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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관구장주교께 보내는 공개서한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 암브로시오스 (Metropolitan Ambrose of Korea, Patriarchate of Constantinople) 한국관구장주교께 보내는 동남 아시아 총대주교대리 세르기 (Metropolitan Sergius of Singapore and Southeast Asia, Patriarchal Exarch of Southeast Asia) 싱가포르 및 동남 아시아 관구장주교의 공개서한

암브로시오스 관구장주교 예하! 

본인은 4월 12일 The Orthodox World 사이트에서 발표된 귀하의 인터뷰에 답변해야 할 지 오랫동안 고민하였습니다 https://theorthodoxworld.com/exclusive-how-the-moscow-patriarchate-tramples-on-church-canons-and-undermines-orthodox-unity-in-korea/.

 그러나, 얼마 전 오누프리 (Metropolitan Onufry of Kiev and All Ukraine) 키예프 및 전 우크라이나 관구장주교 복하의 명명축일 경축행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키릴 (Patriarch Kirill of Moscow and All Russia) 모스크바 및 전 루시 총대주교 성하의 축복에 따라 이루어진 본인의 우크라이나 출장에서 받은 감상은 귀하께서 매체에서 발언한 모든 것에 답변하게 하였습니다. 

귀하의 인터뷰와 뒤 이은 항변이 누가 운영하고 편집하는 등의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 사이트에서 발표된 만큼 본인은 귀하께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것 외에 이 발표물에 달리 답변할 방도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하의 발언들의 공개성을 고려하여 본인의 서신 역시 독자들이 자기자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공개될 것입니다. 

본인은 2017년 6월 서울에서 귀하를 예방하였을 때 귀하께서 형제 답게 입맞추며 본인을 얼마나 따뜻하게 환영하였는지 기쁘게 회상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귀하께서 온통 암흑천지에 소문과 억측들을 여과하지 않은 채 쓰는 러시아 정교회 (Russian Orthodox Church)의 사목 선교 활동에 대한 글들을 보기가 더욱 괴롭습니다. 실로 바르톨로메오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Patriarch Bartholomew of Constantinople)의 우크라이나 내 새로운 ‘교회적’ 기구 창설 결정이 야기한 우리 교회들의 복잡한 상호관계가 우리에 대한 귀하의 자세에 이렇게도 극적인 영향을 미친 것입니까? 아니지요. 귀하께서는 무명의 ‘원로’를 인용하여 “천년이 흘렀지만 대부분의 러시아 교회 지도자들은 아직까지 복음이 전하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모스크바 – 제3의 로마’라는 사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주장을 배양한다.”라고 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귀하께서 언제나 이를 믿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본인은 서울에서 귀하께서 본인을 환영한 것은 위선이고, 지금 귀하의 태도가 진심이라고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까? 

