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시사칼럼 > 가톨릭의 교회일치운동
시사칼럼오피니언

가톨릭의 교회일치운동

[기독교 기본교리 탐구] 조남민 목사/ 밸리성경교회/한인성경선교회- <4회>

가톨릭의 교리는 영구적인 교리이다

우리는 세 번에 걸쳐, 지난 20여 년 동안 기독교와 가톨릭과의 연합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가톨릭 교리의 견고함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 개신교의 모든 지도자와 성도들은 이러한 가톨릭 교리의 견고함을 이해하면서 좀 더 깨어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톨릭의 일치운동도 그들의 가장 중요한 교리중의 하나임을 올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일치운동에 관심이 있는 기독교 지도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가톨릭이 일치운동을 주도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의미의 질문을 하면서 일치운동은 가톨릭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을 하는 그룹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의미로 나무라듯 말했다…

그래서 필자는 ‘일치운동을 누가 주도하는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일치운동이 가톨릭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고, 가톨릭이 의도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했다.
생각해보라. 기독교 어느 교단이 일치운동에 대한 교리와 원칙을 만들어 놓고 일치운동에 참여하고 있는가? 기독교 어느 교단이 이 일치운동이 그렇게 중요해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일치 운동을 하고 있는가? 기독교 어느 교단이 이 일치운동에 목회자들에게 책임을 맡기고 그 일한 대가로 봉급을 주며 이 운동에 참여케 하고 있는가? 기독교 어느 교단이 자기 교단의 모든 성도들에게 이 운동에 참여해야한다고 강조하고 독려하며, 그들에게 지침을 주고, 참여하게 하고 있는가? 가톨릭 일치운동을 이해하고 있는 분의 말을 빌리면 이 일치운동을 위해 바티칸에서는 십여 개의 핫라인을 가동하고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개신교 어디 교단이 이렇게 적극적이고 많은 재정을 투자하며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개신교의 어느 교단이 “전국 그리스도교 재일치 위원회”나 “일치 위원회” 혹은 “교회 일치와 종교간의 대화 위원회”를 세워 일치운동을 추진하는 있는가?
개신교 교단에 대한 이 모든 질문의 답은 “없다”이다. 오직 가톨릭교회에서만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은 일치운동을 교리로 만들어 놓고 그들의 막대한 재정을 사용하고 막대한 인력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일치운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톨릭의 일치전략아래 희생양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의 교리를 비난하며, 의화교리에 대해 한 치도 양보를 하지 않던 루터교가 적어도 서면 상으로 고개를 떨구었고, 감리교도 이에 동참했다. 실제 구원에 관한 교리가 가톨릭과 개신교가 확실히 다른데도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이 거대하게 밀려오는 일치운동의 파도의 물결을 헤치고 나가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개혁당시의 마르틴 루터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을 붙잡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전진할 때에만 이 거대한 파도를 헤치며 나아갈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신교 목회자나 장로들은 이 거대한 산 같은 파도가 어떤 파도인지 그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은 우리 성도들이 이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하고 인도해야하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일치운동은 실제적으로 산더미 같이 거대한 파도의 물결이지만, 보기에는 아주 잔잔한 파도처럼 계속해서 개신교를 강타했고, 강타하고 있고, 계속해서 강타할 것이다. 이 파도는 거대하든 잔잔하든 주님이 오실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고, 가톨릭의 이 일치운동 교리는 수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 파도가 계속 몰려올 것을 예견할 수 있는 이유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적어도 두 가지를 기억해야한다. 하나는 가톨릭의 일치운동의 교리가 영구적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교리에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지면상 여기서는 전자만 보겠다.
1. 가톨릭 일치 운동의 영구성에 관한 교리. 이 교령에 의하면 가톨릭의 일치운동은 피할 수 없는 가톨릭의 과업이다.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의 반포를 시작하면서 교황은 이 교령이 영구적인 기록임을 다음과 같이 공포하고 있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 바오로 주교는 거룩한 공의회의 교부들과 더불어 영구적인 기록으로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일치 재건)’을 공포한다.” 이 공포에 의하면 가톨릭에서 이 교령은 지울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이는 기록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하고 달성해야만 하는 교리이다. 이와 더불어 [교령 1]에서는 일치 재건을 촉진하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대한 목적의 하나이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또한 1992년에 제정된 <가톨릭교회 교리서> 816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런 멏 가지만 본다고 해도 가톨릭은 일치 운동을 조금도 늦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가톨릭교회 교리서> 855항은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향한 노력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가톨릭은 그들이 말하는 일치운동을 “교회의 사명”으로 말하고 있다. 가톨릭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이 일치재건운동은 다른 말로 ‘가톨릭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이 일치운동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도 않을 것이고,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가톨릭의 일치운동의 교리로 인한 물결은 계속해서 개신교를 강타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혹자는 그래도 가톨릭이 이 교리를 바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무오류의 교황이 사도좌에서 반포한 교령을 그렇게 바꾼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2바티칸회의 일치운동 교령의 내용을 반포한 후 그 내용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1964년 11월 21일 가톨릭 교회의 주교 바오로 자서 교부들의 서명이 따른다.”
