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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교회일치운동-2부

[기독교 기본교리 탐구] 조남민 목사/ 밸리성경교회/한인성경선교회- <5회>

모든 신도 참여 교리운동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1970년에 6억 5천만 정도였다. 그런데 40여년이 지난 2010년에는 약 두 배가 되어 12억에 육박했고, 2016년에는 12억 9천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 번에 우리는 가톨릭의 일치운동에 관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중 첫 번째 것을 말했다. 그것은 가톨릭의 교회일치운동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나의 ‘운동’이 아니라 ‘가톨릭의 영구적인 교리’라는 것이다(1. 가톨릭 일치운동의 영구성에 관한 교리). 그러므로 가톨릭은 이 일치운동을 절대로 간과하지 못한다. 이는 그들이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임무요, 그들의 과업이요, 사명이다. 마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대사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처럼 가톨릭이 이루어야 할 특명(特命)인 것이다. 아니 가톨릭은 주님이 주신 대사명보다도 더 중요하게 이를 이루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우리가 이 일치운동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 두 번째로 상기해야할 것을 보자.

2. 가톨릭 일치운동에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참여한다. 

가톨릭 일치운동교리가 영구적이고 변함이 없는 교리이기 때문에, 이는 교황만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가톨릭의 추기경,대주교, 주교, 사제, 부제, 수녀, 평신도 등 모든 가톨릭 신자가 참여하고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항상 상기해야한다. 교회일치재건운동 교리의 [교령1]에서부터 모든 신자에게 제시하는 메시지가 있다.
[일치교령] 1.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을 모든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촉진하려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대한 목적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그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고찰하며, …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 사이에 재건하여야 할 일치의 열망에 넘쳐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과 은총에 응답할 수 있는 도움과 길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일치운동은 가톨릭 신자 중 운동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는 운동이 아니다. 이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참여해야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일치재건에 관해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도움과 길과 방법을 제시”하겠다고 말한다. 이어서 [교령4]는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이 운동에 참여하기를 촉구하는 말이 나온다.
[일치교령] 4. …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시대의 징표를 깨닫고 일치 활동에 슬기롭게 참여하도록 권고한다…. 이 모든 것을 목자들의 감독 아래 가톨릭 신자들이 지혜롭게 또 인내로이 이행할 때에, 공정과 진리, 화합과 협력, 형제애와 일치의 선익에 이바지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조금씩 교회의 완전한 일치를 가로막는 장애들을 극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인 성찬례를 거행하며,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의 일치 안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당신 교회에 주신 일치,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그 일치가 가톨릭 교회 안에 있다고 우리는 믿으며 세상 종말까지 그 일치가 날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이 가톨릭의 영구적인 교리는 “거룩한 공의회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일치 활동에 슬기롭게 참여하기를 권고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권고”라는 말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교령의 내용이나 그 후에 나오는 교리나 가톨릭 교리서의 내용에 의하면 이 말은 “촉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위의 [교령4]에서 또 한 가지 엿볼 수 있는 것은 “세상 종말까지 그 일치가 날로 자라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이는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모든 가톨릭 신자가 일치운동을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천명(闡明)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세상 종말까지 일치운동을 할 것인가? 가톨릭이 믿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인 성찬례를 거행하며,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의 일치 안으로 모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당신 교회에 주신 일치,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그 일치가 가톨릭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일치운동교리 [교령4]에 의하면 반드시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일치운동이 되어야 한다. 하나는 성찬례이고, 또 하나는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로 일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둘에 대해 성경만을 기반으로 하는 개신교는 성경과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가톨릭의 입장과 타협할 수 없는 입장이다.

먼저 성찬례를 보자. 개신교는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례를 행하는 반면에, 가톨릭은 “성변화” 혹은 “화체설”로 빵과 포도주는 그 형상이 그대로 남아있으나, 본질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이다. 그런데 [교령24]에 의하면 일치운동의 마지막은 가톨릭적으로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에 관한 것이다. 일치운동의 결말이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로 핑퐁교제로 타협점을 찾아 하나 되자는 것이 아니다. 일치운동의 결말은 현재의 가톨릭교회로 하나 되어야 한다는 요지부동한 교리이다. 왜냐하면 가톨릭교회가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이고 “그 일치가 가톨릭교회 안에 있다”고 가톨릭은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가톨릭교회일치운동의 일치 운동의 밑바탕이 가톨릭교회가 그 근거이고 가톨릭이 옳다는 가정 하에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개신교 목회자들은 이를 반드시 이해하고 이 운동에서 휘말려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때로 개신교 목회자들이 가톨릭과 함께 일치운동을 함으로써 가톨릭의 신앙이나 교리에 영향을 주겠다고 생각하며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지난번에 본바와 같이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영구적인 교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돌이킨다는 것은 가능치 않은 것이다.