본인의 두 증조부들은 사제로서 자기 신앙과 교회를 섬김으로 인하여 감옥과 수용소들을 전전하며 수감되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인하여 총살 당하였습니다. 본인의 모친이 자기 자녀인 우리를 신앙 안에서 키웠기 때문에 정권은 그녀의 친권을 박탈하려 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누차 본인에게서 십자가 목걸이를 빼앗았고, 본인이 신도이기 때문에 본인을 조소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성경과 기도문의 구절들을 손으로 옮겨 적었고 이를 자기의 대단한 귀중품처럼 여기며 아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단순히 옮겨 적기만 한 것이 아니라, 깊은 경건과 사랑을 가지고 되새겨 읽고 공부하였습니다. 본인 가정의 역사는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아주 많은 이들이 박해의 공포와 조롱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숙고해보십시오. 귀하의 글에서 이렇게 우리가 복음을 알지 못한다는 무명의 ‘원로’의 계시를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할 지. 러시아 정교회가 이미 수십 년 전에 미리 계획하고 바르톨로메오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의 기념을 중단하기 위한 기회를 그저 기다려왔다고 “강하게 믿는다”는 귀하의 글을 읽는 것 역시 제게 괴롭습니다. 이보다도 터무니 없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귀하께서는 자신의 인터뷰에서 동남 아시아에서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활동을 마치 불법인 것처럼 소리 높여 주장하였습니다. 그럼 정교가 해당 지역에 나타난 역사를 상기해보겠습니다. 1685년 중국에서 러시아 성직자들이 사목하기 시작하였고, 1861년 일본에 성주교 니콜라오스 카삿킨이 (Nicholas Kasatkin)  도착하였으며, 1897년에는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1934년 인도네시아에 러시아 사목구들이 나타났고, 그 해 마닐라에 사목구가 개설되었습니다. 1949년 베트남에서 상하이의 성주교 요한 막시모비치가 (John Maximovitch) 첫 예배를 거행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단 하나의 정교회도 존재하지 않았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나라들에서 러시아 교회가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는 문헌적 증거들 중 단 몇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귀하께서는 제삼자에게서 키릴 스몰렌스크 및 칼리닌그라드 관구장주교 (현재 모스크바 및 전 루시 총대주교)와 어떤 노어권 출신 본당신도가 서울 성 니콜라오스 대성당에 대한 청구권을 논하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들었고, 자신의 인터뷰에서 이를 마치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진술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본인은 총대주교 성하에게 특별히 문의하였는데, 이는 거짓이었습니다. 이러한 대화는 있지 않았고, 또한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성하는 한국의 정교회 역사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가 서울 뿐 아니라 전 한반도에서 부지와 건물들을 소유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것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매각되었거나 양도되었는지, 만약 그렇다면 누구에 의하여 누구에게 또 어떤 조건들로 그리 되었는지, 우리는 아직 전부를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연구할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우리의 행동에 대하여 다른 정교 형제들에게서 러시아 교회의 명의 앞으로 수백 년 간 아무런 불평이나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은 거의 최근래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가 자기의 교회론을 변조하고 ‘동등한 수석주교들 가운데 제일인자’ 대신 ‘동등할 수석주교들이 없는 제일인자’가 되기를 바라기 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사목 및 선교 사역은 그 어떤 지역정교회들로부터 논쟁시된 적이 없고, 반대로 환영 받았는데, 이는 특히 예루살렘 총대주교들이 일본의 사도대등자 니콜라이에게 보낸 서신들에서 드러납니다. 즉, 이미 1896년 게라시모스 예루살렘 총대주교 (Patriarch Gerasimus of Jerusalem) 복하는 일본교회에 선물로 이콘들과 성해 및 기타 성물들을 보냈습니다. 이후 게라시모스 총대주교의 계승자들은 일본정교에 대한 지원과 성주교 니콜라이에 대한 사적인 깊은 존경을 계속 이어 나갔고, 다른 지역정교회들의 주교들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1956년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 중국선교회와 동아시아 총대주교대리구 (당시 한국의 공동체가 여기에 법적 소속을 두고 있었음)의 기초 위에 창설한 중화동정교회(中華東正敎會)에 부여하였을 때, 해당 결정은 다른 지역교회들 측에서 어떤 의혹도 사지 않았고, 더 나아가 중국 내 정교회 기구들의 러시아 교회의 법적 재치권은 부정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요아킴 3세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Patriarch Joachim III of Constantinople) 성하는 하얼빈에 건립된 러시아 성당을 위하여 이콘을 송부하였고, 중국에서 우리 교회의 존립을 지지하였습니다. 

1970년 일본정교회가 자치교회의 지위를 부여 받았을 때, 아티나고라스 (Patriarch Athenagoras of Constantinople)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는 일본교회 수석주교를 *딥티코스에 포함시키기를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교회의 지위가 독립교회 (Autocephalous Church)가 아니라 자치교회 (Autonomous Church)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백 년 이상 그 누구에게서도 의혹이 야기되지 않았던 이 나라의 정교회 기구들의 러시아 교회의 법적  **재치권(裁治權; jurisdiction)을 논쟁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제 지역정교회 수석주교들의 명부 – 역자 주
**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하여”(에페소 4:12) 교회를 다스리는 권한. 이는 그리스도가 목자의 비유로 교회에 주신 권한이다(요한 10:1~28, 21:15~17). 재치권은 敎導權 및 神品權과 구별하여 협의의 司牧權이라고도 불린다. 재치권은 교회 내의 입법, 행정, 사법을 포함하나 국가의 삼권분립 제도와는 달리 재치권자가 삼권을 모두 가지며 다만 그 행사의 편의상 기능의 분립이 인정되고 있을 뿐이다. – 역자 주. 가톨릭 대사전 참조.