이 말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톨릭의 교황은 무오류 은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교황에 대한 무오류의 은사가 특별한 방법으로 로마 주교의 가르침에 주어졌다고 가르친다. 제1바티칸 회의(1869-1870년)는 다음과 같이 포고하고 있다. (삽입된 그림/ 위)
“……우리는 다음을 하나님이 계시하신 교리로 가르치고 정의한다. 그것은 로마 교황이 엑스 캐소드라(ex cathedra)로 선언할 때, 즉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와 교사로서 직무를 행사하고, 가장 높은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그가 복된 베드로로 인해 그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도움으로 전 교회가 지켜야 할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할 때, 그는 하나님이신 구세주께서 당신 교회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의 결정에서 오류가 없기를 바라셨던 무류성을 교황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제1바티칸회의)
여기서 ‘엑스 캐소드라’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권위의 좌석으로부터’ 라는 말이다. 가톨릭 대사전은 이 말을 ‘성좌선언’으로 번역했고, “교황이 성좌(聖座)에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정의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로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교황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지도 않고, 가르칠 수도 없다는 교황무류설<敎皇無謬說>을 믿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황의 반포하는 교리의 가르침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반포한 이 일치운동의 교리에 대해 이제는 이미 “베드로 좌”에서 선포된 것이기 때문에 이 일치운동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이제는 이 일치 교령에 선포된 대로 이를 수행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러한 근간(根幹)을 알면 왜 가톨릭이 이처럼 일치운동을 은근하고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지 그 모습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제1바티칸 회의에서 반포된 교황의 무류성에 관한 가톨릭 교리는 제2바티칸 회의에서 이를 다시 재천명하고 있다.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하는 때에, 교황은 자기 임무에 따라 그 무류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교황의 결정은 교회의 동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마땅히 바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복된 베드로 안에서 교황에게 약속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선포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정은 결코 다른 누구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고,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어떠한 상소도 허용되지 않는다.”(제2바티칸 회의)
여기서 보듯이 “교황의 결정은 교회의 동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마땅히 바뀔 수 없는 것”이다. 이 일치운동에 관한 24개의 교령도 교황이 “베드로 좌”에서 반포했기 때문에 같은 효력을 갖는 것이다. 때문에 이 일치운동은 확실히 영구적인 것이다.
교황의 무류성이 선포된 지 120여년이 지나 연구하고 정리된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도 이 교리는 다시 확인되고 재천명된다. 교리서 889, 890, 891항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891]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은 참으로 신앙 안에서 자기 형제들의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하는 때에, 교황은 자기 임무에 따라 그 무류성을 지닌다.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상 교도권을” 특별히 세계 공의회에서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재한다.” 교회가 그 최상의 교도권을 통하여 어떠한 것을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거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제시할 때에는 그러한 “결정에 신앙의 순종으로 따라야 한다.” 이 무류성은 “하느님 계시의 위탁이 펼쳐지는 그만큼 펼쳐진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여기서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상 교도권을” 특별히 세계 공의회에서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2바티칸 회의에서 결정되고 교황이 반포하고 주교단이 서명한 이 24개의 일치운동에 대한 가톨릭 교리는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운동의 교리임을 알 수 있다.
때때로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보면 이것은 그냥 “운동”이 아니냐? 그러니까 “운동”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의 일치운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의 “운동”이 아니다. 이는 가톨릭의 영구적인 교리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은 위에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보는 것처럼 교황의 결정과 ‘베드로 좌’에서의 반포로 공의회의 “결정에 신앙의 순종으로 따라야 한다.”
이런 일치 운동의 교리를 변형시킨다는 것은 1854년 12월 8일에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선포된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의 교리나 1950년 11월1일 교황 비오 2세에 의해서 선포된 ‘성모 승천’의 교리를 변형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난 50여 년간 이러한 일치 운동의 교리를 근거로 한 운동(?)이 개신교에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는 것이므로 그 근간(根幹)부터 잘 파악해야 이에 대한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