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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굴의 성모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26회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 작품

그림의 배경은 어둠이 짙은 동굴이다. 배경은 어린 세례 요한은 이곳에 버려진다. 홀로 있는 어린 세례 요한을 마리아와 어린 예수가 방문하는 장면이다. 물론 성경의 내용과는 관련 없다. 암굴의 성모에 등장하는 천사는 우리엘이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가브리엘 천사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림을 그려낸 작가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으니 독자들은 상상할 뿐이다. 암굴의 성모는 현대 문명에서 약 500년 역사의 어느 정점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생존 당시에도 전설적인 천재로 불렸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같은 내용을 주제의 두 그림은 현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다른 하나는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같은 주제지만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마치 다른 점을 찾아내는 숨은 그림 찾기 게임과도 같다. 눈에 띄게 다른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에는 마리아와 어린 세례요한, 아기 예수의 머리에 후광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런던내셔널갤러리의 그림에는 후광을 그려넣었다. 세례 요한을 구분하기 위해 가느다란 지팡이 같은 십자가를 매고 있는 세례요한이지만 루브르 박물관에는 십자가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루브르에 다른 하나는 그림 오른 쪽에 있는 천사 ‘우리엘’의 오른 손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은 오른 손가락으로 세례 요한을 가리키고 있지만 내셔널갤러리 그림에는 손은 찾아 볼 수 없다. 암굴의 성모는 미완성으로서의 완성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천사의 왼손으로 어린 예수를 받치고 있는 모습은 완성되지 않은 채 형태로만 느낄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된 그림은 대략 1483-1486년에 그려진 것이고,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된 그림은 그 이후인 1500년 초에 그려진 것이다. 런던의 그림은 다빈치의 제자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Ambrogio de Predis)의 손이 많이 간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은 ‘스푸마토’(sfumato) 기법으로 그려졌다. 선과 선의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구분 지을 수 있도록 흐리게 명암을 주어 자연스럽게 그림의 개체가 하나가 되게 하는 명암법으로 그려졌다.
매년 성탄의 계절이 오면 각광 받는 <암굴의 성모>는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림의 배경은 어둠이 짙은 동굴이다. 배경은 어린 세례 요한은 이곳에 버려진다. 홀로 있는 어린 세례 요한을 마리아와 어린 예수가 방문하는 장면이다. 물론 성경의 내용과는 관련 없다.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장은 세 명으로 기록된다. 하나님 앞에서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가브리엘, 하나님의 군대 장관인 미가엘, 타락한 천사장으로 마귀가 된 루시엘(루시퍼)이다. 암굴의 성모에 등장하는 천사는 우리엘이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가브리엘 천사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림을 그려낸 작가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으니 독자들은 상상할 뿐이다. 다만 로만 가톨릭 계통에서는 우리엘이라 해석을 하고, 프로테스탄트 쪽에서는 우리엘이란 천사장이 성경에 없으니 기쁜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암굴의 성모는 현대 문명에서 약 500년 역사의 어느 정점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다빈치는 다시 천 오백년 전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냈다. 세례 요한은 왜 암굴 속에 버려졌을까? 다빈치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에 성경 외에 다른 기록들을 로만 가톨릭은 인정했다. 어떤 면에서 성경보다 더 큰 위치에 있기도 했다. 모든 인생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세례 요한의 탄생 목적은 분명했다. 메시야를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서 예수 보다 육 개월 일찍 태어난 예수의 이종 사촌이다. 태어나서 버려진 것을 설정으로 한 것은 당시의 종교 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헤롯 대왕은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죽이라 명령을 내린다. 당연 어린 세례 요한도 이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아이를 죽이려 했던 대 헤롯의 핍박을 피해 이집트의 한 동굴에 버려진 세례 요한을 마리아가 방문 한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모든 주제는 가설이며 꾸며낸 허구일 뿐이다. 성탄절 자체가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정해진 날이지 역사적인 날은 아닌 것이다. 마리아 숭배사상도 잘못된 성탄 문화에서 기인된 것이다. 결코 실존의 마리아는 그림속의 마리아처럼 절대 미녀로서 우아하거나 화려한 청색 비로도 망토를 걸치지 않았다. 중세에 그려진 마리아의 복장은 늘 푸른색이다. 중세 시대까지 성모 마리아를 바다의 별이라 불렀다. 그래서 바다를 상징하는 마린과 그 색상인 블루는 마리아의 전용색상이 되었다. 마리아가 두른 망토의 푸른색인 ‘울트라마린 블루’ (ultramarine blue)인 청색 물감은 아프가니스탄 산의 라피스 라줄리를 분쇄에서 만들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고가였기에 마리아 외에 다른 그림에는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리아에게 그 색을 입혔을까? 청색은 성경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색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경에서 푸른색은 하나님의 약속의 기억을 상징한다. 제사장들이 입는 옷소매에 푸른 술을 달았다. (민15:38-39) 제사장이 입는 에봇의 겉옷은 전부 청색으로 만들어졌다.(출28:31) 뿐만 아니라 법궤를 이동할 때 마지막으로 덮는 보자기도 푸른색 계통이었다.(민4:5-7)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색상은 푸른색이었다.
중세 시대에 그려진 성화의 대표적 인물은 두 사람이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거기에 버금가는 사람이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상징인 푸른색의 망토를 걸쳐 놓음으로 그 형태가 어떠하든 마리이아 임을 나타내는 암묵적 약속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붉은 망토를 두르고 계신다. 붉은 색은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를 상징한다.
암굴의 성모 마리아의 그림은 상상력을 더해 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그것이 성경을 대신할 수 없으며, 성경을 해석해 낸 것도 아니다. 실상 성화를 그려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천재 화가일 뿐이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까지 성경의 원형을 사실상 잃어버린 상태로 당시 로만가톨릭이 해석해 낸 성화를 통해 성경의 권위 이상을 두었던 잘못된 신앙의 습관이 오늘날까지 잔재해 있다.
성탄의 계절에 <암굴의 성모> 그림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셔서 음부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는 그 능력이 오늘 내 개인적인 신앙에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할지를 깊이 묵상케 한다.

박심원 목사
런던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순회선교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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