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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아버지”, “역사의 아버지”, “의학의 아버지”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92회

고대로부터 각 분야에 아버지라 불린 세 사람…

히브리어로 산은 “하림”, 스승은 “오림”, 그리고 어버이는 “호림”이라 한다. 유대인들은 스승과 그리고 어버이는 산과 같이 높이 받들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오래전 고대 사회에서부터 있어 왔다. 고대로부터 각 분야에 아버지라 불린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그리고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이다.

탈레스, “신화에서 과학의 세계를 열다.”

대부분의 서양 철학사는 탈레스(BC624-547)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 크게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그가 최초의 철학자, 그리스 7대 현인 중 한 사람이라는 것과 밀레토스의 명문 집안 출신이라는 것 등 몇 가지 정도이다. 그가 남긴 중요한 이론 또한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것과 “지구는 물 위에 떠있다.”라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후대 철학자들 또한 그가 우주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질문했을 뿐 아니라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자신의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서양철학은 탈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탈레스가 당시 그리스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신화적인 우주관을 깨고 우주의 본질과 근원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한 점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제우스가 “구름을 모으고, 번갯불을 던지는 자”등, 하늘과 땅을 지배하는 신으로 믿고 있을 때에 탈레스는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1년이 365.25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탈레스가 BC585년 5월 28일에 일어난 일식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로써 탈레스는 천둥이나 번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 계절의 변화와 천체의 운동 등은 신들의 영역이 아닌 인간이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과학의 세계를 연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탈레스는 우주에는 자연 법칙이 있으며, 인간은 우주와 물질에 대해 관찰과 연구를 통해 원리와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많은 원리들을 발견했다. 그는 오늘날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수학의 원리들을 발견했다. “원은 지름에 의해서 2등분 된다. 이등변 삼각형의 두 밑각의 크기는 같다. 두 직선이 교차할 때 그 맞꼭지각의 크기는 같다.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두 개의 삼각형에 있어서 대응하는 변이 모두 평행 되게 놓여 있으면 두 삼각형은 서로 닮음이다.”

헤로도토스, “서사시에서 역사의 세계를 열다.”

로마 철학자인 키케로(BC106-43)는 헤로도토스(BC484-420?)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헤로도토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역사”(Historiae)라는 방대한 책을 저술했다. 헤로도토스 이전에도 호메로스(Homeros)가 쓴 일리아스(Ilias)나 오디세이아(Odysseia)가 있었지만, 차이점은 신화나 전설이 가미된 서사시가 운문이 아닌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했다는 점이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사건의 원인과 결과와 본질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역사”라는 책을 저술한 의도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인간의 행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인들과 비 헬라인들이 이룩한 위대하고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동서양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데 있다.” 그가 쓴 “역사”란 책은 총 9권으로, 1권에서 6권까지는 페르시아가 오리엔트를 통일하고 인도에서 구스까지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7권에서 9권까지는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기록과 고레스(BC558-529)에서 크세르크세스 때까지, 즉 BC 558년에서 479년까지 약 80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구약성경 에스더에 기록된 고레스와 다리오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중에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Xerxes, BC485-464)의 사적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페르시아 전쟁사”로도 불리는 “역사”는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동양의 페르시아와 서양의 그리스와의 전쟁의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했다. 헤로도토스는 동양과 서양이 맞붙은 최초의 전쟁을 두 문화의 정치제도의 차이, 즉 전제 정치와 민주정치 사이의 충돌로 파악했다. 그는 페르시아가 패망한 원인에 대해 한 마디로 “오만”(Hybris)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페르시아 군대는 그리스 군대를 무시하였을 뿐 아니라 그리스의 신전을 불태움으로 그들이 가진 역사와 전통을 모욕했다. 반면 전력과 군비 모두 엄청나게 우세했던 페르시아에 맞서서 싸운 그리스인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저항 정신”에 주목했다. 그는 특히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유를 지켜내려는 의지로 전쟁에 승리 했다는 점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폴란드 태생으로 저널리스트이며 문화해설자 등으로 활동해온 카푸시친스키(1932-2007)의 저서“헤로도토스와의 여행”(2006)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대한 20세기 판 해설서이다. 카푸시친스키는 헤로도토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고대의 수많은 철학자와 문인들 중 헤로도토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한 첫 번째 인물일 것이다. 그는 인류를 개별적인 인종이 아닌 하나의 전체로 바라 본 최초의 작가이다. 다시 말해 헤로도토스는 ‘문화’야말로 인간을 설명해주고, 해석해주는 단서라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했던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주술에서 의술의 세계를 열다.”

히포크라테스(BC460–370)역시 “의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것 외에 달리 알려져 있는 것이 많지 않다.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는 히포크라테스가 활동하기 전과 후를 비교할 때 의술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질병이란 신이 내린 벌이므로 신에게 벌을 거두어달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는 질병은 신이 내린 벌이 아니라 사람의 몸 체내에서 생긴 이상 징후들을 각종 약물과 신체적인 균형을 통해 치료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주술적으로 환자를 치료한 것에서 탈피하여 임상적 관찰을 통해 환자를 치료했다. 히포크라테스가 제자들을 통해 남긴 대표적인 것으로 “히포크라테스 전서”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들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전서”는 증상에 따라 급성과 만성질병을 구분하고, 유행성과 오래 머무는 풍토병을 구분했다. 또한 각종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 그리고 의사의 사명과 생명의 소중함 등이 담겨있어 오늘날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또한 각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 의사의 사명과 자세 등 의료윤리를 담고 있다. 선서는 크게 의사와 의사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부분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부분으로 나뉜다. 그토록 오래된 선서이지만 오늘날 전 세계 의과대학생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면서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기로 다짐하고 있다. 인기절정 가운데 종편된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 또한 피투성이가 된 환자를 보며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떠올린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사회적 지위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이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방송 6회)” 주인공이 환자의 생명의 존엄, 의사의 사명을 되뇌는 것을 통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터트리게 했다. 히포크라테스는 “귀족과 평민 중 누구를 먼저 치료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정답은 “더 아픈 사람”이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원문에는 “예술”이 아니라 “의술”을 뜻한다. 즉 의사 개인이 한평생 펼칠 수 있는 의술은 아주 짧지만 의사가 남긴 의술은 영구적으로 환자를 치료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필자: 김학우/
2070czmk@daum.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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