이 모든 것에 대해서는 우리 시대 걸출한 선교사로서 알바니아 정교회의 수석주교인 티라나 및 전 알바니아 대주교 아나스타시오스 (Archbishop Anastasios of Tirana and All Albania) 복하가 자신의 저서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에서 매우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따로 지면을 할애하겠습니다. 한러관계사는 예하께서 지적하신 ‘모스크바 – 제3의 로마’ 개념이 있기도 전인 키예프 루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언하자면, 이 이념이 직접적으로 선포되는 유일한 역사적 문헌은 바로 1589년 예레미야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성하가 서명한 모스크바 총대주교제 설립 장서(狀書)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한인 대상 선교활동은 성주교 인노켄티 베니아미노프가 (St. Innocent Veniaminov) 조선인 이주자들이 집단으로 유입된 유즈노 우수리스키 (South Ussuriysk) 변강으로 정교 설교자들을 파송하기 시작한 1856년 개시되었습니다. 1885년에는 러시아와 조선 사이에 러시아 신민들에게 조선 영내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거행할 권리를 부여하는 조아통상조약 (朝俄通商條約)이 비준되었습니다. 1897년 신성종무회의의 결정으로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가 설립되었고, 그 과업은 한반도 거주 러시아 정교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며, 또한 현지의 비그리스도인 주민들 가운데 정교를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1900년 2월 17일 서울에서 선교회장 흐리산프 솃콥스키 (Archimandrite Khrisanf Schetkovsky) 대수도사제에 의하여 성찬예배가 거행되었고, 이 순간을 전통적으로 러시아 정교회 선교회 활동의 시작으로 여깁니다. 

한국선교회는 그 설립일부터 1908년까지 페테르부르크 관구장주교의 관할 하에, 1908년부터 1921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 주교의 관할 하에, 1921년부터 1945년까지 도쿄 대주교의 관할 하에, 1945년부터 1954년까지 동아시아 총대주교대리구 소속 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교회의 활동은 강제로 중단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남한 당국과 미군정은 수 년 동안 선교회를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재치권에서 이탈시키려 애쓰며 고투를 벌였습니다. 이를 어떠한 합법적 방도로 행할 가능성을 찾지 못하자, 1949년 남한 당국은 선교회장 폴리카르프 (Archimandrite Polycarp)를 나라 밖으로 추방하였습니다. 정치적 이유들의 압력으로 선교회의 활동은 중단되었고, 그 재산은 몰수되었습니다. 1955년에 이르자 주교의 사목적 돌봄을 상실한 채 존속한 러시아 정교회 사목구들은 남한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던 해외열강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던 관계로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 아메리카 대교구에 통합되었습니다. 이렇게 (허가문서가 전무한 채) 정치적 압력으로 발생한 직분자들과 공동체의 타 재치권으로의 이전이 과연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어떤 ‘병존하는 교회’ (‘parallel Church’)의 설립이 아니라 러시아 정교회 선교회의 복고를 논하는 것입니다. 이는 70여 년 간 무신론 정권의 압제 아래 인고하였던 러시아 교회 부흥의 역사적 과정에 따라, 아시아를 비롯한 지구 전역의 우리 동포들에 대한 사목적 돌봄의 필요성과,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가 우크라이나에서 분파들과의 친교에 들어가고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법적 영역을 침범한 만큼 현재 우리 양떼에게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에서의 성사 참여가 불가함에 따른 일입니다. 

