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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함께 가자” – 원현철 목사

[이달의메시지] 원현철 목사/ 뮌헨한인교회

사순절 메시지

[성경본문: 마태복음 26:36-46]

36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44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6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에서 이 사순절 기간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삶,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등을 생각하면서 근신하고 회개하며 지내는 시간입니다. 또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그를 따르는 제자의 도를 훈련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돌아온 사순절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실천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집하시던 날 밤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시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시기적으로 따지면 사순절의 맨 마지막 주일인 고난 주간 중에 있었던 사건인데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식사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에 가셨습니다. 모든 제자들을 다 데리고 가셨지만, 기도하러 조금 더 나가실 때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 이르러 세 명의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신 후,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기도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죽음 앞에서는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계셨음을 잘 보여주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지만 그의 기도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그 고통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셨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도는 이어집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결국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이렇게 기도하기를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미 밤이 깊기도 했겠고, 낮 동안 예수님과 많은 일들을 하면서 다녀서 피곤하기도 했었던 터라 기도하라는 말씀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잠이 들어 버립니다. 예수님이 세 번이나 깨우셨지만 그들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가 오셔서 그들을 깨우시며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46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당신이 가실 길을 가십니다. 이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 중에서 두 가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어나라”고 하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도를 하시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일어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이제부터 가야 하는 길은 예수님께도 너무나 힘든 길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때 예수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셨는지,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그리고 애타게 기도하실 때,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한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모든 제자들에게는 그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고, 그 다음 따로 데리고 간 세 명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과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내 졸다가 잠이 들고 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두고 세 번 따로 가셔서 기도를 하고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 번 모두, 제자들은 깊은 잠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하시면서 안타까워 하셨죠.
성경을 보면 ‘잠’이 좋은 의미로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시편 127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잠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라고 하면 그건 좋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 분명하겠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설쳐 본 적이 있는 분들은 그 의미를 더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잠이 항상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 졸음이나 잠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드로아에 이르러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아마도 3층 다락에서 가르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길어지면서 밤이 깊어졌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청년이 창가에 앉아서 바울의 말을 듣다가 깊이 졸게 됩니다. 그리고 3층 난간에서 떨어져 땅에 떨어져 죽고 맙니다. 물론 나중에 바울이 그를 살려내기는 했지만, 잠이 그를 죽게 만든 것이죠.
이렇게 육신의 잠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면에서의 잠도 문제가 됩니다. 영적으로 잠에 빠졌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몸이 잠이 들면 제대로 반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졸음운전입니다. 순간순간 반응을 해야 하는데, 잠에 취하게 되면 그같은 반응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영적으로 잠이 든다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영적으로 잠이 들면 둔해집니다. 자신의 영의 상태가 어떤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졌는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을 밥 먹듯 행하면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는 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영적으로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순간순간 반응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런 반응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이정도면 족하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도로써 하나님께 반응을 하지 못하니 세상과 구분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겠다고 결단하고 나선 여러분들인데, 정작 여러분들은 그 길을 어떤 모습으로 걸어가고 계십니까? 깨어 있습니까? 혹시 졸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한참을 졸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그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2017년 사순절이 시작된 지금 우리들을 향해서도 예수님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해 무뎌질 대로 무뎌진 우리들이 깨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이번 사순절을 지내면서 혹시 여러분이 영적인 잠에 빠져 있었다면깨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당하셨던 고난을 여러분의 마음에 새기시고, 그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는 시간으로 삼으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제자들을 잠에서 깨우시고 그들에게 일어나라고 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사실 이제껏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제자로 부르신 이후로 제자들은 적어도 예수님과 늘 함께 다녔습니다. 적어도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도 여행을 다니는 때를 제외하고는 예수님과 거의 항상 같이 다녔습니다. 그런데 다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제 예수님께서 “함께 가자”고 하시는 그 길은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과는 다른 길입니다. 그 길은 앞서 예수님께서 기도하며 준비하셨던 길입니다. 그것이 어떤 길입니까?
예수님은 이제부터 가셔야만 하는 ‘십자가의 길’을 위해 방금 전까지 기도를 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조롱과 조소를 견디며 가야 하는 그 길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직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오셔서 “함께 가자”고 하는 길이라면 그것이 어떤 길이겠습니까? 그 길은 바로 예수님께서 앞서 걸으시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부터 절대로 예수님과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을 했을 겁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마음에는 이제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이 뭔가 큰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자신들은 그 때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길에 그들은 누가 더 크냐를 가지고 싸우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가자고 하지 않으셨어도 예수님과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같이 가자고 하시는 것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당신이 가실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알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길이었던 것이죠.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 ‘일어나라’고 하신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에게도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우리들이 함께 가야 하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에게 듣고 따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냥 듣고 좋으면 따르고 싫으면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서 예수님께서 ‘함께’라고 하신 것은 비단 나와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함께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의 길을 가신 후에 무엇이 생겨났습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과 함께 가고자 하는 이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바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인 것이죠. 여러분들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는데, 홀로 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함께 가는 겁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며, 다른 지체들과 함께 하며 그 길을 가는 겁니다. 함께 가는 그 길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가는 길이 될 겁니다. 혼자는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하기에 그 길을 가는 것이죠.
사순절을 맞아서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시고, 깨어난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 길은 여러분이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뒤를 쫓는 그 길은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이 다 같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제자들은 그 길을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끝가지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조금 후에 예수님이 잡히시자 모두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함께 가자고 하셨지만, 결국 십자가의 길을 혼자 가셨습니다.
왜 제자들이 도망을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건 그들이 깨어 기도해야 할 때, 졸며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영적인 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시험은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라고 하는 것일 겁니다. 힘들고 어려운데 왜 거기에 집착하냐고 하며 우리를 유혹할 겁니다. 그 유혹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성령께서 도우실 겁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함께 가야 합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가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을 맞아 여러분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잠들어 주저앉았던 그 자리에서 일어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또 모든 성도들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가겠다는 결단을 새롭게 합시다. 중간에 도망쳐 버리는 제자들처럼 중간에 포기하는 성도가 아니라, 끝까지 주님과 함께 가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새롭게 세워나가는 사순절 기간을 삼으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원현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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