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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후 네스토리안 교회

[실크로드와 복음루트] 최하영 목사/ GMS 우크라이나선교사 |

(23회) 오늘날 동방 아시리아 교회의 분포 |

5~15세기까지 네스토리안 교회는 천년동안 에데사(Edessa)를 시작으로 핍박을 받으면서도 수도원 공동생활로 확장해나갔다. 페르시아와 바벨론(Babylon), 인도(India)에까지 도달하였다. 그 다음 중앙아시아(Central Asia)와 버마(Burmah), 시암(Siam), 투르키스탄(Turkestan), 중국, 한반도, 일본에까지 퍼졌다.

그리고 나중에 시베리아(Siberia)와 몽골(Mongolia) 북방까지 전 아시아에 가장 선교적인 교회로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1000년에 네스토리안 주교가 거주한 도시가 68개였으나, 1238년에는 24곳, 티무르가(Timur) 사망했던 1405년에는 단지 7곳만 남았다. 이렇게 네스토리안 교회는 쿠르디스탄 산간과 인도만 겨우 살아남았다. 실크로드 따라 중앙아시아에서의 네스토리안은 핍박과 역병, 고립 등으로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1368년 중 명나라(Ming dynasty, 1368–1644)의 외국인 협오증으로 기독교도 단절되었다.
이렇게 네스토리안은 쿠르디스탄(Kurdistan)의 고원지대인 모슬(Mosul) 산간지방으로 들어가 그 곳을 본거지로 삼았다. 그 중 가장 안전한 터전은 우르미아(Urmia) 호수와 반(Van) 호수 사이 학키아리(Hakkiari)의 높은 산간지역이었다. 네스토리안(Nestorian) 총대주교 시몬 2세(Mar Simon II, 1365~1392)가 쿠르디스탄(Kurudistan) 산간지방 코챠네스(Kotchanes)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시몬 3세(Mar Simon III, 1403~1407)와 엘리야 4세(Eliya IV, 1407~1437)로 계승되었고, 이란계 무슬림 쿠르드족은 네스토리안들의 우수한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자, 어느 사이에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시몬 4세(Mar Simon IV, 1437-1497)때에 주교회의를 통한 총대주교를 선출하지 않고 세습제를 실시하였다. 그래서 당시 총대주교는 혼인을 하지 않았기에 조카에서 세습되었다. 이렇게 시몬 5세(Shem’on V, 1497~1501)와 엘리야 5세(Eliya V, 1502~1503), 시몬 6세(Shem’on VI,1504~1538)로 이어지면서 세습되었다. 그러나 이 세습제도로 인해 네스토리안 교회는 분열이 생겼다. 총대주교 시몬 7세(Shemʿon VII, 1539–1558)가 12살 조카 크난니쇼(Khnanisho)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혼란에 빠졌다. 그런데, 몇 년 안된 1551년에 크난니쇼(Simon Bar-Mama)가 죽자 15살 그의 형제 엘리야(Eliya)가 임명되었다. 엘리야 6세(Eliya VI, 1558–1591)는 임기 동안 네스토리안 전통 기독론과 교회론을 보존하였다.
그러나 몇몇 주교들은 라반 후르미즈드(Rabban Hurmizd) 수도원의 수사인 요한 수락카(John Sulaka, 1551~1555)를 선출하였다. 수락카는 이미 네스토리안파 내에서 일하고 있는 프란시스코(Franciscan)선교사들에 의해 로마 가톨릭(Rome Catholics)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요한 수락카는 1553년 교황 줄리어스 3세(Pope Julius III, 1550~1555)에게 가톨릭 신앙고백을 하고 갈데아교회 총대주교(Patriarch of the Church of the Chaldeans)로 임명 받았다. 수락카의 계승자는 예벧예수 4세(Ebedyeshu IV, 1555~1567)로 교황 피우스 4세(Pius IV, 1559~1565)로부터 견대(어깨 장식띠, pallium)을 받았다.
한편, 정통 네스토리안 교회 측은 갈데아 교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스토리안 엘리야 7세 총대주교(Eliya VII, 1591–1617)와 엘리야 8세(Eliya VIII, 1617–1660)는 가톨릭과의 협상을 거부하였다. 더구나 엘리야 9세(Eliya IX, 1660–1700)는 “전통 네스토리안 신앙의 보호자”를 자처하였다. 그러나 엘리야 10세(Eliya X, 1700–1722) 후 엘리야 11세(Eliya XI, 1722–1778)와 엘리야 12세(Eliya XII, 1778–1804)가 로마 가톨릭 신앙고백을 받아들였다. 엘리야 12세가 계승자로 세운 젊은 조카 요하난 호르미즈드(Yohannan Hormizd)를 로마 가톨릭이 모술의 대주교(Metropolitan)와 알코쉬의 가톨릭의 행정관(Administrator)으로 임명하였다. 그후 가톨릭교회는 의도적으로 47년간 갈데아 가톨릭 총대주교(Chaldean Catholic patriarch)를 세우지 않았다. 이렇게 정통 네스토리안 교회도 로마 가톨릭으로 넘어갔다. 1804년 엘리야 12세가 죽자 알코쉬의 네스토리안 엘리야계도 끝났다. 요하난 8세 호르미즈드(Yohannan VIII Hormizd, 1780–1830)가 로마 가톨릭과 연합하였다. 1830년 교황청에 의해 갈데아 바벨론 총대주교(Patriarch of Babylon of the Chaldeans)가 되었다.