반복하건대,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정교의 운명은 러시아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교회는 우리 민족들의 종교적 친밀함을 재생시키고, 과거 이들을 단결시켰던 종교적 연계를 복구하려는 노력을 증진시키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한반도에서 역사적 상황들 탓에 단절되었던 선교활동을 재개할 역사적 · 법적 근거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예하, 귀하께서는 우크라이나에서 귀하의 교회가 취하는 행동들의 정치적 성격을 보지 않기를 선호하지만, 그러나 한국에서 모스크바 총대교구가 취하는 행동들을 정치적 성격으로 규정하여, 우리가 교회법을 짓밟고 개종주의를 일삼는 듯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격분이 전반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부분적으로는 한국에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사목구들과 교구들의 창설을 유발하였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얼마 전 본인의 형제인 테오파니스 김 (Archbishop Feofan Kim of Korea) 대한대주교 예하가 충분히 상세하게 진술하였습니다. 추가적으로, 특정한 교회의 법적 영역에 속하지 않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다양한 지역교회들의 여러 주교들이 공존하는데, 이는 그들의 봉직과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 증언에 있어서 극복 불가능한 장애가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정점에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불멸의 인간혼이 확립되어 있는 상태의 좋은 사례입니다. 

러시아 교회는 러시아 양떼가 다수를 점하는 지역들의 모든 주교 컨퍼런스들에서 대화를 지향하고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수용될 수 없는 조건들을 제시하지 않으며, 발생한 문제들을 사랑의 정신으로 해결합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보기에 귀하의 질타는 근거가 없습니다. 

오늘날 서울에 소박하지만, 그러나 여러 사람들의 사랑 덕택에 임시성당으로 꾸려진 공간에서 거행되는 성찬예배에 상당수의 우리 양떼가 모입니다. 우리는 서울에서도 한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 교회의 자녀들로부터 감사를 표하고 그들을 종교적으로 돌보아줄 것을 청하는 다수의 서신들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 정교회를 자기 모교회로, 모스크바 및 전 루시 총대주교 키릴 성하를 자기 영적 아버지로 여기는 이 사람들을 우리가 외면해야 하겠습니까? 청하건대, 그 사람들은 위에서 지적한 이유로 이제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의 성당들을 참배하지 않을 것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과연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 한국관구는 얼마 전 한국 최초 성찬예배 119주년, 즉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 활동 시작 기념일을 경축하지 않았습니까? 귀하께서는 ‘불법행위들’의 기념일을 경축하였다고 말씀하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바르톨로메오 (Patriarch Bartholomew of Constantinople)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는 2000년 2월 서울에서 클리멘트 (Archbishop Clement of Kaluga and Borovsk) 칼루가 및 보롭스크대주교를 포함하여 다수의 주교들과 형제로서 공동봉직한 것입니까? 또 2010년 서울에서 벤야민 (Archbishop Veniamin of Vladivostok and Primorye) 블라디보스토크 및 프리모리예 대주교와의 공동봉직을 집전한 그리고리오스 (Metropolitan Gregorios of Thyateira and Great Britain) 티아티라 및 대브리튼 관구장주교는 무엇을 경축한 것입니까?

한 사제와의 만남에 대한 귀하의 이야기 역시 황망한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서울의 모든 정교도들은 귀하께서 누구에 대하여 말씀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간단치 않은 운명의 소유자이나, 하느님으로부터의 성직의 은총을 수여 받은 사람입니다. 귀하께서 진술하신 그의 행실은 본인에게 상상하기 어려운데, 단,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본인은 그저 사도의 말씀을 상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영적인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갈라티아 6:1) 

