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선교칼럼 > 공산주의의 망상적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선교칼럼

공산주의의 망상적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루마니아 통신]  정홍기 선교사/ 시온장로교회 – <1>

공산주의의 망상적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수 십 년 동안 무신론주의와 물질주의에 집착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영적인 진공상태에서 하나님을 알고자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자 갈망하는 이들에게 만족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

루마니아의 정 교회가 이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가?  정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의식들, 비록 그러한 것들이 아주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알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공허한 마 음을 채워주기는커녕 사람들을 보다 더 깊은 무지의 수렁으로 빠뜨릴 뿐이다.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지친 루마니아 사람들은 1989년 차우세스크 정권이 무너지면서 하나님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알고자 갈망한 나머지 거리에서 전해지는 전 도지를 받거나 교회의 초청에 기꺼이 응했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대부분의 전도지는 여호와 증인의 것이 아니면 몰몬교의 것이었지만 전혀 들어 본적이 없는 그들에게는 모두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결국 혁명 후 루마니아는 각종이단들의 황금어장이 되어 거대한 영적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혁명이 일어난 지 16 년째인 지금 위기감을 느낀 정교회의 역공세가 사람들을 계속 전통의 부활로 몰아가고 있으며, 개신교들이 새로운 물결에 적응을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혼란기를 틈타고 물밀듯이 들어온 여호와의 증인 과 몰몬들의 활동만이 마치 전통 개신교인양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어두움의 세력들에 의해서 고립되어온 루마니아 사람들이 특히 지난 40여 년 동안 무신론적 삶으로 기독교의 참 진리를 알지 못하고 정교회의 신앙을 포기한 이들에게 정교회가 신앙적 지도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통에 의하면 루마니아는 서기 60여 년경 사도 안드레에 의해서 다찌아 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기독교가 2000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흑암의 세력들에 의해 지배를 받아야만 했는가?
1세기경부터 기독교의 진리가 루마니아에 깊이 전파되었는데 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어야만 하는가?
만약 80%의 루마니아 인들이 정교회를 믿고 있고, 정교회의 신앙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그렇게 깊이 뿌리 박혀 있다면, 루마니아 인들과 정교회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면. 정교회라는 의미가 올바른 신앙의 길 이라면 왜 이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흑 암의 세력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살았어야 하는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심과 불신가운데 살고 있으며 종교적인 무지가 팽배한 가운데 살고 있는가?

정교회의 신앙

신앙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라고 정교회 인들에게 물으면 그들은 “성경과 거룩한 전통에” 의해서 비롯된다고 답한다. 전통에 대한 정교회의 요리문답은 이렇게 정의 할 수 있다. “거룩한 전통에 의해서 사도들이 전수한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기록하지 않고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음성을 통해 전달하였다. 한참 후에 그것은 몇몇 사도들에 의해서 글로 기록되었고 그 기록이 오늘날까지 변화되지않고 책으로 전달되고 있다”

거룩한 전통은 하나님의 계시인 신앙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며 오히려 성경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아담부터 모세 때까지도 기록된 성경은 없고 구전에 의한 전통에 의해서만 하나님이 전달되었던 것이다. 구세주이신 예수 조차도 자신은 어느 것도 기록하지 않았으며 초대 사도들도 초기에는 말씀을 선포만 했고 후에 몇몇이 성경을 기록했으며, 모든 사람이 성경을 손에 들고 읽은 것도 아니고 말로 전달했으므로 그 전통이 성경을 분명하게 하고 온전케 한다. 정교회의 거룩한 전통은 곧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과 동일하다.

1. 성경보다 위인 전통
신약의 교회들은 감독과 장로 목사 그리고 집사들로 구성되어있다. 교회에 제사장 들은 없었 다.  왜냐하면 신자 각 개인이 제사장들이며 그들로 교회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 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다 제사장이다.

전통이 성경보다 권위를 갖고 있으므로 인간의 결정들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굳게 자리잡고 있으며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 만일 교회에 제사장이 있다면 일반 신자들은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나아갈 수가 없고 갈 필요도 없다. 그들은 신부 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고 신부들은 신자들의 영적 생활을 일방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정교회가 신부들의 이러한 전통을 형성해 놓은 후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그 중 하나로 개인이 자신의 영적 생활을 따로 가질 필요가 없고 성경이나 다른 영적인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또 하나는 신부가 구원의 은총 문제를 관리하므로 거기에 대한 거래가 일어나는 것이다. 즉 개인들이 용서의 은총을 위해 교회에 기부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신부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면 신자들이 죄에 대해서 편안한 마음을 갖고 살수 있으며, 단지 가끔 교회에 나가서 기부를 조금하고 죄를 고백 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교회의 신부들은 면죄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사람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지 안는다. 온갖 죄가 난무할 따름이다.

