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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안 복음전파

[실크로드와 복음루트] 최하영 목사/ GMS 우크라이나선교사

(5회) 실크로드 천년 교회사

사산제국이 가장 번성하였던 초스로에스 1세(Chosroes I, 531-579)때에 아브라함과 닫예수, 밥하이에 의해서 옛 실크로드따라 60개의 수도원이 세워졌다. 네스토리안들은 옛 실크로드의 대상 무역지마다 수도원을 세웠다.

네스토리안 수도사(혹은 선교사)들은 선교여행으로 도시와 마을들을 통과하여, 복음을 확장하고 작은 공동체들을 강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 선교는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나가는’ 것이었다. 네스토리안의 선교란 “자기 집과 친척들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떠나, (영적)죽음의 전쟁에 싸우도록 자신을 내 던지는 것”이라 하였다. 네스토리안 신학은 선교지향적인 신학이었다. 이렇게 네스토리안 교구는 계속 확장해 나갔다.

544년 제6차 마르 아바 공의회(Mar Aba)에서 옛 실크로드를 따라 메르브(Merv)와 베트 라파트(Bet Lapat), 니시비스(Nisibis), 바스라(Basra), 아르빌(Arbil), 키르쿡(Kirkuk), 아르다쉬르(Ardasir) 교구가 추가되었음을 보고하였다. 585년 제7차 예수얍 공의회에서 헤라트(Herat)가 대주교구로 승격되면서 북방유목민 선교의 중심센터가 되었다. 또한 헤프탈 백훈족에게까지 네스토리안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그런데, 이 지역의 복음화는 이미 초대교회때부터 영향을 받았었다. 사도들 중에 도마가 메디아인(Media)과 페르시아인(Persia), 박트리아인(Bactrian), 스키티아인(Scythian), 길라니아인(Gilanians)에게 복음을 전한 후 인도 카라미나(Caramina)에서 순교하였다.

그리고 도마의 제자 아다이(다데오)가 오스로에네의 에데사와 니시비스(Nisibis), 아라비아, 메스포타미아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오스로에네는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아다이의 제자 마리는 세나르(Senar)와 셀류키아(Seleucia), 바다라자(Badaraja)에 복음을 전하였다. 190-250년에 동쪽 쿠르디스탄(Kurdistan) 산맥에서부터 서쪽 카스피해까지 관할권으로 20명 이상의 주교와 17개의 주교구가 있었다. 또 파르티아 왕국에만해도 약 20여 교구가 있었다. 200년에 메르브에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고 성자 바라히(Barakhi)가 있었다. 또 3세기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도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 이렇게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부터 이 옛 실크로드따라 복음을 전할 토대를 마련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산제국 내에서 극심한 순교역사가 있었기에 네스토리안 기독교도 부흥할 수 있었다.

사산제국이 가장 번성하였던 초스로에스 1세(Chosroes I, 531-579)때에 아브라함과 닫예수, 밥하이에 의해서 옛 실크로드따라 60개의 수도원이 세워졌다. 네스토리안들은 옛 실크로드의 대상 무역지마다 수도원을 세워 그곳을 교회와 학교, 기도원, 대상숙소, 교회기물 작업장, 도서관, 공동체 숙소로 사용하였다. 네스토리안의 신학과 신앙의 본거지는 에데사에서 아르벨라로, 아르벨라에서 니시비스로, 니시비스에서 셀류키아 크테시폰으로, 셀류키아 크테시폰에서 바그다드로 옮겨져 갔다.

이 네스토리안 공동체를 활용한 대상이 바로 이란(페르시아)계 오아시스 민족인 소그드인(Sogdian)들이다. 이들은 이미 1세기부터 옛 실크로드 무역로를 따라 국제상인으로 명성을 떨쳤고 높은 수준의 문화를 꽃피웠다. 소그드인은 아랄해에 흘러 들어오는 아무다리야(Amu Darya)와 시르다리야(Syr Darya) 강 중간쯤에 제라프샨(Zeravshan) 강이 흐르는데 이 지역을 소그디아나(Sogdiana)라고 하였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Samarkand)와 부하라(Bukhara)와 타지키스탄의 뺀지켄트(Panjikent)와 샤흐리사브즈(Shahrisabs) 지역이다. 이 소그인을 통하여 옛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 탁발국가 북제와 북주에서 서쪽 페르시아 사산 왕조와 비잔틴 제국까지 통상을 넓힐 수 있었다.