가톨릭의 일치운동교리는 모든 신자들에게 “일치 활동에서 갈라진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한 “모든 이가 교회에 관한 그리스도의 뜻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고, 당연히 요청되는 쇄신과 개혁 활동을 줄기차게 추진하여야 한다”고 한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을 목자들의 감독 아래 가톨릭 신자들이 지혜롭게 또 인내로 이행”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조금씩 교회의 완전한 일치를 가로막는 장애들을 극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가톨릭 일치운동 [교령4]에서 말하는 모든 신자가 참여하기를 말하는 “권고”는 [교령5]에서 더욱 강해진다. [교령5]에서는 “일치 회복은 신자이든 목자이든 온 교회의 관심사이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이나 신학과 역사 연구에서 누구나 다 힘껏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완전한 일치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교령 8]에는 가톨릭 신자들이 아직 하나가 되지 못한 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교리가 두드러진다. “‘일치를 위한’ 기도나 일치 운동을 위한 모임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허용”된다는 교리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 기도는 분명 일치의 은총을 얻는 참으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교령24]의 교리를 염두에 두고 일치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교령24] 이 거룩한 공의회는 신자들이 일치의 참된 진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온갖 경솔함과 무지한 열정을 자제하도록 권고한다.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이 아닌 일치 활동은 있을 수 없다.
이 교리는 일치운동은 반드시 가톨릭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1517년 개혁 후 가톨릭과 청교도가 대립되는 소용돌이의 시간이 있었다. 그 후에 개신교는 가톨릭에 올바른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명을 갖고 가톨릭 가르침의 문제점을 제시하며 가톨릭에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온 개신교 성도들이 하나로 뭉쳐서 가톨릭에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다. 20세기 전에는 가톨릭에서 개신교에 손을 뻗힌 것이 극히 미약하게 보인다. 다른 말로 개신교 성도들이 굳건히 서 있었기 때문에 손을 뻗히기가 쉽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500여년이 지난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가톨릭은 모든 가톨릭 신자를 동원하여 개신교에 손을 뻗히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하려하고 있다. 성경과 전통을 혼합시킨 교리로 성경만의 교리를 용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1970년에 6억 5천만 정도였다. 그런데 40여년이 지난 2010년에는 약 두 배가 되어 12억에 육박했고, 2016년에는 12억 9천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가톨릭 공의회는 바로 이 13억 신자에게 “일치운동”을 촉구하며, 개신교의 가르침을 가톨릭 교리로 용해시키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바티칸 제2회의의 일치운동에 관한 가톨릭의 교리는 1992년의 <가톨릭교회교리서> 820항부터 870항에서 다시 확인하고 있다. 일치운동에 대해 821항에는 “신자들과 특히 사제들에 대한 교회 일치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교육은 가톨릭의 신문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는 것 같다. 2015년 가톨릭 평화신문은 일치운동교리를 바탕으로 ‘일치 운동을 위한 가톨릭 신자의 열 가지 원칙’을 정리했다. 이런 글을 통해서 모든 가톨릭 신자가 일치운동에 어떻게 참여해야하는지 알게 된다. 다음은 가톨릭 신문에 나온 것이다.
1. 일치 운동에서 가정 우선되는 것은 일치에 대한, 일치를 향한 관심이다.
2. 가톨릭 신자들이 갈라진 형제들에게 관심을 갖고 먼저 다가가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3. 갈라진 형제들에게서 발견되는 참된 그리스도교적 보화들을 공동 유산에서 나온 것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4. 갈라진 형제들과 상호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말과 판단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5. 공동선을 위해 교파들이 협력을 추구하고 가능한 곳에서는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6. 교회에 관한 그리스도의 뜻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 성찰하고, 쇄신과 개혁 활동을 줄기차게 추진해야 한다.
7. 일치 운동 실천을 위해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 가톨릭 신자들끼리 또는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기도를 바칠 수 있다.
8. 가톨릭 교회 자체에서 쇄신할 것들을 살펴서 가톨릭 교회 가르침과 교리를 더 분명하게 증언해야 한다.

개신교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가톨릭이 일치운동의 영구적인 교리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더 잘 알아야겠다. 왜냐하면 올바른 복음을 가진 우리가 가톨릭에게 복음을 전해야함이 마땅한데, 이제는 13억 가톨릭신자들이 개신교를 가톨릭 손안에 넣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신교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지도자들은 항상 깨어서 대적자의 공격을 막아내고, 주님의 양들을 보호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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