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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사고의 위험성

[로마칼럼]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공의로운 사회(?)…깨끗한 사람 찾아보기 힘들지

요즈음 봇물 터지듯이 미투(Me too) 운동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단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상관없이 말이다.
또한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이제야 뉴스 화 되고 있을 뿐이다.
성은 소위 흑수 저 인생이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무기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힘 있는 자들이 교묘하고도 다양하게 수단화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봇물 터지듯이 미투(Me too) 운동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단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상관없이 말이다.
또한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이제야 뉴스 화 되고 있을 뿐이다.
성은 소위 흑수 저 인생이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무기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힘 있는 자들이 교묘하고도 다양하게 수단화하기 때문이다.

수년전 이태리의 국영 방송에서 예쁜 아나운서가 신상 발언을 했다.
그녀는 소위 국회의원의 요구에 부응한 댓가로 방송국에 들어갔다고 했다.
침묵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취직의 수단으로 삼았던 늙은 국회의원이 제 입으로 자랑함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아나운서는 아주 떳떳하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겠느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우리와는 많이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할 것이다.
더구나 이성과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지 싶다. 사람이 술 취하게 되면 부끄러움이 사라지게 되고 성적 욕망이 강하게 일어나고 상대방이 아주 예쁘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남녀가 함께 많은 술을 마시게 되면 반드시 성추행 내지는 문란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나라는 몇 년 사이 술 문화가 하나의 멋있는 것처럼 인식되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힘이 있고 상대방은 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대상일 때, 성 추행은 아주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앞으로 이 운동이 어떻게, 얼마나 강하게 불붙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불미스런 일이 알려져 하루아침에 좋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더구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눈총을 받아야 하니 본인이나 가족은 난감하기 그지없겠다 싶다. 한 순간 절제하지 못함으로 패가망신하게 되었으니 본인은 차치하고서라도 가족들은 이 큰 고통을 어떻게 견딜까 싶다.
어떤 사람은 명문대학의 교수 자리를 힘들게 얻었는데 그놈의 성추행이라는 찬란한 유혹에 빠져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는 자리를 떠나야 하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옆에서 보는데도 그런데 본인과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싶다.
뉴스에 나오고, TV에도 그런 사실이 쉼 없이 방영되니 말이다.
평생을 쌓아올렸던 명예와 인기와 존경의 단단했던 자리가 하루아침에 땅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니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싶다.
참으로 사람이 오르기는 어렵지만 내려가는 일은 순간이다 싶다.

요즈음에 미투로 인해 유명세를 타던 분들의 행사가 취소되고 심지어 책에서도 지워져야 한다고 사람들은 흥분한다.
그러나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 윤리나 도덕적으로 정갈하기를 세상은 원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이 존재할 까 싶다. 성인(聖人)이 아닌 경우에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면에서 깨끗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지 싶다.

다만 아직 들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일례로 그 유명한 간디 같은 사람도 주변의 여자들을 아주 심하게 다루었고 (성적 도구로)함부로 했다고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또한 20세기 최고의 화가인 스페인의 피카소는 주변의 많은 여자들을 병적으로 다루었고 그들을 파멸시켰다고 그의 딸은 주장할 정도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까지 쓰레기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우리도 이런 사고를 붙잡아야 하지 않을 까 싶다.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얼마 전 일간지에 우리나라 부통령을 역임하고 대학교 교장으로 학교를 명문대학으로 만들었고 유명일간지를 창간한 분에 대한 건국훈장을 60년 만에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는 그가 일제에 협력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일제 강점기에 중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닌 사람치고 과연 일제에 고개 숙이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 까 싶다.

똑똑한 사람, 공부깨나 한 사람치고 일제에 조금도 협조하지 않고도 자신의 위치를 지킨 사람은 없지 싶다. 들은 얘기로는 소학교 때부터 동방요배를 항상 강요했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처럼 철저하게 우리를 다루었던 일제인데 어떻게 전혀 협조 없이 대학을 운영할 수 있었고 또 신문사를 경영할 수 있었을 까 싶다. 그리고 강점기에 일제에 협력한 자들을 심사하는 분들은 강점기에 대학교육 을 이수한 사람으로 모진 핍박에도 지조를 지킨 사람들 중에 위원이 되어야 공평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일제의 핍박을 낭만적으로 상상하는 세대에서는 그 치열함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선배들이 그 혹독한 고난을 견디며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깨우기 위해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불철주야 헌신하고 노력한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기사 몇 편 썼다고 친일이라는 편린으로 채색하고 판단 한다면 지나친 것이 아닐까?
대학을 운영하고 신문사를 경영하는 사람에게 일제의 실력자가 이번 일본군입대를 독려하는 칼럼을 한편 써달라고 할 때 거부할 수 있을 까 싶다.

고로 그의 공과를 세밀하게 따져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되 기릴 부분은 인정할 수 있는 역사의식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을 때 이 땅에 존경할 대상은 한 사람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전혀 친일하지 않은 사람은 무학으로 농촌에서 묵묵히 살았던 사람 외에 누가 있을 까 싶다.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옥에 갇힌 자들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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