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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입, 크리소스톰

[로마칼럼]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

그의 가장 중요한 설교는 삶으로 보여주는 설교 |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났던 설교자로 인디옥의 감독 크리소스톰(Chrysostom349-407)을 언급한다. 그는 설교를 얼마나 잘했던지 황금의 입이라고 칭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목회자의 꿈은 설교를 잘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목회자 치고 자신이 설교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곳을 방문하던 목회자들은 누구나 그 지역의 교회 강단에 서기를 원한다.
그런데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를 성도들이 그냥 두지 않는다.
그에게 구름 떼처럼 성도들은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교회는 성도들의 가뭄을 만나고 어느 교회는 주일 마다 풍년을 이루게 된다.
성도들로 풍년을 이루는 교회에서는 당회장을 만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그가 움직이면 수많은 호위 무사들이 에워싼다. 참으로 대단한 광경이다. 이런 풍경이 이 시대 설교에 뛰어난 은사를 지닌 목회자의 단편적인 풍광일 수 있다.

그런데 크리소스톰은 달랐다. 그는 본래 법률가이었다. 고향 안디옥에서 그는 유명한 웅변가로부터 훈련을 받았다.
법률가에게 있어서 수사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뛰어났기에 스승으로부터 후계자로 정함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독실한 성도이었다. 세례를 받고는 수도를 위해 집을 떠나려고 하자 어머니의 강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서 친구 몇 명과 함께 수도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6년 동안이나 수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이미 그의 명성은 그리스에까지 널리 퍼졌다. 안디옥에서 그의 설교 사역은 대단했다.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직이 공석이 되자 황제는 그를 데려오려고 하였으나 안디옥 사람들의 폭동을 두려워하여 비밀리에 데려와야 했고 이듬해에 동방 최고의 감독(콘스탄티노풀교회)에 취임하였다.

당시 동 로마는 정치적으로 어지러웠다.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세상을 떠나고 그를 승계한 두 아들들은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권을 의전관이 쥐고 있었기에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찔렀고 황후가 혼탁한 정치에 관여해야 할 상황이었다.

또한 당시의 성직자들은 몹시 부패했다. 독신이라고 하면서도 실제적으로 영적 자매들을 데리고 살았고 고위 공직자처럼 부유했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양 떼들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
이런 정황을 파악한 크리소스톰은 사자후를 토했다. 성직자들의 삶을 정화하도록 불을 토했고 감독의 저택에 값비싼 장식들을 팔아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질타했다. 이런 설교는 정치권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군중은 이런 감독에게 열광하였다. 선거를 했다면 충분이 왕이 될 수 있을 정도이었다. 가만이 비유를 맞추어주고 권력을 행사하는 의전 관을 멀리하고 자신의 편이 되기를 바랐는데 그렇지 않았다. 여왕은 당황하게 되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크리소스톰을 크게 미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개의치 않았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백성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으나 왕 앞에 겸손하게 그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했다.
모든 사람이 그토록 원하는 최고의 감독직에 그는 전혀 연연해하지 않았다.

크리소스톰은 결국 감독직에서 해임 당해 추방을 당해야 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심문과 고문, 그리고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 그가 추방 당한 곳은 멀리 흑해 연안에 있는 추운 곳이었다.
그는 결국 병들어 연약하게 되었다. 자신의 임종이 가까운 것을 알고 길가에 있는 작은 교회로 옮겨달라고 지키는 군사에게 부탁했다.
그 작은 교회에서 성만찬을 나눈 후 그를 에워싼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한 후 마지막 고별 설교를 했다. 그것은 간단한 말씀이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그는 황금의 입이라는 역사적으로 최고의 설교자이었으나 그의 가장 중요한 설교는 삶으로 보여주는 설교이었다. 수도사 적인 청빈함과 순수하게 복음을 순종하는 아름다운 삶이었기에 그의 도움을 바랬던 황제는 그를 가까이 두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진리를 따르는 삶이란 황제로서는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설 자리에 서야 한다.

힘들어도 말이다.
크리소스톰처럼—

얼마든지 영광 받으면서 편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으나 진리를 고집한 사람, 그런 지도자가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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