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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함무라비 법전, 로제타 스톤, 페르가몬 제단

[김학우칼럼] 유럽에서 쓰는 유럽이야기 28회

박물관은 단순히 문화재나 유물을 전시하는 곳만 아니라 지난 날 인류가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담아 놓은 인류문명의 저장소(貯藏所)라고 할만하다. 한 국가와 민족이 오랜 전통과 숨결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소중한 문화재일수록 전쟁을 통해 약탈한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약탈된 문화재를 돌려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약탈해간 문화재를 자국의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측과 빼앗긴 측의 태도는 문명의 사명자(使命自)와 문명의 약탈자(掠奪者)란 시각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성문법의 모체, 함무라비 법전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세상을 호령하다.  
 
“재판을 받으려는 자는 이 비문(碑文)을 읽으라. 그대들에게 법을 명백히 가르치고 그대들의 권리를 지켜줄 것이다. 나는 이 법을 통해 강자가 약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악을 뿌리뽑겠노라.”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서문에 새겨진 구절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바빌로니아 6대 함무라비 왕(B. C.1792-1750)이 기원전 1750년경 제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成文法)중 하나다. 이 법전은 1901년 프랑스 몰간이 지휘하는 페르시아 탐험대에 의해서 이란의 서남부 수사에서 발굴한 것으로,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자부심을 갖고 소장하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은 높이 2.25미터, 둘레 1.9미터의 검은 현무암의 돌기둥으로 상부에는 부조가 새겨져 있고, 하부에는 쐐기문자(설형문자, 최초의 문자)로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함무라비 법전은 49열, 약 3000행으로, 앞부분 5열, 34개항이 지워진 것을 제외하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1902년에 프랑스인 L. V. 슈유에 의하여 번역된 함무라비 법전은 당시 법과 신분제도, 재산권, 사회제도, 사상과 도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아이콘을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헤브라이 법, 고대 사회 각종 법과 제도를 연구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였다.

함무라비 법전은 282조항으로 서문과 본문, 결문(結文)으로 아주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민법, 형법, 상법, 소송법 등이며, 표현은 아주 구체적이고 판례적이다. 특히 민법과 가족 관계의 법률이 전체의 약 1/4이나 될 정도로 많다. “제 42조, 수재나 한재를 당한 해에는 채무의 이자가 면제된다. “, “제 128조, 사람이 아내를 얻고도 그녀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면, 그녀는 아내가 아니다.”, “146조, 아내는 자녀를 낳은 거만한 첩을 노예의 지위로 떨어뜨릴 수 있다.”, “195조, 아들이 자기의 아버지를 때렸으면, 그의 손을 자른다.”, “196조, 평민이 귀족의 눈을 쳐서 빠지게 하였으면, 그의 눈을 뺀다.” 종교적인 규칙을 포함, 계층간에 대한 생활 규범과 심지어 임금을 얼마나 주어야 할지 규정하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이 주목받는 것은 구약 모세의 율법과 유사한 점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동해보상법이 명시된 것과 “…할 때는”, “만약…하면”이라고 하는 단정법과 조건부적인 법률체계로 구성된 것 등이다.
 
상형문자의 아이콘, 로제타 스톤이 대영 박물관에서 주인 노릇을 하다.  
 