귀하께서는 2018년 11월 서울에서 모스크바 총대교구 대외교회관계부장 일라리온 (Metropolitan Hilarion of Volokolamsk) 볼로콜람스크 관구장주교가 주재한 행사인 원탁토론 <러시아 정교회와 동포들: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및 오세아니아에서의 공동사업 경험>의 진행 과정에서 문서 서명을 모집하였으나 극소수만이 응하였다고 서술하셨습니다. 보아하니, 사람들이 귀하께 허언을 한 모양인데, 실제로는 이 자리에서 어떤 교회문서가 서명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들 간 상호관계의 오랜 역사는 안타깝게도 슬픈 페이지들도 알고 있는데, 최근까지 우리는 이를 상기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1920년대에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는 티콘 벨라빈  총대주교 (Patriarch Tikhon Belavin) 성하를 끌어 내리려 애썼고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내무인민위원회 산하 국가정치행정부서로서 설립된 혁신파, 소위 ‘살아있는 교회’를 갖가지로 지원하였는데, 성 고백자 총대주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언급된 조서를 읽고나서 우리는 세계총대주교청 (Ecumenical Patriarchate)의 대표인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의 수석주교가 전 러시아 정교회의 합법적 대표이자 수석주교인 우리와의 사전 교섭이 전혀 없이 독립 러시아 교회의 내부생활과 업무에 간섭하는 데에 적잖이 당황하였고 경악하였다. 거룩한 공의회들(제2차 세계공의회 제2, 3조와 기타 참조)은 콘스탄티누폴리스 주교에 대하여 … 다른 독립교회들에 앞선 우선권을 인정하였고 인정하나, 하지만 권력은… 어떤 위원회라도 그 모든 파견은 러시아 정교회의 유일한 합법적 정교 제일주교인 본인과의 교섭 없이는, 본인의 통지 없이는 불법이며, 러시아 정교 백성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않을 것인 바, 그렇지 않아도 많은 고난을 겪는 러시아 정교회의 삶에 안정이 아니라 더욱 거대한 혼돈과 분열을 가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기 소련 지도부 측의 대교회정책이 본질적으로 변화한 1940년대에 이미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청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1943년 9월 총대주교 교회의 세 관구장주교들과의 유의미한 회동 후 스탈린은 혁신파 열교가 정권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이를 숙청한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에게는 낙오자인 혁신파들과 일해야 할 까닭이 이미 전혀 없었고,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스크바 총대교구와의 친교를 복고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러시아 정교회는 그 동안의 법적 문란에 대한 어떤 답변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뒤 이은 러시아 교회의 법적 영역 침범은1990년대 에스토니아에서 벌어졌습니다.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는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법적 재치권에 소속된 에스토니아의 유일한 합법적 교회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 에스토니아 대통령과 총리와 내무부의 지원 하에 당시 정치적 지지를 누리고 민족주의적 발언을 서슴 없이 설교하던 새로운 교회적 기구를 인정하였습니다. 특히나 경악스럽고 -참담했던 것은 이러한 추세가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Patriarch Bartholomew) 개인에 의해서도 지지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러시아 교회와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의 법적 친교는 중단되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 교회가 이리 불손하게 교회법을 위반하고, 민족들을 분리시키며 대중 사이에 적의를 심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누 차례 언론에서 ‘분열’이라고 지칭되어 정교회 역사에서 가장 심각했던 이 갈등은 1996년 말에야 타협을 보아 해결되었는데, 에스토니아 국가 영내에 두 재치권이 존재하는 것은 교회법 원칙에도 역사적 공정성에도 부합하지 않지만 이에 러시아 정교회와 콘스탄티누폴리스 정교회가 동의하였던 것입니다.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의 행위들이 교회의 복리에 기여하였습니까? 에스토니아 민족의 복리에 기여하였습니까? 총 신도수를 증가시켰습니까? 