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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위기와 자정능력

[오피니언] 안병기 목사/ 런던영광교회

교회의 위기와 자정을 위한 작은 노력

성숙하게 하시는 “거룩에로 이르는 길”에서 종교개혁이라는 자책과 자정이라는 개혁운동이 일어난 것이기에 이제는 500년 전 종교개혁을 일으키신 성령께서 다시 일하셔서 신앙적인 개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황금시기의 아이들(4~14세)에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일깨워 주고 복음으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는 일꾼들이 되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개혁의 주역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제 13회 런던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마치면서

오늘날 교회에 대한 시비와 비판의 글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성 도덕적인 타락성을 두고 지적을 하면서 이제는 교회에 소망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부패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을 일으켰다고 음식을 다시 안 먹는 사람이 있을까? 만일 식중독에 걸렸다면 우선 어떤 것이 부패한 음식이었는 가를 생각해 보고 가려 먹으면 될 뿐인데 음식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자정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접근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글줄이나 쓸 줄 아는 사람이면 오늘날의 기독교에 대해 자정능력을 잃었다고 말을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것은 기독교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교회는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인 것이다. 빛과 소금은 순수의 원천인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신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어느 공동체보다도 맑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부르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패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심인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소금의 맛을 잃게 했고 빛을 가리게 했다.
열 두해를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있었다. 여인의 하체로 피가 흐르는 병으로 늘 부정한 몸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가 주님이 그 곁을 지나가실 때 부끄러워 나서서 고쳐달라고 구하지도 못하고 주님을 뒤로 다가가 살며시 주님의 옷가를 만졌다. 그러자 즉시로 그의 혈루가 마르는 것을 경험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때 예수께서 그 녀를 돌아보시며 “딸아! 안심을 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심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이 기적을 통해 주님이 진정한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세상의 물건들은 부정한 것이 정한 것을 만지면 부정해 지지만 하나님은 순수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부정해 질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부정한 것도 정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적인 특성인 것처럼…
교회의 타락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지 아무리 부정한 여인이라해도 주님의 옷가를 만짐으로 정함을 얻은 것처럼 연결되지 못한 주님과 연결이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일 것이다.
우리 신앙에 가장 큰 생명력은 바로 거룩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것이다. 인간의 최대의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하기만 하면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갈 때 대제사장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문구를 쓴 금패를 관에 붙이고 들어갔던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에 격돌을 당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세나 엘리야를 만나실 때도 그의 앞을 가리우시고 뒷 모습만 보여 주셨고 이 땅에 오실 때에는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우리가 본받을 가장 중요한 모범과 행위들을 말씀해 주시고 본을 보여 주시며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책망도 서슴치 않으셨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가졌던 종교적 보편주의와 대중들의 인기 편승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히 절대적이라는 인상을 부여 하려고 하였지만 주님은 첨예하고 철저하게 대항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이들을 칭하며 “너희는 마귀의 자식들이다”고 하셨다.
특별히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아주 뜻 깊은 해이다. 이러한 해를 맞아서 교회 각층에서는 여러가지 행사에 분주했다. 그 중에 한가지 소망을 건다면 그것은 바로 종교개혁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개혁을 우리가 아는 개혁자들 즉 마틴 루터나 죤 칼빈 그리고 쯔빙글리 죤녹스 등등 많은 신앙적인 지도자들이 해 왔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어록이나 행위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왔고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부지런히 살아온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 문득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지난 일들을 회고해 보니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500년 전의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의 시대와 방불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 어찌된 일일까? 종교개혁을 일으켜 지금까지 바른 길로 왔다면 우리는 더 발전적인 형태로 훨씬 더 신앙적인 모습으로 주님과 더 가까워진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 할 텐데 오히려 면죄부를 팔 당시의 모습으로 모양과 모습은 달라도 거의 비슷하게 닮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조명하며 관심을 가져 왔던 인물들이 종교개혁의 주역이 아니라 바로 성령께서 그 개혁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서 오해하거나 등한히 해 왔다. 그 이유는 그동안 한국교회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신유와 방언, 기복 사상 등 만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 개인적인 은사 자랑에만 치우쳐서 모든 영적 운동이 개인적인 이익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이기주의 신앙에 빠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극단적 은사주의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성령에 대한 신학적 교리적 이해도 거부하고 성령운동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는 질문으로 시작한 것같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특징이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셨느냐? 아니냐? 에 달려 있었다. 성령은 믿는 이들에게 임하여서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여 성숙한 삶을 살게 하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이 성숙하게 하시는 “거룩에로 이르는 길”에서 종교개혁이라는 자책과 자정이라는 개혁운동이 일어난 것이기에 이제는 500년 전 종교개혁을 일으키신 성령께서 다시 일하셔서 신앙적인 개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황금시기의 아이들(4~14세)에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일깨워 주고 복음으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는 일꾼들이 되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개혁의 주역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100명의 어린이들을 초대하여 제 13회 런던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열었는데 아이들이 104명이 등록을 하여 풍성하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끝내게 되었다.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리며 이를 위해서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과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분들께 지면을 빌어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고 어린이 사역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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