특히 소그드인은 투르키스탄 제국때(Turkestan, 돌궐, 552-734)에 정치·경제도 주도하였다. 투르키스탄 제국은 동(東)으로 만주에서부터 서(西)로는 비잔틴 제국까지, 남쪽으로는 힌두쿠시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확대하면서 유목민족들끼리의 인종 및 종교에 구애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저자 현장(玄獎)도 이 시기에 여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그디아나 소그드인들은 네스토리안 기독교뿐만 아니라 조로아스터교와 불교, 마니교를 믿었다. 그 중 기독교로 개종한자들은 옛 실크로드 따라 네스토리안 선교사를 돕거나 직접 비즈니스 선교사(Business as Mission) 역할을 하였다. 이들을 통하여 곳곳에 놀라운 기독교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578년 중국 린타오(Lint’ao)에 마르 세르기스(Mar Sergis)라는 네스토리안 가정이 있었다. 644년 호라산(Khurasan)의 군주와 백성들이 메르브의 대주교 엘리아스(Elias)에 의해서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강 유역에서 세례를 받았고 그들 중에 몇 명은 사제와 집사로 임명받았다. 또 코단(Khotan)의 왕자도 네스토리안 주교가 되었다. 두르판과 둔황석굴에서 아나본(Alopen)이 당에 가져와 번역했던 번역본들이 발견될 정도로 그 곳에도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다. 이렇게 투르크 유목민 특유의 열린 투르키스탄 제국과 개종자 국제 상인 소그인들로 인하여 네스토리안 교회의 복음화는 한층 더 확장되어 갈 수 있었다. 사산왕조(226-651년) 말기 때에 총대주교 마르 아바 1세와 예수얍 2세의 활발한 정치적·외교적·종교적 활동으로 복음은 더 확장되어 갔었다 그래서 20, 21세기에 옛 실크로드따라 유목민 기독교 공동체 가운데서 많은 유물과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그 중에 독특한 네스토리안 십자가 혹은 암각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그 발견지점 대부분은 네스토리안 수도원 및 공동체가 있는 곳이었다.

네스토리안의 십자가는 사방 길이가 똑 같은 것이 특징적이다. 십자가의 사방 끝은 세 개의 반원형 잎사귀처럼 되어 있고 십자가 교차점에는 X모양이 파여져 있다. 세 잎사귀 모양의 십자가 성상의 의미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상징한다. 소그드인들이 살았던 뻰지켄트와 사마르칸트의 아프로시압, 타슈켄트 부근에서 네스토리안 십자가가 새겨진 소그드 화폐를 발견하였다. 이 화폐는 6-8세기 것으로 그 네스토리안 십자가를 중심으로 페르시아 사산 왕조 문양의 진주들을 두르고 있는 모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당시 이 지역을 통치하였던 군주가 네스토리안 기독교이었을 것이다. 사마르칸트 근처 우르구트(Ургут)와 사마르칸트에서 200km떨어진 까르쉬(karshy)에도 네스토리안 수도원 흔적 및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소그디아나 지역 혹은 그 부근인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 우르구트, 까르쉬, 뺀지켄트, 페르가나 계곡의 꾸와 등에서 네스토리안 십자가가 발견되었다. 그 수도원에서는 예배만 드리지 않았다. 이 수도원에서는 매우 많은 교사들과 교리 선생·글쓰기 선생·의사·기술자 등이 있었다. 수도원 가까운 작업장에서는 수도원에 필요한 물건들인 세례 잔과 향로, 십자가, 절기 물건, 장례식에 쓸 세라믹 둥근 기둥 등을 만들었다.

이 소그디아나 지역을 지나 장안까지 옛 실크로드따라 곳곳에 네스토리안 십자가가 발견되었다. 세미레치(Семиреч)와 크라스노레친스크, 부라닌스크, 칸크(Канк), 크라스나야 레치카(Красная речка) 등에서 네스토리안 십자가가 발견되었다. 또한 투르판(Turfan)과 둔황(Tun-huang)에 많은 기독교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렇게 네스트리안 십자가와 유물이 발견된 곳은 네스토리안 수도원 및 공동체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소그드 상인들의 숙소가 되었고 며칠 있을 동안 복음을 듣고 떠날 때에는 파송자가 되었을 것이다. 옛 실크로드 남쪽 루트인 파키스탄 북부 이슬라바드(Islamabad)와 칠라스(Chilas), 탈판평원(Thalpan Plain), 길기트(Gilgit)에서도 암각에 새겨진 네스토리안 십자가를 발견하였다. 이렇게 실크로드 천산 남북로따라 네스토리안 공동체가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이 소그디아나 지역을 9~10세기 투르크인 사마니드 왕조가 통치하면서 이슬람 압바스 왕조의 영향하에 많은 소그드인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였다. 결국 이 사마니드 왕조가 투르크-몽골계의 최초로 이슬람 국가되면서 오늘날까지 이 지역이 이슬람의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압바스 왕조의 이스마일 이븐 하흐마드(Isma’il ibn Ahmad, 892-907)때에 탈라스(Талас)와 미르크(Мирк), 부하라의 네스토리안 교회들이 모스크로 바꿨다. 또한 많은 네스토리안 기독교인들도 많은 핍박을 받아 복음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 이슬람이 미치지 못한 북방유목민 중에 케레이트족과 나이만족이 복음을 받아들여 초기 몽골제국때에 네스토리안 기독교인들은 경제와 정치, 교육 등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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