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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은 왜 일치운동에 몰두할까?

[기독교 기본교리 탐구] 조남민 목사/ 밸리성경교회/한인성경선교회- <3회>

종교개혁 교회일치운동의 근거를 이해하자

가톨릭 [일치교령] 24/ …이 거룩한 공의회는 신자들이 일치의 참된 진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온갖 경솔함과 무지한 열정을 자제하도록 권고한다.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이 아닌 일치 활동은 있을 수 없다. 곧 우리가 사도들과 교부들에게서 이어받은 진리에 충실하고, 가톨릭 교회가 언제나 고백하는 신앙에 합치하며, 주님께서 당신 몸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라시는 그 충만함을 지향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우리는 두 번에 걸쳐, 지난 20여 년 동안 가톨릭과의 연합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다음 5가지를 살펴보았다.
(1) 개혁 후 482년, 1999년 10월 31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루터교와 가톨릭이 “의회교리” 성명서에 공동 합의 (2) 2006년 7월, 서울 금란교회에서 “1999년 [의화 교리] 공동선언”에 감리교가 합의 (3) 개혁 500년주년 기념 총회, 2017년 7월 비텐베르크에서 세계개혁교회연맹이 가톨릭과 의화 교리에 합의 (4) 2013년 1월 29일 텍사스 오스틴에서 세례의 상호인정에 대한 공동협정. (5) 2014년 5월 22일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창림 2017년 3회 총회 실시.