귀하 스스로 아시다시피, 에스토니아 당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에스토니아 정교회의 신도수는 에스토니아 내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 기구의 신도수보다 6배나 넘게 많습니다. 수치스럽게도 최근 당국에 의하여 통계는 공개되지 않고 있는데, 민중의 역사적 선택이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획들을 논박하기 때문입니다. 이의 반복으로서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착수된 구상과 시도들은 사실상 낭패를 보았고, 어떠한 교회적 목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진리의 보존자인 하느님 백성은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귀하의 언급에서 눈에 띄는 위치를 점하는 우크라이나 문제로 넘어가, 귀하께서 자신의 인터뷰에서 모스크바 총대교구와 해외 러시아 정교회 (ROCOR)의 재통합을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가 ‘키예프 총대교구’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 (UAOC)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 분파들을 받아 들임을 대비한 것을 지적하겠습니다. 여기서 원론적인 차이점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외 러시아 정교회와 모스크바 총대교구의 친교는 1920년대 러시아 교회가 놓여 있던 소련 내 정치적 정황과 탄압으로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는 오스만 터키 지배를 견뎌내 권력기구에 의한 탄압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지요. 러시아 교회가 해외 러시아 정교회의 성사들의 은총을 부정한 적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 해외 러시아 정교회 내에서 주교서품의 사도전승은 단 한 번도 위반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적절한 때가 되자 성사교류는 복원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매우 다릅니다. 전 관구장주교 필라레트 데니센코 (Philaret Denisenko)는 범법 이유로 성직품을 박탈 당하였고, 이는 모든 지역교회 수석주교들에 의하여 지지 되었습니다. 바르톨로메오 (Patriarch Bartholomew, of Constantinople)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는 개별적으로 1992년 8월 26일 알렉시 2세 (Patriarch Alexy II of Moscow and All Russia) 모스크바 및 전 루시 총대주교에게 필라레트 (Metropolitan Philaret of Kiev) 키예프 관구장주교의 면직 사유에 관한 서신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우리의 성 대 그리스도 교회는 이 문제에 관한 여러분의 거룩한 러시아 교회의 독점적 권한을 전적으로 인정하여 상술된 내용들에 대한 시노드 결정을 수용합니다.” 처음에는 면직을 확인하였다가 나중에 자기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에 어떻게 복음 말씀에 부합하겠습니까?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오 5:37) 데니센코는 분열을 계속 고집하여 파문 – 교회로부터의 출교에 처해졌고, 이 역시 모든 교회들에 의하여 증명되었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권력기구의 지원 하에 ‘키예프 총대교구’를 조직하였고 주교들을 ‘안수(서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안수’는 이제는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에 의하여 인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제품에 있는 상태에서 모스크바 총대교구를 무단으로 이탈한 마카리 멜레티치 (Makariy Maletich) ‘관구장주교’가 수석주교로 있는 ‘우크라니아 독립 정교회’ (‘Ukrainian Autocephalous Orthodox Church’)라고 불리는 집단에서 거행된 주교 ‘안수’ 역시 콘스탄티누폴리스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정교 주교들과 성직자들, 신학자들 대다수가 지지하는 결론은 명백한 바, ‘키예프 총대교구’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의 주교안수는 무효이며 새로 창설된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OCU)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교회적’ 조직들은 그 안에서의 안수와 같이 단 하나의 지역교회에도 인정 받지 못하였습니다. 콘스탄티누폴리스 교회 시노드는 이 모든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라다 상원 그리고 상기된 종교공동체 수장들의 요청을 지지하였고, 그들을 성사교류에 받아 들였으며, 그들의 안수를 유효한듯이 받아 들였습니다. 