2. 구원에 대한 정의
정교회의 구원에 대한 교리는 일반 신자들에게 전혀 설명되거나 가르쳐 지지 않으며, 설교되지도 않고 감추어져 있다. 오직 신부들과 교회의 교리를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르쳐 진다. 일반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방편에 대해서 다른 방법들이 가르쳐지고 있는데 인간은 오직 선행을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교회와 수도원 건물들에 벽화가 그려진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벽화를 그리는 바로 그 자체가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편이고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이다.

수체비차 수도원에 가면 “ 선량한 사람의 사닥다리” 라는 벽화가 있는데 그 사닥다리는 땅에서 시작하여 하늘에 이르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각 계단마다 선행에 대한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정직, 진실, 의, 자비, 인내, 등. 사닥다리 위에는 또한 죽어서 하늘나라에 들어 가려는 사람들의 영혼을 그려놓았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살아있을 때 선행을 하다가 하나라도 빠뜨리면, 그리고 선행이 빠진 계단에 이르면 그 다음 계단에 이르지 못하고 지옥으로 빠뜨려진다.

이 벽화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만약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하면 최선을 다해서 선행을 베풀어야 하고 모든 선행을 이루기 위해서 투쟁을 해야 한다. 이것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인간 자신이 개발하는 선행에 결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그 벽화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기독교적인 신학과 성경의 가르침에 는 정 반대되는 것이다. 인간은 선행으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의 심에 의해서 구원에 이른다. 엡 2:8/롬 5:8-11

정교회의 교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교회가 보존하고 있으며 교회가 은총의 창고며 관리자라 한다. 따라서 실제적인 면에서 사람들이 신부에게 가서 그의 죄를 고백하면 신부가 용서의 은총을 나누어 준다. 신부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래서 신부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된다. 사람은 용서와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나아갈 수가 없으며 신부에게 가야 한다. 교회 관리자의 대표인 신부가 그 사람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준다. 딤전 2:5

3. 정교회의 의식들
▶세례 : 삼위의 이름으로 물속에 세 번 담그는 의식으로 이전의 죄를 씻는 은혜로운 의식이다. 세례를 통해서 교회의 멤버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난다. 어린이들은 원죄를 씻는 이 세례를 받아야 하며 선한 부모들이 그들의 미래 신앙에 보증인이 된다[나슈]. 세례를 받기 전 죽은 아이들은 [콘] 죄인으로 남아있게 된다.

▶고해성사 : 고해성사는 교회와 그 교회의 신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부의 자비로움이 없이는 고해성사가 이루어 지지 않으므로 죄 씻김이나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영적 갱신 같은 것이 일어 나지 않는다.

▶Maslul: 신자들이 신부를 집으로 초대하거나 특별히 아픈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 성결케 된 기름을 이마에 바르며 행하는 기도로써 신부의 기도를 통해서 병자의 병이 낳을 뿐만 아니라 죄가 사해지고 심령을 강하게 한다는 의식으로써 마치 신부가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것처럼 알려져 있다. 특별히 임종 시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병실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신부의 기도를 통해서 그들의 죄가 사함 받고 사탄의 역사를 막아준다하여 인기가 있다.  

▶Icoane : 예배 시에 사용하는 기본 교리적 도구로서 성 육신 한 예수의 육체를 상징한다. 이코아네 역시 신부들의 특별한 기도를 통해서 성물이 된다. 이코아네에 성수를 뿌리고 기도하므로 성물이 된 이코아네는 그 자체가 은혜의 상징이며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자들은 이코아네에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한다.

▶Sfintii : 성인, 성인들이란 신자들의 기도를 받아서 하나님께 전달해주는 중보 자로서 주로 신부들 중에서 성인으로 인정된 사람에게 신자들은 경의를 표해야 하고, 성인들은 죽은 후에도 시체 중 일부가 썩지 않고 남아서 기적을 행하기도 하므로 무덤에 까지 찾아가서 기도하는 신자들도 있다.

▶Sfintii parintii : 성화된 신부 –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죄다. 사람들이 죄 아래 거하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셨다. 살아나신 후 지금까지는 세상 끝 날까지 성만찬 시 떡을 뗄 때 그의 신성이 육신으로 현현 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일년에 한 두 차례씩 신부가 나누어 주는 떡을 먹음으로 거룩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과의 개인적 관계를 갖거나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

결론

누구든지 성경을 읽으면 정신적인 노예가 될 수 없다. 성경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권유하며 자유를 보장한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민족에게 전해지고 읽혀져야 한다. 성경은 언약 궤 안에나 제 단위에 강대상 위에 놓여져서는 안 된다. 책이 아니고 언약궤 안에서 나와서 각 개인의 삶과 사회 그리고 세 상속에서 읽혀져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특정 교회나 제단 안에 앉아있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와서 그들의 필요를 이야기하고 필요할 때만 와서 만나고 갈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고, 신자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이다. 우리의 삶 속에 문제 속에 일상생활 속에 직업 속에 사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를 증거하고 전파해야 한다 그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길이고 등불이 되어야 한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아멘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