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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화, 달러화, 유로화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87회

돈, 영욕의 역사를 보다

원소기호 Au, 원자번호 79, 녹는점 1064℃, 그리고 비중 19.3인 이것을 사람들은 황금이라 부른다. 금은 오랜 세월동안 숱한 영혼을 사로잡았고, 고대로부터 부귀영화의 상징이었고, 최고의 화폐며 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파운드와 달러 그리고 유로화 등 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영국의 파운드화,미국의 달러화 그리고 유럽의 유로화는 숙명의 맞수이자 삼각관계이기도 하다.

파운드의 역사에서 “영국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영국 파운드의 시작은 고대 로마시대에 무게 측정 단위로 사용된 “리브라”(무게, Libra)에서 유래한다. 이런 이유로 파운드를 표시할 때 “P”가 아닌 “L”(£)이 되었다. 그럼에도 영국의 파운드는 오파(Offa,757-796)왕이 프랑크 샤를마뉴 왕(768-814)시대의 화폐 “리브라” 체계를 본떠 만들었다. “리브라”는 유럽 여러 나라 화폐의 모델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리브르”가 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리라”, 스페인에서 “디네로”,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는 “지녜이루”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파운드 화폐의 표기인 “£” 가운데 들어간 크로스바(-)는 파운드(£)의 약자인 것을 뜻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화폐들, 달러($)와 유로(€), 엔(¥) 등에도 동일하게 표기되고 있다.
파운드는 1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를 군림하며 “기축통화”(금과 더불어 국제간 결제나 금융거래에서 통용되는 통화)로 사용되었다. 빅토리아(재위, 1837-1901)시대인 1860년에서 1914년 사이에 파운드는 세계교역 결제통화의 60%를 차지했을 정도로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영국이 1819년 유럽에서 가장 먼저 금본위제(金本位制)를 시행한 것에서 비롯됐다. 금본위제란 화폐의 가치를 금의 가치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물론 금본위제는 로마시대 때부터 지역적으로 시행된 적이 있었지만, 기축통화 기능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영국은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세계무역의 중심인 영국과 거래하려는 다른 국가들도 영국의 금본위제를 따라야 했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면서 각국은 전비 조달을 위해 자국이 보유한 금의 양보다 많은 돈을 발행하게 되었다. 무분별한 화폐의 증가는 자연히 인플레이션을 가져왔고, 금본위제가 크게 흔들리면서 마침내 영국은 1931년 9월 스스로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됐다. 영국의 파운드화의 금본위제 포기는 곧바로 미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1933년 미국(루스벨트 대통령)도 금본위제를 폐지하였고, 1936년 유럽 역시 이른바 “금 블록 국가”라 불리던 프랑스를 비롯하여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파운드의 위상은 제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크게 하락하였고, 지금은 달러, 유로, 엔화에 이어 네 번째로 밀려났다. 특히 영국이 브렉시트(Brexit, 유럽연합 탈퇴)이후 파운드의 위상은 크게 약화 되고 있다. 영국 파운드 영욕의 역사는 영국 역사와 쾌를 같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달러의 힘에서 “미국의 힘”을 볼 수 있다.
 
1606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맥베스” 1막 2장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전쟁 배상금으로 1만 달러를 요구한다…”(Ten thousand dollars to our general use.)라는 내용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영국은 신대륙에 식민지를 두지 않았음에도 미국의 화폐 단위를 “달러”(Dollar)라고 했다. 미국은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와 1783년 파리조약에서 독립이 승인될 때까지도 독립된 화폐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주로 스페인과 프랑스 등 외국의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85년 의회는 미국의 통화 명칭을 “달러”로 정한다고 결의했다. 지난 500년 동안 세계의 패권 국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미국 순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패권 국가의 자리는 공교롭게도 경제의 상징인 기축통화와 연결되어 있다.
15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해상 무역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스페인의 은화 “페소 데 오초”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그러나 1588년 영국과 스페인, 두 나라가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되는 것을 틈을 타 네덜란드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식민지배를 확대하면서 사실상 “길더화”가 기축통화 노릇을 했다. 영국은 네덜란드에게 빼앗긴 기축통화의 자리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오래되지 않아 “파운드화”가 “길더화”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영국이 제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기축통화의 자리를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미국은 1944년, 제 2차 대전 중에 전 세계 44개국들을 미국 뉴 헴프셔주로 불러 모아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삼을 것을 결의했다. 이토록 전 세계가 기축통화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화폐를 찍어 내는 권한을 가지고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시뇨리지”(seigniorage, 화폐주조차익)라고 하는데, 극단적으로 나라가 빚을 진 것이 있어도 돈을 자율적으로 찍어내어 빚을 갚을 수 있는 엄청난 특혜를 누릴 수 있다. 미국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금껏 70년 이상 기축통화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미국은 실물 경제에 가장 민감한 비자카드, 마스터 카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의 신용카드 전표 매입, 두바이 등 국제 원유 거래 등에서 미국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여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고 있다.  
 
유로화와의 고민에서 “유럽의 고민”을 알 수 있다.
 
유로화(€, EUR)는 유럽연합국(EU)이 사용하고 있는 공식화폐이다. 현재 유럽연합국에 가입한 나라는 블렉시트를 선언한 영국을 제외하면 27개국이다. 유로화는 19개국의 유럽연합 가입국과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9개국에서 사용되며, 이들 국가를 통틀어 유로존이라고 한다. 반면 유럽연합에 가입되어 있으면서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스웨덴을 비롯해 덴마크, 체코, 크로아티아, 헝가리, 폴란드,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모두 9개국이다. 유로화는 1999년 1월 1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현재 3억 3,200만 명의 유럽인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 비 유럽권 1억 7,500만 명 정도가 자국의 화폐단위를 유로화에 고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유로화가 국제결제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게 됐고, 또한 지금도 여전히 유로화가 미국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경제적인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와 유로화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크게 요동쳤고, 끝임 없이 추락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역학관계이다. 유럽연합은 한마디로 “한 지붕 27가족”이며, 유로화는 “한 지붕 19가족”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최대 고민은 독일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면 어쩌나하는 우려가 컸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1951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는 독일을 끌어들여 유럽 석탄철강 공동체(ECSC)를 출범시켰다.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석탄과 철강을 공동관리 함으로 전쟁을 막아보자는 취지였다. 이후 1965년 유럽공동체(EC)가 탄생했고, 이후 수많은 조약과 회원국 확대를 거듭하여 지금의 유럽연합의 모습이 갖춰졌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은 “독일의 독주”이다. 지금껏 미국을 등에 업고 유럽의 경찰 노릇을 자처하던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해 버렸고, 유럽의 맹주로 독일을 견제하던 프랑스조차 높은 실업률과 저성장으로 유럽연합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독일은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벗어났고, 경제적인 호황을 누리면서 유럽의 중심국이 되어 버렸다. 프랑스는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럽연합 내에서 유일한 핵무장 국가이자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영국은 지금껏 프랑스가 미국이 주도하는 북 대서양조약기구(NATO)동맹 외에 유럽 방어망을 강화하려는 야심에 대해 끈질기게 반대해 왔다. 그런데 이제 프랑스를 견제할 상대가 사라지면서 유럽은 미국과 같이 국방과 군비를 통해 경제를 지탱하려는 유혹에 빠져 들고 있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500명의 가난뱅이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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