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예술 > 초기 동방기독교 전래와 네스토리안 기독교 확장
문화/예술역사기행오피니언

초기 동방기독교 전래와 네스토리안 기독교 확장

[실크로드와 복음루트] 최하영 목사/ GMS 우크라이나선교사

(3회) 실크로드 천년 교회사

431년 에베소공회에서 네스토리우스가 정죄된 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선교적이며 개혁적인 네스토리안교단을 만들어 2세기만에 중국까지 주교를 보내고 교회를 세웠다. 그 영향으로 어찌 일찍이 한반도에도 복음이 들어왔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명령(마 28:19, 20)을 한 이래로 바울의 선교와 동시에 사도들도 사방팔방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즉 베드로는 안디옥과 로마로, 안드레는 북방 러시아로, 마가는 이집트로, 마태는 에디오피아와 이란으로, 도마는 인도와 중국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유세비우스(Eusebius)의 스승인 도로데우스(Dorotheus)에 의하면, 사도 도마가 파르티아인(Parthia)과 메디아인(Media), 페르시아인(Persia), 루만인(Ruman), 박트리아인(Bactrian), 마기인(Magi)에게 복음을 전한 후 인도 카라미나(Caramina)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또한 300년경 이방민족지(Adverse Gentes)에 사도 도마가 주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2년 만에 인도에 와서 극동으로 가는 도중, 파르티아와 부하라(Bukhara), 박트리아 등 여러 지방에 들려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한다. 이후 바르다이산(Bardaisan)과 민가나(A. Mingana), 브라운(L. E. Browne), 쿠레톤(W. Cureton) 등 여러 학자들이 동방에도 복음이 전해졌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 도마의 제자 아다이(다데오, 눅 10:1, 칠십인 제자 중의 한 사람)가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의 경계에 교회를 세운 개척자라고 하였다. 324년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도마가 오스로에네(Osrhoene)에 첫 기독교 선교사로 다데오(아다이)를 파송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90-430년에 기록한 아다이 교리(The Doctrine of Addai)에 따르면, 아다이가 아브가르 왕의 병을 고쳐주고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이는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313)보다 먼저 오스로에네가 세계 최초로 기독교국가가 바로 아시아에서 태동한 것이다. 계속해서 아다이의 제자 아가이(Aggai)와 마리(Mari)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아가이는 앗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 메디아인에게, 바빌론 주변 여러 나라에, 훈지족(Huzites)과 겔라이(Gelai, 카스피해 지역)에, 인도 국경과 곡 마곡(Gog Magog)까지 복음의 영향을 미쳤다. 마리는 세나르(Senar)와 셀류키아(Seleucia), 바다라자(Badaraja)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아르벨라의 연대기(Chronicle of Arbela)에 따르면, 당시 동쪽 쿠르디스탄(Kurdistan) 산맥에서부터 서쪽 카스피해까지 20명 이상의 주교와 17개의 주교구가 있었다고 하였다. 1994년 타쉬켄트의 5명의 학자가 쓴 ‘중앙아시아 기독교 역사’에 이미 3세기에 메주레츠(Mezdyrech)가 기독교의 본거지라고 하였다. 또한 베룬니(Beruni)는 200년에 메르브(Меrv)에 수도원이 존재했던 장소를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도마가 동방의 사도가 되었고, 또한 도마의 제자 아다이가, 그리고 아다이의 제자 아가이와 마리를 통하여, 또한 초대 시리아 기독교인들을 통하여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유프라테스(Euphrates)에서 힌두 큐쉬(Hindu Kush)까지와 아르메니아에서부터 페르시아 만까지 옛 실크로드(Old Silk Road)를 따라 유목민에게도 복음이 퍼져 나갔다. 이렇게 1~4세기 초기 동방의 기독교 바탕위에 5~15세기 천년간 네스토리안 기독교느 왕성하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431년 에베소 공회에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네스토리우스가(Nestorius)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고 신성을 약화시켰다는 이유로 정죄되었다. 이에 그의 추종자들도 추방이 되어 동로마제국과의 적대관계이며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인 사산제국이 다스리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정착하기까지 다시 약 150년간 초대교회 순교역사 이상으로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었다. 그 순교제물 위에 네스토리우스파는 네스토리안(Nestorian) 교단(동방교회, The Church of East)를 세웠다. 제3차 네스토리안 공의회에서 가톨릭과의 독립을 선언하고 최고의 수장을 총대주교(Catholicos)라 하였다. 그리고 성직자의 혼인도 승인하면서 서방교회와 점점 멀어졌다. 네스토리안 전 역사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은 총대주교 마르 아바(Mar Aba I, 540-552)이다. 당시 페르시아 사산왕조 안에서 조로아스터교인을 개종시킨다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또한 동로마제국과의 전쟁으로 사산왕조 안에서의 기독교인의 활동은 상당히 제한되었다. 그런 중에 마르 아바는 신학교육을 활성화시켰다. 또한 수도사들처럼 기독교인의 생활이 자기 부정과 순수성으로 돌아올 것을 교회에 요청하였다. 544년 제6차 마르 아바 공의회에서 옛 실크로드를 따라 메르브(Merv)와 베트라파트(Bet Lapat), 니시비스(Nisibis), 페라트 드마이산(Perat d-Maysan), 아르빌(Arbil), 키르쿡(Kirkuk), 아르다쉬르(Rev Ardasir) 등에 교구를 추가하였다. 더구나 마르 아바는 에프탈족(Huns)의 요청으로 549년 네스토리안 주교를 에프탈에 보냈고 그 영향으로 헤라트(Herat)가 대주교구가 되었다. 또한 이미 사마르칸트가 539년에 대주교구가 되었다. 이렇게 북방의 타타르족(Tartars)과 케라이트족(Keraite)과 위구르족(Uighur), 나이만족(Naimans) 및 메르키트족(Merkit)에게로 복음의 영향을 주었다.

