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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리포트

3.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집시사역]  김수길 선교사/ 그리스, 데살로니키

제 3 부  집시, 그들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디서 왔는가 ?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집시는 알렉꼬 라는 노인집시이다. 이 노인이 내게 제일 먼저 물은 것이 “어디서 왔느냐” 였고 그리고 “한국에 집시가 있느냐” 였다. 한국에는 집시가 없다는 대답에 ‘무식한 녀석 집시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투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는데 상당히 허구적인 부분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든다면 알렉산더 대왕 역시 집시였는데 그리스 사람들이 이것을 바꾸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등이었다. 내가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웃을 수 없었다. (너무나 진지하게 이야기하기에,) 노인은 나를 만날 때 마다 그의 특징인 침을 뛰어가며 그의 집시 역사이야기를 계속해서 했다. 가끔씩은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알렉꼬 노인은 집시로서 드물게 초등학교 교육을 받았고 그리스 군대에 입대하여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한 인텔리(?)였다.

두 번째로 집시의 역사에 대하여 나의 생각을 이끈 친구는 바실라끼라는 청년이다. 4년전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서 고생하던 그를 나의 기도와 침술로 치료해준 친구이다. 어느 날 그의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정확히 4년 전에 헤어졌다가 최근에 그의 가족 전부를 다시 만났다. 그동안 그리스 중부 뎃살리아 지역과 터키 국경도시 알렉산드로 뽈리까지 이동을 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이동하느냐는 나의 물음에 좋아서 다녔겠느냐는 표정이다. 형의 아이들이(그의 형 끼리야꼬는 마약 중독으로 가족을 돌볼 힘이 없다.) 자라니 이제 한곳에 정착해서 조카들을 학교에 보내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자리를 잡도록 주변 환경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아무 곳이나 장막을 설치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시 땅주인이 거절하고 경찰을 부르면, 다른 곳으로 이동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 옛날 그들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것처럼 .

 집시들의 태동과 이동경로에 대해서 정확한 문서나 사료가 없기에 그들의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참으로 많은 가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로 유럽 학자들이 주장하는 설이지만 중국 한나라 황제인 무제에 의해서 쫓겨난 흉노족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원후 5세기경에는 인도의 굽타 왕조 또는 (바르다니 왕조)를 침공하였다. 이들의 공격으로 심한 타격을 입은 인도는 결국 굽타왕조(바르다니 왕조)가 멸망하고 성과 도시는 파괴되어 도시는 질병과 기아에 노출되었다. 도시기능의 파괴는 농촌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농업의 침체로 이어져 많은 유랑민이 발생하였다. 이때 인도의 네 계급 중 즉 브라만(사제 계통), 크샤트리아(군사와 정치 귀족 신분 계통), 바이샤(일반 기층민 계통), 수드라(노예 계통) 중 하위계급인 바이샤와 수드라 계급의 사람들이 고대 인도를 떠나 유럽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1차 집시 태동 이동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2차 집시 민족 이동설은 터키 남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는 1038년에 시아파 회교도들인 터키인에 의해서 셀죽크 투르크 왕조가 등장한다. 그리고 1148년 오늘 날 아프카니스탄 지역에 셀죽 투르크의 지원을 받은 고르 왕조가 역사에 나타난다. 신생 고르 왕조는 영토 확장과 시아파 회교를 전파한다는 목적으로 인도의 북서부 (오늘날 인도 펀잡 지역) 구르자라 왕국을 침공하게 된다. 구르자라 왕국은 급격하게 변화는 주변정세에 대비하여 오래전부터 군대를 육성해왔다. 이들 군대에는 인도계통의 사람들 뿐 아니라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멀리는 동 아프리카에서부터 온 사람들과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정치 종교적 문제로 피난해온 사람들로 군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슬람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찬 구르자르 왕국의 군대는 이슬람 세력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위해 많은 군대와 그들을 도울 하층 계급의 사람들을 히말리아 산맥 넘어로 파병을 했다.

그러나 구르자르 왕국이 이슬람에 의해 멸망되자 히말리아 산맥 넘어로 파견되었던 많은 사람들은 돌아갈 나라가 없어졌으므로 그대로 서진하여 오늘날 집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타가 인정하는 집시 학자이며 유일한 UN의 집시 대표이며 택사스 주립대학에서 집시학을 강의하고 있는 Ian F. Hancock교수이다. 이안 한콕 교수는 언어적이나 인류의 유전자적인 검증이라던지 여러 경로를 종합해 볼때 집시족의 출발점은 인도 북서부 펀잡 지방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동 시기역시 11세기 이슬람 침락으로 유민이 되어진 것 역시 인정하지만 1차 2차로 나누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92년까지의 끊임없는 이슬람의 공격으로 구르자라 왕국이 파괴되어 그 난민들이 여러 곳으로 떠돌다가, 어떤 그룹은 인도의 남부로 떠나가기도 하고, 다른 무리는 중국 서부 지방으로, 또 어떤 그룹들은 유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집시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집시들은 먼저 카슈미르에 도착해서, 페르시아로 향하는 실크로드를 타고, 페르시아 제국에 머무르다, 흑해 연안의 트레디 지역과 비잔틴 제국에까지 유입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동로마 제국은 이슬람 침략군에 대항하기 위해

비잔틴 제국 군대에 집시들을 재 편입시켰지만, 피부 색깔로 인해 이슬람교도로 오해가 생긴 뒤로는 다시금 난민으로 격리됐다고 주장한다.
이후의 집시들의 삶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선명한 편이고, 자료나 문건 역시 남아 있다. 비잔틴으로 들어간 집시들을 1300년 초에 남동부 유럽에서 그들을 보았다는 보고가 있었고, 1400년대에는 중부와 동부유럽에서 그리고 1400년에서 1500년 사이에서는 서부와 북부유럽에서 그들에 관한 기록들이 있다.

중동부 유럽의 빵 바구니인 트랜실바니아 지역에 도착한 이후, 집시그룹은 각각 리더에 의해 소규모로 뿔뿔히 흩어졌다. 15세기경에는 유럽의 전 지역으로 흩어졌다. 1500년까지 집시는 영국에서 스웨덴, 폴란드와 노르웨이에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걸쳐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동역인 간띠에게는 삼촌 한사람이 있다. 그는 허리를 다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바랑카에서 보낸다. 이 사람에게 가장 좋은 오락은 위성을 통해서 인도의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이해가 되느냐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인도 방송을 좋아하는 다른 이유는 다른 민족보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거기서 왔다는 것이었다.

다음에 다시 말하겠지만 집시들에게 유랑 생활은 타의에 의한 강요당한 삶의 방법이지 결코 그들이 원해서 일반적인 생활방식과 다른 떠돌이 무리가 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어제 뵈레아 벌판의 초 한자루에 불 밝힌 바실리끼의 바랑카에서 나는 작은 분노를 다시금 느끼며 누구라도 묻고 싶었다. 누가 집시들 핏속에 방랑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했는? 한곳에 정착치 못하고 정들만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그들의 설움, 그것도 대부분 타의에 의해서…<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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