1667년 요셉 주교가 엘리야계에서 나와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는 오스만 터키(The Ottoman)로부터 아미드와 마르딘(Mardin)에서 본거지로 인정받았다. 1681년 로마 가톨릭에 의해 요셉은 아미드 총대주교(Amid patriarchate) 요셉 1세(Joseph I, 1681–1696)가 되었다. 이로써 요셉계(the Josephite line)는 로마 가톨릭과 연합하여 요셉 2세(Joseph II, 1696–1713)와 요셉 3세(Joseph III, 1713–1757), 요셉(Joseph IV, 1757–1780), 요셉 5세(Joseph V Augustine Hindi,1780–1827)까지 이어왔다. 요셉 5세가 죽자 요하난 8세가 통합 갈데아 바벨론 총대주교가 되었다.
한편, 가톨릭교회로 넘어간 갈데아파 시몬 9세(Shemʿon IX, 1580–1600)는 1580년 본거지를 모술(Mosul)에서 코차니스(Qochanis)로 옮겼다. 그는 조카 시몬 10세(Shimun X Eliyah, 1600–1638)에게 세습하였다. 이 세습을 로마 가톨릭이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시몬 11세(Shimun XI Eshuyow, 1638–1656)와 시몬 12세(Shimun XII Yoalaha, 1656–1662)가 교황에게 승인 편지를 썼다. 결국 시몬 13세 (Shimun XIII Dinkha, 1662–1700)때에 1672년 가톨릭 교회와의 모든 관계를 종료하면서 1692년에 동방 아시리아 교회(The Assyrian Church of the East)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시몬계가 점차적으로 네스토리안 전통 예배로 돌아섰다. 시몬 14세 요하난(Shimun XVI Yohannan, 1780–1820)이 네스토리안의 가장 전통적인 유일한 통합 총대주교(Uniate patriarchate)가 되었다. 이후 시몬계는 시몬 14세(Shemʿon XIV, 1700–1740)와 시몬 15세(Shemʿon XV, 1740–1780, 시몬 16세(Shemʿon XVI, 1780–1820, 시몬 17세(Shemʿon XVII, 1820–1861)까지 이어져 왔다. 19세기 후반에 네스토리안파에게로 파송된 영국국교회에 의하여 아시리안파(Assyrian)라 하였다. 영국국교회 선교사인 위그람은 네스토리안인들을 고대 앗시리안의 후손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네스토리안 교회를 마그로빈(Maghlobeen, 정복된 자란 뜻)이라고도 하였다.
이로써 엘리야계는 원래 네스토리안 동방교회 총대주교였으나 로마 가톨릭과 통합되었고 오늘날 갈데아 가톨릭 교회로 이어온다. 반면, 시몬계는 원래 갈데아 가톨릭 교회였으나 오늘날 전통 네스토리안 교회를 이어오는 동방 아시리아 교회가 되었다.
정통 네스토리안인 동방 아시리아 교회는 코차니스에 총대주교구를 두었는데, 시몬 19세(Shimun XIX Benjamin, 1903–1918)때인 1915년에 코차니스에서 페르시아 루르미아와 살마스(Salmas)로 사이로 옮겼다. 그는 1918년에 암살당하였다. 시몬 20세(Shimun XX Paulos, 1918–1920)는 다시 이라크 모술로 옮겼다. 시몬 21세(Shimun XXI Eshai, 1920–1975)는 1933년 강제로 추방을 당하여 임시로 사이프러스(Cyprus)에 있다가 1940년에 미국 시카코(Chicago)로 옮겼다. 최종적으로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로 이전하였다. 시몬 21세는 마지막 세습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리고 1968년에 고대 동방 교회(the Ancient Church of the East)를 동방 아시리아 교회(Church as Assyrian Church of the East)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75년 산호세(San Jose)에서 암살당함으로서 시몬계 658년도 끝나게 되었다. 1976년 딘카 4세(Dinkha IV, 1976 – 2015)가 1600년 이래 처음으로 동방 시리아 교회 공의회에서 선출되었다. 1980년에 다시 시카코에 총대주교구로 옮겼다. 현재 게와르기스 3세(Gewargis III, 2015~ )가 동방 시리아 교회 총대주교(Catholicos-Patriarch)이다. 동방 아시리아 교회는 인도의 갈데아 시리아 교회(the Chaldean Syrian Church of India)를 대교구로 두고 있다. 동방 아시리아 교회 본부는 에르빌(Erbil, Iraq Kurdistan)이다. 아직까지도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동양정교회(the Oriental Orthodox churches)와 동방정교회(the Eastern Orthodox Church)와도 연합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동방 아시리아 교회는 중동(Middle East)과 인도, 북미, 오세아니아, 유럽에 분포되어 있다.
한편, 갈데아 가톨릭 교회는 유세프 7세(Yousef VII Ghanima, 1946–1958)가 총대주교구를 바그다드(Baghdad)로 옮긴 후, 2013년에 루이스 라파엘 1세(Louis Raphaël I Sako, 2013~)가 총대주교로 있다. 2017년 현재 갈데아 가톨릭교회는 약 628,405명이고 네스토리안파인 동방 아시리아 교회는 423,300명(고대 동방교회 포함)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동방 아시리아 교회가 전통 네스토리안 교회를 공식적으로 계승한다고 하나 5세기 이후 1600년간 우리가 생각 지 못한 곳에 네스토리안의 복음의 흔적과 발자취가 있음을 알아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곳을 개척이 아닌 회복하러 가야할 것이다.

필자: 최하영 목사/ hydavid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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