싸개 동상을 위해 자기 나라 고유 의상을 입히는 의식이 관례처럼 되었다. 18세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오줌싸게 동상을 약탈해 갔다가 되돌려 주면서부터 오줌싸개 동상이 더 유명해 졌다. 그 후 오줌싸개 동상은 여러 번 약탈당하는 수난을 겪었지만 그럴수록 주가는 더 올라갔다.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했던 그랑 플라사 광장에 있는 “왕의 집”에는 세계 각국에서 오줌싸개 동상을 위해 보내온 의상이 무려 750여벌 넘게 보관되어 있을 정도로 오줌싸개 동상의 꼬마는 세계에서 가장 옷이 많은 부자가 되었다.

오줌싸개 동상의 꼬마는 한국 아이들이 오른손으로 오줌을 누는 것과는 달리 왼손으로 오줌을 시원하게 누고 있다. 한 비뇨기과 의사는 꼬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 놈 참 건강해 보인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소변이 두 줄기로 나오거나 약한 것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뜻이며, 오줌발이 세다는 것은 건강하다.”라는 말로 오줌싸개 동상의 꼬마가 건강하다는 것을 대변했다.
 
안데르센이 만들어낸 “인어공주상”
 
덴마크는 “안데르센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데르센의 나라”는 물리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잡고 있는 문화적 공간을 말한다. 동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Andersen, 1805-1875)은 덴마크의 동화작가이자 소설가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등 여러 동화를 통해 안데르센을 만나 보았을 것이다. 안데르센은 평생 동안 200여 편 이상의 동화를 남겼으며, 그의 동화 대부분은 전세계 언어로 번역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어공주상(Den Lille Havfrue)은 불과 80㎝ 밖에 되지 않지만, 그가 태어난 오덴세는 물론 수도 코펜하겐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인어공주상은 1837년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근거해서 제작한 것이다. 그의 동화 인어공주는 한 소녀 인어가 인간 왕자를 사랑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이 되는 내용이다. 인어공주상이 코펜하겐을 대표하는 명물이지만 실물을 보고 나면 허탈하기 그지없다. 인어공주상을 보기 위해 그곳을 묻고 또 물어서 항구 끝자락까지 찾아갔을 때는 “고작 이걸 보자고 이 고생을 하며 여기가지 왔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평소 한적한 항구이지만 인어공주상 때문에 주변은 항상 활기가 넘쳐난다. “인어공주상”은 쉬임 없이 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세계 각 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한적한 북유럽 코펜하겐 항구 끝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코펜하겐 항구 끝자락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똑같은 인어공주를 읽고 보고 느낀 추억 때문에 약속이나 한 듯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

1844년에 안데르센은 자화상을 자신의 동화 속에 그려놓고 이렇게 썼다. “나는 성공한 미운 오리 새끼이며, 고결한 인어공주이다.” 이것을 모를 리 없었던 월트 디즈니는 1989년도에 28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제작했다. 전 세계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까지 따라간 어른들까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단 한 편의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은 침체되었던 세계 영화계를 되살릴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첨단 과학시대에도 불구하고 황당하게 만들어낸 거짓 이야기에 열광하고 정신을 팔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어린 시절에 가졌던 환상과 꿈이 냉혹한 현실과 오랜 세월마저 지배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이네가 만들어낸 “로렐라이 요정상”
 
스위스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을 거쳐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북해로 빠져나가기까지 장장 1390km를 흐르는 나일강은 마인츠에서 북쪽으로 뱃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포도밭과 작은 고성과 함께 로렐라이 언덕이 나온다. 1824년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는 로렐라이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132 미터나 되는 로렐라이 언덕 위에서 한 편의 시를 썼다. 바로 “로렐라이”(Die Loreley)이다. “저 산 위에 아름다운 처녀가 황금빛 금발을 빗으며 부르는 황홀하고 신비스런 노래, 조각배 탄 뱃사공이 마음 흔들려 암초는 보지 않고 로렐라이를 바라보다 격랑에 휩쓸린다…” 로렐라이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한 아름다운 소녀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강 아래로 몸을 던졌고, 그 후 아름다운 소녀는 멋진 노래로 배 사공을 유혹해 결국 모든 선원들을 물에 빠트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시가 발표 된지 10년이 지난 후 “질허”(Friedrich Silcher, 1789-1860)가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면서부터 로렐라이 언덕은 일약 세계적인 명승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로렐라이 언덕을 찾는 것은 라인강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닌 하이네의 시와 질허의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로렐라이 언덕에 가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요정상”은 독일 조각가 미르코 봐인가르트와 고등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받침대(1m60cm)를 제외하면 겨우 80cm밖에 되지 않는다. 2010년 제주시는 독일 로렐라이 시로부터 “로렐라이 요정상”과 동일한 요정상을 받아 해변에 설치하게 된다. 하지만 로렐라이 시는 하이네와 질허는 보내지 않았다. 독일 로렐라이 시 또한 제주시에서 답례로 보내온 돌하르방을 로렐라이 언덕에 세웠다. 돌하르방도 혼자 외롭게 서 있기는 마찬가지다.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 로렐라이 언덕의 “요정상”은 뛰어난 명성과는 달리 주변은 지저분하고,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오줌싸개 동상”은 벨기에를 방문하는 국빈과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찾는 명소가 되었고, 코펜하겐 한적한 북유럽의 바다를 요란스럽게 만든 것은 “인어공주상”의 뒤편에 안데르센이 있었다. “로렐라이 요정상” 역시 평범한 강과 언덕에 불과하지만, 하이네와 질허가 신비감을 덧칠함으로 세계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글:김학우(kmadrid@hanmail.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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