또 사산왕조 전역에 카스카르의 아브라함(Abraham of Kaskar, 491-586)에 의해서 60개의 네스토리안 수도원이 세워질 정도로 부흥하였다. 또 사산제국 초스로에스 1세(Chosroes I, 531-579)때에 왕실의 후원(왕자와 왕후가 네스토리안인)으로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조로아스터교 다음으로 큰 종교가 되었다. 이렇게 오늘날 신학교와 같은 수도원의 부흥과 사산왕조의 협력으로 옛 실크로드 대상교역 도시마다 네스토리안 공동체가 퍼져나갔다. 네스토리안들은 단성론자인 야곱파와 구별되게 머리 맨 위에 바퀴나 왕관처럼 돌아가면서 노출되게 머리를 깎았다.

현재 로마 가톨릭은 성상숭배라든가 교황무오성, 교회 안에서만의 구원론, 사제들을 통해서만 성립되는 죄의 고백, 연옥설 등으로 성경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있다. 반면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한 알의 밀알 정신과 순교 정신, 한 영혼이 천하 보다 귀하다는 정신으로 살았던 것이다. 한편, 네스토리안의 본거지도 추방과 핍박으로 인해 에데사에서 아르벨라로, 아르벨라에서 니시비스로, 니시비스에서 셀류키아 크테시폰으로, 셀류키아 크테시폰에서 바그다드로 옮겨져 갔다. 그러면서도 수도원과 니시비스 학파 등을 통한 제자훈련과 영성훈련으로 개혁과 부흥은 계속적으로 일어났다.

6세기 투르키스탄(Turkestan, 돌궐, 552-734)의 유목민 특유의 열린 제국과 상인 소그인들로 인하여 네스토리안 교회의 복음화는 한층 더 확장되었다. 이란계 소그드인(Sogdian)들 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이 복음화 시키는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투르키스탄 제국은 이 소그드인을 경제, 정치, 외교, 첩보의 협력자로 삼았다. 소연대기(Chronica Minora)에서 644년 호라산(Khurasan) 에서 메르브 대주교 엘리아스(Elias)가 그 도시의 족장과 투르크인과 다른 족속의 출신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고 한다. 또 헌터(E. C. D. Hunter)는 메르브뿐만 아니라 케레이트족 계열인 오구즈족(Oghuz) 가운데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하였다. 또한 에프탈(백훈)에게도 영향을 서쪽으로 이동하여 기독교 국가를 이룬 아바르족(Avar)이 9세기에 마자르족에 흡수되어 헝가리의 모태가 되었다.

이제 때가 되매 7세기에 중국까지 실제적인 복음이 전해졌다.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의 어머니가 이미 네스토리안인(혹은 경교인)이였으며, 이연의 아들 태종의 문화포용정책으로 635년에 아나본 사절단이 시리아어 경전 530부를 가져와 번역하고 교회들을 곳곳에 세웠었다. 물레(A. C. Moule)는 이것을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하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이다. 더불어 로마 교황청의 문서(Bibliotheca Orientalis, Sancti Ephraen Syri Opera Omnia in Sex Tomas Distributa)와 18세기 네스토리우스의 유서(Heraclides)의 발견으로 네스토리안(경교) 기독교가 얼마나 아시아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오늘날 확연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431년 에베소공회에서 네스토리우스가 정죄된 후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선교적이며 개혁적인 네스토리안교단을 만들어 2세기만에 중국까지 주교를 보내고 교회를 세웠다. 그 영향으로 어찌 일찍이 한반도에도 복음이 들어왔다 아니할 수 있겠는가?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