고대 이집트의 비밀을 간직한 세계 최고의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는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을 둘러싸고 이를 돌려달라는 이집트와 영국간에 약탈논쟁에 불이 붙었다. 이집트는 오래 동안 고문화재 목록을 작성하여 환수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 해왔다. 그 결과, 영국으로부터 원형대로 보관된 목관과 그리스시대 부적 및 그릇 등 600여 점의 문화재를 돌려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영국은 기원전 196년에 제작된 로제타 스톤의 반환만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이집트가 높이 약 117Cm, 너비 약 74Cm, 두께 28Cm, 무게 725kg에 달하는 로제타 스톤을 그토록 돌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로제타 스톤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은 물론 고대이집트에서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문자들을 이해하고 해독할 수 있을 유일한 통로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로제타 스톤은 이집트 고고학과 세계 문명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제타 스톤 비문 해석의 기초는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언어학자로 이집트연구 전문가인 토머스 영(Thomas Young)이 길을 열었다. 그는 새나 동물모양의 문자에서 얼굴을 향하고 있는 방향을 연구해 부호 읽는 법 등을 알아냈다. 이후 프랑스의 고고학자 샹폴리옹은 영의 뒤를 이어 문자해석에 착수해 1822년 9월14일 26개 이집트 상형문자의 의미와 음가, 용법 등을 해독해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로제타 스톤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 정복을 놓고 다투던 시절인 1799년, 나폴레옹군이 이집트 원정 때에 알렉산드리아 인근, 로제타 마을에서 요새를 쌓으면서 한 병사가 발견하였지만, 영국이 차지하여 결국 대영 박물관에 소장하게 되었다.

로제타 스톤을 빼앗긴 이집트는 단 한번의 전시를 위해 영국에 대여를 요청했지만 이마저 거절당했다. “매년 5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다.”는 것이 거절 이유였다. 대영 박물관은 “세계 인류가 이룩한 문화업적을 고스란히 잘 보호하고 있는 국제 보관소”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표명했다. “박물관의 소장품들이 전체로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이 말은 대영 박물관이 유물을 보관했기에 오늘까지 값진 유물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지만 그보다 과거의 주인보다 현재의 주인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영국은 문명의 약탈자가 아니라 인류문명의 유물을 당당하게 모든 시대에 보존하고 전달해 주는 사명자라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로제타 스톤이 영국에 도착했을 때에 당시 이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Captured in Egypt by the British Army 1801”(1801년, 이집트에서 영국군에 의해 노획됨)
 
헬레니즘 문화의 심장, 페르가몬 제단을 박물관에 통째로 옮겨놓다.    
 
대영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오리엔트 문명의 실체와 그리스 문화 유산을 만끽할 수 있는 반면, 그리스 사회학자 헤로도토스가 그토록 경이로워 했던 바빌로니아 문명의 실체와 헬레니즘 문화유산은 베를린 페르가몬(성경의 지명 버가모)박물관(Pergamon Museum)에서 볼 수 있다. 독일문명과 전혀 다른 그리스와 헬레니즘의 문명의 실체를 베를린에서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대부분 독일 제국주의 시대에 그리스와 이집트, 터키 등에서 가져온 유물들이다. 한 마디로 터키가 문화재 따위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어두운 시절에 독일이 발빠르게 옮겨 놓은 것들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특징은 헬레니즘 시대의 유물, 지금의 터키에 있었던 도시로, 성경 속 초대교회에 나오는 버가모 교회시대의 유물들이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은 기원전 160년경에 세워진 터키의 페르가몬 왕국의 신전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영국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 일부를 떼어 왔는데 비해, 독일은 신전과 제단뿐 아니라 건물 자체를 아예 통째로 옮겨왔을 정도다. 박물관 내부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페르가몬의 옛 신전(제단, 높이 10m, 폭 30m)을 그대로 옮겨와 전시해 놓고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에는 페르가몬 제단을 비롯해 아테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극장, 궁전 등 페르가몬의 아크로폴리스 전체를 옮겨다 놓았다.

약소국들이 강대국들에게 문화 유산을 빼앗긴 것은 가슴아픈 일이지만, 박물관 덕분에 희귀한 세계인류 문화 유산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된 것이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잘 모르긴 해도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 박물관 그리고 페르가몬 박물관의 입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자세히 읽어보길 바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알렉산더와 해적의 대화”에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국가 간에는 오직 밀림의 법칙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폐하는 대군과 큰 함대를 거느리고 큰 일(도둑질)을 한 까닭에 황제가 되었고, 저는 단지 작은 배 한 척으로 작은 도둑질을 하였기에 해적이 되었습니다.”
필자/김학우(kmadrid@hanmail.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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