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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역사기행

네스토리안 교회의 태동과 그 과정

[실크로드와 복음루트] 최하영 목사/ GMS 우크라이나선교사

(2회) 실크로드 천년 교회사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으로 오셔서 이 세상에 우리에게 삶의 본을 보여주셨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상의 화목제물이 되셨고 장사되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시고 승천하시면서 심판 때에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열흘 만에 성령 받고 33년에 예루살렘교회가 탄생하였다. 이렇게 교회도 하나요 교단도 하나였었다. 그랬던 가톨릭적이며 사도적이었던 교회가 431년 에베소서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노플 대주교(428~430)였던 안디옥학파 네스토리우스(Nestorius)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최초로 동방교회(The Church of East) 혹은 네스토리안(Nestorian)교회를 세워 가톨릭교회와 분립하였다. 그리고 다시 451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중심의 가톨릭(서방교회)과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중심의 동양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로 분리되었다. 그 후 문화와 언어적인 이유로 1054년에 가톨릭은 로마가톨릭과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로 다시 분립하였다. 그리고 1517년 로마가톨릭에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가 분립해 나오면서 그 후 여러 개신교 분파가 생겨났다.

사실 에베소서 공회 전까지 기독교회는 오직 하나였다. 이 가톨릭교회의 공의회에서 교리와 신앙이 다를 때에는 이단으로 정죄하여 핍박하였다. 그러나 431년 제3차 에베소서 공의회에서의 네스토리우스 정죄는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네스토리우스와 기독론 논쟁을 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 치릴루스(Cyrillus)도 정죄되었으나 곧 회복되었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는 오늘날까지도 로마가톨릭으로부터 해벌을 받지 못하고 있다. 네스토리우스가 유배 후 451년 칼케톤 공회 전에 죽을 때에 가명으로 ‘헤라클레이데스의 생애’를 남겼는데, 1889년 시리아 번역본이 남겨지면서 그 후 그에 대해 재평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약 1,400년간 가톨릭은 철저하게 네스토리우스의 이론과 그를 따르는 그룹을 철저하게 지워왔었다.

안디옥학파인 네스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면서 양성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학파인 치릴루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단성론자가 되었다. 사실 451년 제4차 칼케톤 공의회에서 화합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신앙 고백이 채택되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며 동일하신 아들로서 신성에 있어서 똑같이 완전하시고, 인성에 있어서도 똑같이 완전하시며,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이성적 영혼과 육신을 지니신 참으로 인간이시다. ····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께로부터 나셨으며, 같으신 분이 인성에 있어서는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어머니이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한 분이시며 동일하신 그리스도시요, 아들이시며, 주님이요 독생자이신 그 분은 혼합됨도 없고 변화됨도 없으며 분할도 없으며 분리도 없는 두 본성을 가지고 계신다. 두 본성들의 차이는 결코 결합으로 인해서 제거되지 않으며, 오히려 각각의 속성이 보존되고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위격에서 일치되고 있다. 따라서 두 인격들로 나누거나 분할되지 않고 한 분이시며 동일하신 독생자이시고, 하나님이시며,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는 대부분 네스토리우스의 교리이다. 다른 것은 동정녀 마리아를 치릴루스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했는데,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로마가톨릭은 동정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믿고 기도하는 것 같다. 또한 위의 ‘두 본성들의 차이는 결코 결합으로 인해서 제거되지 않으며’라고 했는데, 치릴루스는 ‘두 본성들은 결합으로 하나이다’라고 하면서 단성론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때 화합하지 못하고 또 분립이 되었다. 즉 서방교회(Catholic)와 동방교회(Oriental Orthodox)로 나눠지게 된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으로 오셔서 이 세상에 우리에게 삶의 본을 보여주셨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상의 화목제물이 되셨고 장사되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시고 승천하시면서 심판 때에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사실 서로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중 어느 쪽에 강조점에 두냐에 따른 차이인데, 당시의 이 기독론 논쟁은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주교로 있을 때에 그의 설교는 순수하면서 강직했고 그 도시에 주둔해 있던 이단으로 정죄되었던(325년 니케아 공의회 때) 아리우스주의자 고딕(Gothic) 군인들에게 교회 출입을 금지하면서 그 반발로 인해 교회에 불을 질었다. 또한 황제의 누이였던 플체리아와 정치적이고 신앙적인 면에 대립하면서 수도원주의의 규율을 강조하였다. 더구나 세속적인 것까지 금지하였는데, 특히 나체 춤을 금지 할뿐만 아니라 그 춤추는 자들을 추방하면서 430년에 폭동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이런 중에 431년 에베소서 공의회에서 양성론자라는 이유로 정죄되어 유배를 가게 되었고 그의 모든 서적들이 불태워졌다. 그러나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많아지면서 선교적 수도원주의가 되어갔다. 이렇게 수도자적 · 선교적인 신앙생활을 지향한 네스토리우스 추종자들은 다양한 선교 방법들을 동원하여 낮은 문화수준에 머물러 있던 유목민들에게 문자를 만들어 주었고, 관개수로를 통한 농경술을 전수하였으며, 옛 실크로드를 통한 대상숙소까지 건설하였다. 이들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어디를 가든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한 선교적인 교단이 되었다. 네스토리안 신학은 선교지향적인 신학이었고, 선교는 만족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헬라 철학과 논리학을 배웠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학과 논리학을 번역하였고, 데오도루스(Theodorus Mopsuestia)의 성경 해석학인 문자적이며 본문적인 해석을 모델로 삼았다. 503년에는 수천 명의 신학생이 있을 정도로 부흥하였다.

사산왕조와 콘스탄틴제국과의 전쟁이 있을 때에 사산왕조 내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늘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인 사산왕조는 자신들의 왕조 내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313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동로마제국의 첩자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후 사산왕조 페로즈(Peroz, 457-484)가 왕조 내의 기독교인들에게 호의를 베풀 때까지 약 150년간 초대교회가 고난을 받은 만큼이나 극심한 핍박을 받았었다. 즉 태양을 향해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5명의 주교와 100여명의 사제가 한꺼번에 순교를 당하였다. 그리고 아디아베네에서 16,000명이 카르카에서 153,000명의 기독교인 학살을 당하였다. 손과 등, 얼굴 피부의 가죽을 벗기고 정교한 아픔을 주기 위해 갈대로 몸을 찢고, 큰 구덩이를 파게 하여 그곳에 쥐를 채워 온 몸이 묶인 기독교인을 던져 넣었다. 이런 수십만의 순교자의 피 위에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면 당한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들이 사산제국 내로 이동하여 동방교회를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424년 네스토리안교회(동방교회) 제3차 공의회에서 총대주교(Catholicos)는 가톨릭의 교황의 권한과 동등하다고 선언되었다. 또한 가톨릭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 독립하였다. 486년 제4차 공의회에서는 주교의 혼인이 인정되면서 되어 가톨릭교회와 좀 더 멀어지게 되었고 양성론적 삼위일체를 채택하였다.

이렇게 325년 가톨릭교회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죄되었던 아리우스파(Arian)교회는 스페인과 고울 지역인 서유럽으로 퍼졌고, 431년 가톨릭교회의 에베소서 공의회에서 정죄되었던 네스토리안교회는 동쪽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로 퍼졌고, 단성론(Monophysite)교회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쪽인 이집트와 에디오피아, 시리아, 아르메니아로 퍼지게 되었다. 이 중 네스토리안교회의 발전 및 확장에 대해 다음에 연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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