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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신앙 “불 붙이자”

[베를린]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유럽종교개혁 탐방

어두운 시대 불꽃같은 삶 살던 개혁자 발자취 따라서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유럽종교개혁 탐방에 미국 LA 홀리클럽과 한인 목회자들, 워싱턴 베다니교회, 샌프란시스코 상항중앙장로교회, 한국, 필리핀, 러시아, 베트남, 알바니아, 독일 등에서 목회자, 선교사, 사모, 평신도 지도자들 총 48명이 참가했다. 8월 24일부터 9월 1일까지의 종교개혁의 자취는 참으로 다양했다…

유럽은 종교개혁의 유산이 생생히 숨 쉬는 곳이다.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마틴 루터와 종교개혁은 독일과 유럽을 바꾸었고,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유럽종교개혁 탐방에 미국 LA 홀리클럽과 한인 목회자들, 워싱턴 베다니교회, 샌프란시스코 상항중앙장로교회, 한국, 필리핀, 러시아, 베트남, 알바니아, 독일 등에서 목회자, 선교사, 사모, 평신도 지도자들 총 48명이 참가했다. 8월 24일부터 9월 1일까지의 종교개혁의 자취는 참으로 다양했다. 전체 종교개혁 탐방 일정과 현장 설명은 김현배 목사가 인도했으며, 프라하와 스트라스부르크에서는 현지 한국인 가이드가 설명했다.
제 1일째, 8월 24일(목)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 문, 제국의회 의사당, 체크 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 돔교회, 카이저 빌헬름 교회를 둘러 보았다. 특히 유대인 추모비 속에 담긴 의미는 깊었다. 유대인들을 위한 위로와 독일 사람들의 사죄 그리고 또 다시 치욕스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의 독일을 건설하겠다는 독일 사람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오후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국, 영국, 소련의 연합군의 정상들이 모인 포츠담 회담 장소인 “세칠리엔 호프”(Cecilienhof)를 방문했다. 각 방에 대한 역사가 한국말로 설명이 잘 되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제 2일째, 8월 25일(금), ‘엘베강의 베네치아’라고 불리우는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츠빙거 궁전과 젬퍼 오퍼, 프라우엔 교회, 군주들의 행렬 벽화, 브륄의 테라스 등은 아름다웠다. 웅장한 바로크 건축물들과 검게 그을린 건물들 등 도시 전체가 박물관과 같았던 드레스덴은 동유럽 문화의 중심지다웠다. 오후에는 독일 동쪽 경건주의 부흥의 땅이요, 세계선교의 지평을 열어갔던 헤른후트(Herrnhut)에 도착했다. 체코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망명한 모라비안 교도들의 예배처소인 모라비안 교회와 박물관, 묘지 그리고 모라비안 교도들이 세계 선교를 위해 릴레이 중보기도를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무려 100년간이나 기도했던 후트버그 기도탑을 찾았다. 탐방팀은 후크버그 기도탑에 올라가 조국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였다. 그 후 ‘북쪽의 로마’, ‘백탑의 도시’라고 불리는 프라하에 도착하여 야경을 보았다.
제 3일째 8월 26일(토), 프라하 탐방은 중세시대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종교개혁의 새벽별, 얀 후스가 목회했던 베들레헴 교회와 그의 동상을 찾았다. 후스 동상에 새겨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는 그의 명언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또한 허무한 인생을 향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구 시청사 벽에 있는 천문시계와 당시 저항하다 27명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이 처형당한 구시청사 바닥의 순교현장과 과거 후스파의 근거지였던 틴 성당과 516m에 달하는 카를교와 성 비투스 성당을 둘러보았다.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던 프라하 땅, 화형당하면서도 끝까지 붙들었던 종교개혁자 후스는 우리들 가슴에 오직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고, 순교 신앙을 깨우쳐 주었다.
제 4일째, 8월 27일 주일오전, 이영환 목사(대전한밭제일교회)는 버스 안에서 귀한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이어 베를린 외곽에 있는 작센하우젠(Sachsenhausen)의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찾았다. 1936년 나치가 만들었던 수용소에는 반정부세력(반나치세력)들인 주요정치관련 포로들과 히틀러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끌려왔다. 이 수용소에는 노동과 폭력, 교수대, 강제살균, 강제거세, 인체실험을 하던 곳 등이 있으며, 담 벽 위로는 전기가 통하는 줄로 불리는 “죽음의 줄”로 탈출을 못하도록 설치해 놓았다. 유대인 강제수용소는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잔인함이 어떠한가를 보여준 것 같았다.
오후에는 베를린 비전교회(김현배 목사)에서 성도들과 함께 종교개혁탐방팀 모두 주일 예배를 드렸다. 문일성 장로(샌프란시스코 상항중앙장로교회)의 기도 후에 김영진 목사(워싱턴베다니교회)의 “생명의 능력”(살전 5:19-22)이라는 제목으로 “생명을 살지 못하면 어두움에 살게 된다. 생명을 사는 사람은 말씀을 붙들고 산다. 가짜 믿음을 버리고 죽어도 죽지 않는 영생을 누리는 진짜 믿음으로 찬양하며 살아가자”고 선포했다. 이준우 목사(LA 밸리커뮤니티교회)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다함께 식사를 마치고 저녁 식사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 5일째, 8월 28일(월)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Wittenberg)에 도착하여, 루터가 교황청의 파문장을 불태웠던 장소와 옛 비텐베르크대학 건물, 필립 멜란히톤의 집 외관과 박물관, 루카스 크라나흐의 집과 동상, 시청사 광장에 있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동상, 비텐베르크 시교회에서 종교개혁 제단화, 부겐하겐 목사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내 걸었던 비텐베르크 성교회와 교회 안의 루터 무덤과 멜란히톤 무덤과 그리고 종교개혁사 박물관, 루터 하우스를 찾았다. 전 유럽을 흔들며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개혁의 진원지 비텐베르크는 루터의 심장이 생생하게 뛰고 있었다.
