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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황제

[로마칼럼]  한평우목사/ 로마한인교회 담임 »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20Km를 가면 산을 끼고 있는 유명한 도시가 티볼 리가 있습니다. 그 도시가 가깝게 보일 때 오른 쪽으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117-138) 황제의 별장 푯말이 나타납니다. 그 길을 따라 얼마쯤 가면 거대한 성채가 길을 막아섭니다.
둘러쳐있는 높은 담벼락이 위용을 자랑하고 그 내부에 대한 큰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은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별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로 부와 권세의 상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이런 것들로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자신의 소유의 대단함을 자랑하려고 하는 속물적 근성이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별장을 건축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력과 재원이 요구되었는지는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당시 로마는 태평성대를 자랑했던 시절이었으니 이런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

그는 양아버지이자 선대왕 트라야누스 황제의 후계자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양 아버지 트라야누스 황제 역시 양 아들로 들어갔는데 말입니다.
놀라운 것은 로마 제국에 있어서 가장 찬란한 번성기는 양 아들들이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그 다섯 황제를 오현제라고 역사가들은 칭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황제들이 모두 자식에 없었기에 제일 똑똑한 부하 중에서 양아들로 입적시켜 대권을 물려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로마의 역사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철학자 황제로 잘 알려진 아우렐리우스 때에 끊어지고 말았는데 그는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딱서니 없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 국가의 운명은 더 이상 흥기하지 못하고 내리막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지도자 한 사람의 역량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고로 지도자로 세우는 일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아주 중요하기만 합니다.  

하드리아누스는 황제로서는 드물게 문화에 탁월한 식견과 재능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는 한 동안 제국 전역을 순례하였는데 이집트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의  별장을 장식하는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군사나 정치적으로도 탁월했는데 로마의 방위선이 너무 길고 그에 대한 방위비의 부담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방위선의 규모를 줄이고자 시도하였으나 그런 일은 제국이 축소되는 것을 의미하였기에 원로원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확장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미국의 정세 같다고나 할까요?  

그는 인간적으로 존경 받을 만한 지도자였습니다. 전선을 순례하는 어간에 병사와 함께 식사를 하였고, 병사와 함께 행군을 하기도 하는 소탈한 면모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병사들의 환호가 얼마나 대단했을 까 생각됩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 터에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우상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럼으로 목숨을 걸고 항전한 유대인들과 3년 동안을 치열하게 싸워야 했습니다. 그후 유대의 이름은 말살되었고 대신 팔레스틴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자유로운 남녀 관계 속에서 남색에 깊이 빠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관습은 일찍이 그리스에서 유입된 풍습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거의 벗은 몸으로 비스듬히 누어 포도주를 마시면서 담론을 즐기다 보면 서로 몸을 부딪치게 됩니다. 당시는 그리스 문화가 로마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너도나도 그리스 언어와 문화를 흉내 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남색 같은 부분도 자연스레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를 아는 지식인이 기독교를 핍박 했다는 사실입니다. 직접적으로 핍박하기 보다는 총독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핍박했습니다.  
그는 소아시아 총독 미누키우스 푼다누스(Minucius Fundanus)에게 칙령을 내린 문서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자들을 가차 없이 처벌하되, 체포하여 확인한 후 개종을 약속하는 자들은 살려주라고 했습니다. 총독들의 보고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신앙을 부인하고 개종을 약속하여 처벌을 면했다고 합니다.

항상 이런 자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합니다. 이런 핍박으로 로마의 주교 텔레스 포루스(Teles Phorus 125-136)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황제는 말년에 심한 고통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심지어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사도바울이 죄수로 로마로 가기 위해 하선한 보디올(현 Pozzuoli)에서 가까운 별장 바이아이(Baiae)에서 62세의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훌륭한 황제였으나 기독교를 핍박한 것은 옥에 티 같다 싶습니다.
어차피 가는 인생인데 그는 잘못 선택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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