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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근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독교 기본교리 탐구] 조남민 목사/ 밸리성경교회/한인성경선교회- <1회>

종교개혁 5백년 그 당시와 현재, 의화교리 ‘상황’ 올바른 이해

지난 해 2017년은 종교 개혁 후 500주년이 되는 해였다. 1517년 10월 31일에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Wittenberg)에서 종교개혁의 불씨를 붙였으니 지난 해 10월 31일이 바로 500주년이 되는 해가 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지난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텐베르크를 방문하기도 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행사들이 열렸었다. 인터넷을 탐색해 보면 이에 관계된 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그 표제들을 나열해보면 종교 500주년 기념이 화두가 되었음을 과히 짐작할 만하다.

2017 년 종교 개혁 기념: 하이라이트▶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사이트▶2017년 마틴 루터: 종교 개혁 500주년. 흔적 찾기▶CTS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 다큐 – 루터의 길을 걷다 ① 종교개혁의 시작▶종교개혁 500주년 개신교 개혁과제는…루터 재조명 등 행사▶종교개혁 500주년’기념행사 봇물▶종교개혁 500주년, 한국교회와 사회의 새로운 개혁을 꿈꾼다! – 교회갱신▶종교개혁 500주년 기념대회▶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회▶종교개혁 500주년 독일 여행▶종교개혁 500주년기념 공동학술대회 – 한국기독교학회▶종교개혁 500주년, 성경으로 돌아가자▶종교개혁 500년, 루터의 길을 가다…
이런 행사들 가운데 지난해 필자도 세계이단대책 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이단대책 세미나를 위해 유럽을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방문이라 독일에 가면 반드시 비텐베르크를 방문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허락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간담회와 세미나로 일정을 소화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4시간 정도 가면 갈 수 있다는 거리를 미국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프랑스를 거처 독일까지 온 거리를 생각하며 비텐베르크를 눈앞에 두고 돌아가야 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눈앞에 있었던 비텐베르크! 이 도시를 생각하면 당시 하나님의 진리를 굳건히 고수하고 진리를 왜곡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조금도 굽히지 않았던 종교개혁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도시는 500년 전의 위용을 아직도 자랑스럽게 뽐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리에 굽히지 않던 모습은 사라져가고,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까지 굳건히 지키려했던 구원에 관한 교리, 의롭게 되는 의화 교리가 근 약 20여년 사이에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50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는지 그 내막을 조금이나 알고 있는 이단연구가로서 또한 가톨릭 연구가로서 비텐베르크를 바라보는 마음은 착착하기만 했다.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현재의 상황을 잘 파악해야만 되는 심각한 상황에 와 있다.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고 깨어있지 않는다면,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벧전 5:8) 찾는데 먹이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앞선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엡 4:14) 되기를 바라며 바른 진리로 온전케 해야 할 것이고, 성도들은 잘 깨어서 하나님의 진리를 사수해야할 것이다. 이 심각한 상황을 위해 종교개혁과 현재 가톨릭의 교회 일치 운동으로 인한 거시적인 움직임 몇 가지를 보기로 하자.

종교개혁, 의화교리, 비텐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10월 31일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교개혁은 지금부터 500년 전 1517년 10월 31일에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의 신학적 오류를 반박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교 정문에 붙이면서 시작되었다. 1517년 당시 종교개혁의 불을 붙인 10월 31일- 이 똑같은 날짜에 여러 가지 다른 사건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를 근거로 시작된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와 갈라지는 결과를 낳았다. 갈라지는 근본 이유는 진리의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은 바로 “이신 칭의”라고 부르는 “의롭게 되는 교리 (의화교리)”였다. 다시 말하면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의롭게 되는 교리”와 개신교에서 성경을 근거로 가르치는 “의롭게 되는 교리”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의롭게 되는 교리는 가톨릭에서 의롭게 되는 교리와 다르다는 것을 종교개혁자들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가톨릭과 함께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가톨릭과 갈라섰다. 이는 가톨릭의 많은 핍박으로 이어졌고, 많은 피를 흘렸다. 이는 근본적으로 구원의 가르침인 의롭게 되는 가르침 – 의화교리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5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교리로 갈라진 것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이를 거론하기 전에 장소 한 군데만 더 보기로 하자.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라는 곳이다. 지도로 보면 비텐베르크에서 기차로 약 5시간 정도 남쪽으로 가면 이 도시가 나온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 도시로 알려져 있다. 교회일치운동에서 이 도시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 “비텐베르크, 10월 31일, 그리고 아우크스부르크.”
이 도시는 종교개혁 당시에도 역사가 있는 도시였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내 건 이후 약 1년이 지난 후였다. 루터는 1518년 10월 12-15일 로마 카톨릭 추기경인 카예탄(Cajetan)과 신학 논쟁을 했다. 그곳이 바로 다름 아닌 ‘아우크스부르크’였다. 당시 이곳에서 루터는 교회의 최종적인 권위는 교회도 교황도 아닌 성경이라고 반박하고, ‘이신 칭의’의 의화교리의 가르침도 굽히지 않았다. 또한 1530년에는 루터에 기반을 둔 프로테스탄트 신앙 고백 문으로 멜란히톤이 작성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선포된 곳이기도 하다. 이때에 특별히 주장되었던 부분이 바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 즉 ‘이신 칭의’의 의롭게 되는 교리였다.
비텐베르크‘와 ‘아우크스부르크’는 이렇게 위엄있는 모습을 자랑하던 곳이었고 기독교인으로서 기억해야할 도시였다. 이 도시에서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경을 기억하며 논쟁하는 모습들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하지만 500여년이 지난 지금, 루터나 멜란히톤이 굽힐 수 없었던 의화교리의 주장과 종교개혁의 근본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 20년 내에 도미노처럼 무너진 몇 가지를 보기로 하자.