지난 세기의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는데, 당시 세르기 스트라고롯스키 (Sergiy Stragorodsky) 관구장주교는 진심으로 애통해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치에는 오직 자기의 합법적 주교와 총대주교와의 친교에 있는 이들만 있을 수 있고, 자기 총대주교에 의하여 파문된 자는 다른 총대주교들에 의하여 친교에 받아 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성 소피아 대성당 공의회 제1조) … 파문된 자와의 친교에 들어가는 자 자신도 파문에 처할 것이다. (사도법전 제10, 12조) … 하느님의 법 앞에 총대주교도 평신도도 모두 평등하다. 15세기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가 로마와의 귀일에 빠졌을 때 러시아 교회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 이처럼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와 혁신파의 친교 역시 총대주교를 혁신파로 만들 뿐, 혁신파를 정교도들로 만들지 않는다.” 

루카 코발렌코 (Metropolitan Luka Kovalenko of Zaporozhe and Melitopol) 자포로제 및 멜리토폴 관구장주교는 귀하께서 그를 만난 2018년 콘스탄티누폴리스는 분열을 합법화시키지 않을 것이고, 만약 시간을 두고 무엇인가 발생한다면, 이는 오로지 분파들이 회개하는 경우일 것이라고 그에게 확언하였음을 말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결국 회개의 암시는 없고 개선행사인양 거만한 시위와 함께 어떤 일이 발발하였는지 압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분열의 치유도, 그 목적으로 공포된 행동도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합법적 교회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에게 특수요원 투입, 협박, 위협, 경찰과 지역 당국의 묵인이나 원조 아래 성당들의 점거 등 전대미문의 탄압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들을 강제 점거하려는 시도들은 마음이 피투성이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콘스탄티누폴리스에 의하여 부여된 토모스에 대한 참칭총대주교 ‘필라레트’의 거부와 ‘키예프 총대교구’의 복고는 이 상황에 희비극성을 더합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교회적’ 기구에 ‘독립’을 부여하는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의 결정이 이 나라의 정교도들에게 평화와 일치를 전혀 가져오지 않았고, 도리어 역사상 이미 한 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닌 도리어 새로운 분리들과 병존하는 ‘주교단’의 창설과 민중에 고난만 가져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주교”와 “사제”를 자처하는 이 사람들은 이제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 성당들에서 아무 제약 없이 성찬예배를 거행할 수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본인은 이스탄불에서든, 미합중국이나 한국에서든 이런 사람들과 한 성작에 영성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모든 지역정교회들에 의하여 인정 받은 우크라이나 정교회와 이런 식의 ‘독립’ 취득을 모든 주교들과 더불어 단호히 거부한 그 합법적 수석주교 오누프리 (Metropolitan Onufry of Kiev and All Ukraine) 키예프 및 전 우크라이나 관구장주교 복하의 임재 하에서만 있을 수 있습니다. 

본인은 6월 24~25일 키예프의 축제에서 범상치 않은 영적 고양을 체험하였고, 진정으로 정교의 일치를 느꼈습니다. 10개 독립정교회 대표들이 더불어 기도하였는데, 다른 3개 독립정교회들은 자교회 대표들을 보낼 수 없었지만, 그 수석주교들은 오누프리 관구장주교 복하에게 축사를 송부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비극적 상황의 극복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고 용기를 바라며 귀하의 교회 지도부의 결정으로 인하여 우크라이나의 신도들에게 지워진 고난과 고통을 나누고 공동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주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백성이 더불어 기도한 키예프 페체르스크 대수도원 (Kiev Pechersk Lavra)에서 부활절이 회상되었고 진정한 정교승리축일이 임하였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안타깝게도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의 고위 대표들의 발언과 일에서 많은 허위를 목도합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영예롭지 못한 착수들의 실패를 보고는 우리 형제 그리스도인들은 이 파탄난 모험에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에 의하여 마련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대표단의 이스탄불 (Istanbul) 방문 과정에서 나온 우리 교회에 대한 말들과 비정교교파들과의 기타 교류들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악평하는 시도들, 언론에서의 많은 발언들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 전(全) 정교세계는 문제를 형제적 대화를 통하여 조속히 해결해야할 필요성을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민족은 수백 년 간 우정을 맺고 있으며, 또 본인은 우리가 어떤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형제적 관계를 보존하고 강화하리라 믿습니다. 러시아 교회는 한국에서와 같이 전세계에서도 언제나 평화의 인도자였습니다. 

주교님 (δεσπότης), 귀하와 우리가 할 일은 권세를 바라지 않고서 그리스도를 송영하고 전도하며, 그분을 섬기고, 자애와 사랑 그리고 정의를 실천하고, 인종과 사회적 위치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우리 측에서는 평화로이 공조하고 형제로서 포옹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습니다.  

복잡히 얽힌 상황은 인간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보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이 분리되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화해하였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주교님, 제발 분리를 심화시키는 일만이라도 저지르지 맙시다. 우리 교회들은 지금 상호관계에 있어서 어려운 시기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과 동남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의 양떼가 이에 수난을 겪지 않도록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합니다. 모두가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두가 장애 없이 정교를 전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정치적 이해의 요구에 응하여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시기를 귀하께 호소합니다. 우리는 분리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에 따라 기도하는 장래의 화해와 일치에 기여합시다. 

귀하께서 이해해주시리라는 희망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적 사랑으로

세르기
싱가포르 및 동남 아시아 관구장주교
동남 아시아 총대주교대리

SERGIY,
Metropolitan of Singapore and Southeast Asia
Patriarchal Exarch of South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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