아이스레벤(Eisleben)은 루터 삶의 시작과 끝을 맺는 도시이다. 루터 생가와 루터가 유아세례를 받은 성 베드로- 바울교회, 루터가 마지막으로 4편의 설교를 했던 성 안드레아스 교회와 루터 사가를 방문했다. 1546년 2월18일 새벽 2시 45분, 63세의 일기로 불꽃같은 생을 마감했던 루터의 사가는 남은 우리 인생을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언젠가는 우리도 죽을 인생임을 다시금 깨우쳐 주었다.
제 6일째, 8월 29일(화) 구동독 라이프치히에서는 두 교회를 방문했다. 먼저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세반스찬 바흐가 27년간 교회 지휘자로서 봉사했던 성 토마스교회를 찾았다. 교회 안에서 바흐 무덤, 교회 밖에서 바흐 동상을 보았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의 교회는 성 니콜라이 교회였다. 이 교회는 1981년 가을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통일 독일을 위해 동독의 젊은이들이 모여 평화기도회를 했던 곳이다. 월요일 마다 부르짖었던 작은 기도회가 독일 통일의 기적의 출발점이었다는 교훈을 가슴에 담았다. 또한 1519년 루터가 가톨릭 신학자 에크와 격렬한 논쟁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때 루터는 성경의 권위를 주장했다.
이어 루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스토테른하임(Stotternheim)에 도착했다. 1505년 7월 2일 폭우가 쏟아지는 날, 루터는 천둥 번개 속에서 친구가 벼락을 맞아 즉사하는 사고를 겪었다. 순간 두려움에 빠진 루터는 법학을 포기하고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하였다. 이 위대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1917년 높이 2m의 비석이 세워졌다. 탐방팀 일행은 기념비 앞에서 우리 인생에서도 다시 한번 삶의 전환점이 있게 해 달라고 합심하여 기도했다. 그 후 “튀링겐의 로마”라고 불리는 에르푸르트에서는 루터가 공부했던 에르푸르트 대학교와 수도사 생활을 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과 1507년 4월 루터가 가톨릭 신부로 사제 서품을 받았던 성 마리엔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제 7일째, 8월 30일(수) 아이제나흐에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도착했다. 1521년 4월 보름스 제국의회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루터가 10개월 동안 숨어 살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루터가 3개월 만에 헬라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가 번역했던 방을 보았을 때 많은 감동이 밀려 왔다. 그후 루터가 도미니크 수도회 사람들과의 논쟁했던 하이델베르크를 둘러보았다.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을 주장했다. 구시가지에서 성령교회와 시청사, 학생감옥 등을 둘러보았으며,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내려다본 시가지는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제 8일째, 8월 31일(목) 탐방팀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Strassburg)에 도착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은 이제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 스위스의 제네바, 취리히 같은 도시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신앙을 확산시키는데 공헌하였다. 먼저 스트라스부르크의 종교개혁자 마틴 부처가 목회했던 성 토마스 교회와 성 아우렐리아 교회를 찾았다. 그리고 칼빈이 프랑스에서 온 피난민들과 3년 동안 목회했던 부끌리에 교회에서 멈추었다. 탐방팀들은 우리들도 칼빈처럼 우리 인생의 목적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되게 해 달라고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또한 스트라스부르크 대성당과 구텐베르크 동상을 둘러보았다. 이 동상은 새로 개발한 인쇄기로 인쇄한 성경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스트라스부르크를 답사한 탐방팀은 아쉽게도 스위스는 남겨둔채 다시 독일로 향했다.
제 9일째, 9월 1일(금) 루터가 재판을 받았던 보름스(Worms)에서는 루터가 황제 앞에 섰던 곳을 기념하여 새겨진 루터 발모양의 신발과 기념동판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종교개혁 기념동상은 총 12명의 믿음의 개혁자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루터 이전의 개혁자들과 외로운 투쟁에 홀로 선 루터와 함께 끝까지 동역했던 믿음의 사람들이 굳게 선 모습은 ‘오직 성경’을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어두운 시대에 불꽃같은 삶으로 성경의 권위를 확신하고서 담대하게 복음을 외쳤던 말씀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들 역시 어려운 시대 속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말씀만을 붙들고서 살기로 결단하였다.
버스 안에서 목회자들이 돌아가면서 매일 아침 경건예배를 드렸으며, 각자 소개와 간증과 찬양,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간의 풍성한 교제로 인해 기쁘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종교개혁의 심장으로 떠났던 8일간의 유럽종교개혁 여행은 하나님의 은혜가 가운데 잘 마쳤다.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이 우리의 심령에 리바이벌되어 주어진 사역들을 잘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역지를 향해 출발했다. <유크=김현배 목사/글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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