이를 보면 앞으로의 상황이 얼마나 급변할지 예측이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우선 가톨릭의 근본 방침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 때문에 혹은 어떤 근거로 가톨릭이 이렇게 일치운동을 하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 근본을 잘 이해하고 대처해야 앞으로 이에 제물이 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10여 년 전에 일어났던 실제 상황을 같이 나누어 보고자 한다. 2006년 7월 10일 교황청이 기독교 교파들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 내용의 골자를 조선닷컴이 잘 요약했다. 우선 그 보도된 내용을 보자.
교황청은 16쪽 분량의 문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지구상에 오직 하나의 교회를 세웠고 이는 가톨릭 교회로 존재한다”며, “(개신교·영국 성공회·정교회 등) 다른 교파들에 과연 ‘교회’의 자격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리스 정교회에 대해서는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 결함이 있다(defective)”고 묘사했고, 개신교 등 종교개혁으로 생겨난 기독교 공동체들도 “교황의 존재를 시인하기를 거부하고, 성찬식(聖餐式·예수의 수난을 기념해 빵과 포도주를 먹는 의식)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등 올바른 의미에서의 교회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이 가톨릭 성명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승인아래 발표된 것이다. 모두 5가지의 질의 답변형식이었다. 첫째는 제2바티칸 회의는 교회에 대한 가톨릭 교리를 절대 변경시킨 적이 없다는 내용이다. 둘째, 셋째는 그리스도 교회가 가톨릭교회에 존속한다는 내용이다. 즉 그리스도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고 그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이 교회는 곧 가톨릭교회라고 답하고 있다. 넷째는 동방교회를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다. 다섯째는 16세기 개혁 때 나온 개신교에게는 ‘교회’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신교를 ‘교회’ 대신 ‘공동체(Communities)’로 명명하면서 개신교는 사도의 전승을 따르지 않고, 성사의 제사장이 없으며, 성체가 없으므로 ’교회‘라 부르기에 부적합하다고 말한 것이다.
필자는 이 발표가 있은 후 모 신문사의 요청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주는 교훈이 바로 가톨릭교회가 그들의 교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당시 교황청의 이러한 발표는 교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히 일치운동에 관여하고 있던 개신교 목회자들의 경우 다 된 밥에 모래를 끼얹는 것 같은 표현이나 땅이 꺼지는 것 같은 표현들이 보도되었다. 개신교의 독일복음주의교회(EKD)측은 이에 대해 “불쾌하다”면서 “(가톨릭과) 기독교의 관계 개선 기회가 날아갔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당시 107개국 214개 교단을 아우르는 세계개혁교회연맹은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계와 대화를 하려는 것인지, 기독교의 조화·일치를 위해 진정 함께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교회 통합을 위한 대화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시대로 돌아가 버렸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또한 발표 후 다음 날에 한국 개신교계와 종교학자들은 “당혹스럽다”고 했다고 한다. 그 외에 어떤 사람들은 “이번 발표는 참 슬픈 일이다” 또는 “배타적인 주장이다” “개신교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 기회 역시 놓치고 있다” 등의 말로 섭섭해 했다. 성공회 김광준 신부는 “‘가톨릭교회만 유일하고 합법적인 교회’이며,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교회들이라고 불릴 수 없다’는 주장으로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 노력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감신대 신학교수인 박종천 목사는 이번 교황청 문서를 통해 “현 교황이 보수적이라는 것과 교회일치 대화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한다.
당시에 있었던 다음 말을 들어보라. <영국 성공회 데이비드 필립스 주교는 10일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청이 권력욕 때문에 기독교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가톨릭과 기독교가 언제는 분열이 안 되었었다는 것인가? 분열이 되지 않았었고 하나 되었었는데, 교황청의 발언이 분열시키고 있는 것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보니 “당혹스럽다” 혹은 “참 슬픈 일이다” 혹은 “배타적인 주장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어떻게 말하냐에 따라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이 동요되어 거짓된 것들을 믿게 된다.
가톨릭교회의 김희중주교가 한 말에 대해 한겨레 뉴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기존의 교리를 재확인하는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일치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희중주교는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설득을 목적으로 말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의 목표는 ”일치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치운동이 왜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무엇에 근거해서, 무엇을 위해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김희중주교의 말을 듣고 속상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일치운동에 다시 치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치운동을 계속해야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가톨릭의 기존 교리’때문이라면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일전에도 강조한 것이지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교리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사실 교리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생각해보라. 교리가 분명하기 때문에 바티칸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바티칸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실제 예가 바로 “일치운동”이다. 가톨릭이 소위 “기존 교리”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일치운동”을 계속해야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제2바티칸회의 이후 교회 일치운동, 즉 에큐메니칼 운동을 그들의 사업 중 최우선순위 중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제2바티칸 회의는 일치운동에 관해 24개의 교령을 만들었다. 이 교령의 서두는 그들이 추진하는 일치운동이 얼마나 중요하고 영구적인지 그 진면목을 알려준다.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일치의 재건)- 하느님의 종들의 종 바오로 주교는 거룩한 공의회의 교부들과 더불어 영구적인 기록으로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공포한다.”
이런 서두아래 24개의 교령이 전개된다. 그중에 교령4는 가톨릭 신자들이 선익에 이바지하며 (갈라진 형제들에게) 일치운동을 촉진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령4 “… 가톨릭 신자들이 일치 활동에서 갈라진 형제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교회 일에서 그들과 교류하며,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발언의 근본을 알기 위해 주목해야 할 것은 교령24이다. 이 교령에는 <“온전히 또 순수하게 가톨릭적이 아닌 일치 활동은 있을 수 없다”>고 명시되어있다. 이 말은 교회일치가 반드시 ‘가톨릭적이어야 한다’는 말이고 또한 “가톨릭교회가 언제나 고백하는 신앙과 합치”하는 신앙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교황이 한 말의 근거이다.
그런데도 김희중주교는 교황이 한 말이 “기존의 교리를 재확인하는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고 일치운동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가 제2바티칸회의에서 세운 “기존 교리”를 현재는 바꾸었다는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치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교리가 ‘변형된 적이 없다’고 해야 옳은 것이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증거를 보자. (1) 김희중주교의 말 자체가 이를 증거한다. 그의 말은 교황이 “기존 교리를 재확인 한 것뿐”이니 이제는 이를 더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치운동”에만 힘씁시다-라는 식으로 교황의 말을 무마하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는 가톨릭 “기존 교리”와 “일치운동”이 동떨어진 것같이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일치운동은 가톨릭 교리에 근거해서 시작되었고, 현재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기존 교리가 바뀐 것처럼 말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교리는 바뀌지 않았다. 때문에 김희중주교가 “어떤 경우에도 일치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 교리가 변형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2) 1965년의 제2바디칸회의 이후 가톨릭이 추진하고 있는 일치운동의 50년의 역사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곧 이 글 서두에 말한 50년의 결과인 5가지가 그 증거인 것이다. (3) 2006년 7월의 베네딕토 16세의 선포가 이를 증거 한다. 그가 로마 가톨릭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교회’라고 한 것은 곧 그가 가톨릭의 교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를 가톨릭의 교리대로 공표한 것이다. (4)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이를 증거한다.
(3)항과 마지막 (4)항은 서로 맞물려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여러 개가 출판된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두 개뿐이다. 1563년 트렌트회의에서 나온 교리서와 1992년에 나온 가톨릭교회교리서이다. 1992년에 나온 가톨릭교회교리서는 1965년 제2바티칸회의의 일치운동에 대한 교령을 다시 재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리서가 “기존 교리”를 고수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 예로 가톨릭교회교리서 816항은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구원의 보편적 수단인, 그리스도의 가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수단이 온갖 충만함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지면관계로 여기서는 더 소개하지 못하지만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말한 것은 모두 교리서를 근거로 한 말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쉬~쉬”하며 일치운동을 하지만(예를 들면 요한 바오로 2세, 프란치스코 교황), 베네딕토 교황은 그들의 교리를 용감하게 말한 교황으로 이해해야한다. 다시 말하자면 베네딕토 교황의 말이 곧 가톨릭 교리의 진면목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옳은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일치운동은 가톨릭교회교리서 820항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재건하려는 열망은 그리스도의 은총이고 성령의 부르심이다”>라고 한 것처럼 이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가톨릭 교리이다. 이것이 기존 교리이고 현재 교리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온힘을 다해 일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교리는 변함이 없다. 변함이 없음으로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소개한 5가지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우리 기독교 목회자들이 가톨릭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베네딕토 교황과 같은 사람의 말에 주의하여 가톨릭교회교리를 살펴보고 연구해야할 것이다. 그래야 그들의 믿음을 올바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에 근거한 자신의 믿음도 지키고, 주님이 주신 양떼들을 이 영적 전쟁에서 잘 돌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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