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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파리 테러 사건을 통해 본 이슬람의 진정한 얼굴

[채희석칼럼]  포커싱 프랑스 -1회

파리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통해 본 이슬람의 진정한 얼굴

본지는 이번호부터 불어권,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회와 종교적인 시사들을 선교적인 안목으로 조명해 보는 채희석 칼럼을 신설합니다. 본지의 칼럼위원으로 함께 할 채희석 목사님은 파리 모두제자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프랑스 현지 침례교단의 한국인 사역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2015년 새해 인사를 아직도 나눠야 하는 연초에 (1월 7일), 프랑스가 충격과 슬픔 속에 빠졌다. 프랑스의 심장부, 파리, 그것도 펜과 그림 밖에 없는 한 언론사를 향해 기관총으로 무장한 이슬람주의자 테러범들이 학살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범인 추격 과정에서도 불상사가 일어나, 언론인, 경찰관, 시민 등 총 17명의 귀한 인명이 희생되었고, 십여 명이 부상 당했다. 이는 지난 50년만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가장 큰 테러 사건이다.

이런 위기의 때에 어김없이, 이슬람이 도마 위에 놓인다. 이슬람의 진정한 얼굴은 무엇인가?  극우정치 세력과 일부 보수언론은 이슬람 혐오(islamophobie) 발언을 쏟아낸다. 폭력과 불관용이 마치 이슬람의 전형물이 된 듯 말한다. 일부 사람들은 작년 여름부터 중동지역에 세워진 이슬람주의 국가(IS)의 야만적인 잔인성을 연결시키기도 한다. 프랑스의 극보수파 국민전선 (FN)은 국가주권의 이름으로, 독일의 반 이슬람 시위 페기다(Pegida) 집회에선 애국의 이름으로, 무슬림에 대한 비하내지 소수민족 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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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보수 잡지사 주간 에릭 즈무르(Eric Zemmour)가 저술한 “프랑스의 자살” (le suicide français)이란 책이 작금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 되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1970년대 이후 프랑스가 경제, 사회, 문화 면에서 서서히 국력을 상실하고 있는데, 그 주된 원인은 대규모로 온 이민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을 받쳐주는 통계자료는 엉터리임이 판명이 되였다. 이처럼 테러 사건뿐만이 아니라, 일부 정치인들의 몰상식한 돌던지기식 이념몰이 발언, 거짓이 혼합된 언론, 올바른 판단에서 이탈된 지적 행위로 사회적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 경제이민 온 외국인들, 특히 많은 무슬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그들은 테러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지만 사회적 눈총을 받으며, 미운 오리새끼처럼 취급 받고 있다. 벌써 이슬람과 모스케를 향해 미움과 복수의 돌이 이곳 저곳에 던져지고 있다.

이런 현상과는 달리, 테러 사건은 진정한 이슬람과 무관하며, 심지어 테러범들은 무슬림도 아니라는 목소리도 높다. 테러 사건이 보여준 폭력은 관용과 평화를 존중하는 이슬람의 본질에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자는 다름아닌 유럽의 무슬림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유럽에 동화된 온건파 무슬림이지만, 타릭 라마단(Tariq Ramadan)과 같은 보수파 이슬람 지성인이나 관련 무슬림 단체(UOIF)도 포함된다. 더 나아가 무슬림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아랍동맹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슬림대학인 이집트의 알 아자르(Al-Azhar) 대학 측에서도 테러 사건을 단호히 규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슬람 세계에는 같은 코란을 읽지만 해석을 달리하는 이슬람 나름대로의 모순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슬람을 일반화시켜 말하면 항상 난관에 빠지기 쉽다. 진정한 이슬람의 얼굴을 찾고자 할 때, 어떤 경우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집착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모순이나 한계는 무슬림 자신들이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신앙의 양심을 통해서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특히 유럽의 무슬림은 자신이 지향하는 신앙이 유럽의 토양에 동화되고 유럽의 제도와 공존할 수 있도록 소위 “유럽화된 이슬람”(Euro-Islam)을 다양성 가운데 추구하는 것이 시대적으로 요구된다.

이번 파리 테러사건에 비취어 본 이슬람의 진정한 얼굴은 한마디로 “이슬람은 다양하다”라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이슬람을 민족집단종교요, 아니면 이데올로기로 강하게 결집된 종교로 인식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종파와 분파는 매우 폭 넓고 다양하다. 우리가 아는 순니파(Sunni)와 시아파(Shi’ah) 외에 하와리지파(Khawarij)가 주류로 군림하고 있다. 작금에는 전통적 이슬람에 대항하여 지하디스트(Jihadist) 이슬람이 이슬람 내에서 새로운 냉전 관계를 만들고 있다.  유럽 내에서도 독일 (터키), 영국(파키스탄), 프랑스(북아프리카)의 무슬림 출신 배경과 종교적 성향이 각각 다르다. 따라서 이슬람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고 다양한 무슬림의 세계를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어떤 부류의 이슬람을 말하고 있는 지를 알아야 한다.

다른 한편, 유럽이 바라보는 무슬림 세계는 사뭇 한국교회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은 과거 15세기 동안 기독교 대륙이었으며, 서구문명의 중심지였다. 오늘날도 문화와 정치 주도권 차원에서 역동적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장이다. 유럽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종교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소통해 주고 있다고 여긴다. 특히 이 두 종교는 마치 씨줄과 낱줄로 천을 짜듯이 역사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립과 공생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대립관계, 즉 이슬람은 기독교의 가시와 같은 존재라, 기독교가 흥하면 이슬람을 멀어지고, 기독교가 쇠하면 이슬람이 다가오는 것이다. 공생관계란 유럽에서 이슬람을 핍박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자체에 대한 편견과 배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이슬람을 포괄적인 관점에서 주시하지 않으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한쪽에 치우친 이념이나 편견에 빠지게 된다. 성서한국의 관점에서 유럽을 보고 부정적인 시각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거나, 유럽이 이슬람화되고 있다라는 근시안적인 논리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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