(1) 개혁 후 482년, 1999년 10월 31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루터교와 가톨릭이 “의회교리” 성명서에 공동 합의
개혁 후 482년이 지난 1999년 그 잊을 수 없는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그날, 곧 10월 31일에 사건이 터졌다. 그것도 개혁의 핵심인 “이신 칭의”의 성경의 교리를 고수하던 모범된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일어난 것이다. 당시 7천 2백만 명으로 알려진 루터교와 (약 12억의) 가톨릭교가 “의화교리”에 공동합의 성명서에 사인한 것이다.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울분을 감출 수가 없고,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톨릭의 입장은 다르다. 왜냐하면 가톨릭은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그 자세한 내용은 글이 허락하는 한 후에 보기로 하겠다. 아무튼 이에 대해 가톨릭은 쾌재를 부른 것이다. 가톨릭 신문의 글이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지난 1999년 10월에 이뤄진 교황청과 루터교 세계연맹 사이의 공동선언이 마르틴 루터(1488∼1546)의 종교개혁 이후 500년 가까이 갈등을 빚어온 교리에 관한 최초의 합의로 일치 운동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1) 이렇게 가톨릭이 쾌재를 부르기 시작하는 한편, “이신 칭의”를 주장하던 500년의 개혁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의 진리를 공격하는 자들은 멀리 있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성경을 사용한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진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엡 4:14)으로 성경의 진리를 흐리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루터교가 의화교리에 가톨릭과 합의했다고 한다면 가톨릭의 교리가 변화된 줄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가톨릭의 교리는 변함이 없다. 종교개혁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다. 사실 종교개혁 이후에 그 교리는 더욱 강화되었다고 이해하면 옳다. 그들의 전통이 계속 더해지지만 그들의 교리는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2006년 7월, 서울 금란교회에서 “1999년 [의화교리] 공동선언”에 감리교가 합의
절망의 날인 1999년 10월 31일, 그것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물꼬가 터진 이후 가톨릭의 일치운동은 신바람이 난 어린 아이처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7년이 지난 2006년 7월 23일, 7천만 명을 자랑하는 감리교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루터교와 천주교의 “「1999년 공동 선언문」이 … 의화 교리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분명하게 설명한 실질적 합의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담겨진 공동 이해가 감리교의 교리에도 부합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마침내, 가톨릭은 루터교와 감리교를 품에 안았다.
이에 대해 가톨릭 신문은 이렇게 말한다. “가톨릭교회가 루터교에 이어 감리교와도 7월 23일(일),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망우동 금란교회에서 ‘의화 교리’에 관하여 500년 만에 화해와 일치를 이루었다.” “역사적인 교회 일치 순간은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일치평의회’) 의장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 연맹 사무총장 이스마엘 노코 목사 그리고 세계감리교협의회 선데이 음방 회장이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세계 연맹과 세계감리교협의회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함으로써 이루어졌다”2) 이에 대해 기독교 신문들은 “감리교, 루터교, 가톨릭, 칭의 교리 합의 선언문 서명”등을 표제로 ‘3개 교회, 수백 년의 칭의론 논쟁에 종지부’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500주년이 되는 지난해 또 한 그룹이 합세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3) 개혁 500년주년 기념 총회, 2017년 7월 비텐베르크에서 세계개혁교회연맹이 가톨릭과 의화교리에 합의
물꼬가 한번 트이면 그 물꼬는 더 넓어지게 마련이다. 합의 선언문에 세계개혁교회연맹이 합세한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가슴 아프게도 개혁의 불씨를 붙였던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연 총회 중에, 세계개혁교회연맹과 가톨릭이 의화 문제에 대해 합의가 일어난 것이다. 세계개혁교회연맹은 스위스에 본부를 둔 200여 개신교 교회들의 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 뉴스는 여기에서의 합의를 이렇게 말한다. “세계 개신교의 주요한 부분인 세계개혁교회연맹(WCRC)이 가톨릭과 의화 문제에 합의했다. WCRC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개신교 조직으로 전 세계에 약 8000만 명의 개신교인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예장 통합과 기장 등이 가입해 있다.” 놀랍게도 1999년부터 지난 20년 사이에 루터교, 감리교, 세계개혁교회연맹과 가톨릭이 의화교리에 하나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500년 전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 상황인가? 가톨릭의 교리가 변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의화 교리” 때문에 갈라진 것을 500년이 지났다고 어떻게 합의할 수 있는가? 가톨릭을 연구하면 할수록 함께 할 수 없는데, 이는 겉으로 표현된 것만 보고 비슷하다고 합의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종교개혁의 굳건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성경의 진리가 외면당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트인 물꼬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이 상황을 올바로 알아야한다. 그것이 현재로써 진리를 사수하는 길이 될 것이다. 현재 가톨릭이 추구하는 상황을 올바로 알 때 이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면이 허락하는 한 이 상황을 깊이 나누어 보고자 한다.

1) http://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156264
2)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300&bid=130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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