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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물가에 심겨진 나무

[유크시론 211호]  이창배 발행인

이달을 여는 창: 2019-6월호 사설

미래를 준비하려는 의도에서 차세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목회 포럼&컨퍼런스, 2019 다름슈타트가 곧, 시작된다.
새로운 선교의 길을 찾고, 모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코리안 디아스포라 교회, 그리고 차세대 사역자들이야말로 이때를 위하여 마련된, 물가에 심어진 열매 맺는 나무가 아닐까 싶다….

오래전에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아침 뉴스에 오늘 오후에 태풍이 분다는 기상예보를 아침 식사를 하면서 언뜻 본 듯하다. 그런데 오후에는 그런 기상예보는 기우에 불과한 듯 남태평양 사이판군도 바닷가의 드넓은 모래사장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멀리 수평선이 펼쳐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했다. 계절로는 이미 겨울에 접어든 시기였던 탓에 해변은 썰렁했고, 모래사장 위에는 밧줄로 단단하게 묶여서 보관 중인 보트들이 여기저기 엎어진 채 누워있었다. 그래도 해변에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파랗게 빛을 발하는 코발트색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탄성을 발했다. 그 풍광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해안으로 끝없이 밀려오는 부드러운 파도가 왜 그리 정겹던지, 그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먼 하늘에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조금 후면 석양이라 그러려니 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차에 뒤쪽 호텔에서 누군가 손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빨리 오라는 것만 같았다.
몇몇 원주민 같은 사람이 빠르게 바닷가를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왜 그럴까 잠시 생각을 거듭하다가 시간을 지체하고는 느릿느릿 해변 호텔로 발을 옮길 때 휭하니 바람이 스쳐 가는데, 여느 때 접하던 바람과는 뭔가 확실히 다른 것을 느꼈다.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담긴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보였던 먹장구름이 어느새 머리 위를 덮어버린 것이다. 그 부드럽게 찰싹거리던 파도가 사라지고 거세진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는 것이었다. 무언지 몰라도, 예감이 좋지 않아 무조건 해안가를 향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 넓은 모래사장을 미처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엄청난 바람에 휘감기고 말았다.
그토록 아름답고 평화스럽기만 하던 남태평양의 바다가 호 수면처럼 잔잔하다 느꼈던 시간은 잠깐에 불과했고, 파도가 일렁거리는 듯하더니만 급속히 성난 물결로 바뀌는 그 시간은 정말로 차 한잔 식을 정도의 시간에 불과했다. 이내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이고, 급격하게 몰아쳐 온 강력한 바람으로 평화롭던 바닷가가 아수라장으로 바뀐 것도 순식간이었다.

짧은 시간에 일어났던 기상변화
세상의 일도 그럴 때가 있다. 수년 전 필자는 유럽을 향해 난민이 물밀 듯이 몰려올 때, 교회 지체들과 함께 그리스 아테네에서 그렇게 갑자기 자신의 고향 땅과 가족들을 등지고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며 지중해 바다를 건너온 이들을 돕는 미션 트립을 가졌다. 그때 바다를 목숨 걸고 건너와 살았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이제부터 어디로 가고, 어떤 운명과 직면할 것인가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아테네의 공원 한복판에서 옹기종기 모여, 이제 다시 북쪽으로, 그들이 원하는 나라로 떠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교회 지체들과 함께 섬겼다.
이 일정 가운데 우리 일행이 머무는 선교센터 숙소에 마침 우리가 도착하던 날 새벽에 큰 배로 아테네에 도착한 후 곧바로 아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선교센터로 오게 된 두사람의 알레포 출신 시리아 난민 형제를 만나게 됐다. 한 형제는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달고 있었고, 그를 도와 함께 탈출한 형제는 제법 사회적 지위를 갖춘 의사였다. 자신의 사랑하는 형제의 다리가 되어서 먼 길을 걷고 걸어서 사지를 탈출했고, 그곳에 남겨진 아내와 딸, 그리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시리아 사람이었다.
이들과 삼일간 선교관 숙소에서 함께 묵으며, 무척 친해졌던가 보다.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함께 우리의 음식을 먹고 오롯이 대화를 나누며, 어느덧 그들의 시름도 조금은 덜어진 듯 했다. 마침 준비해간 영문판 사영리 교재로 복음을 전했고, 그들도 순순히 복음을 받아들였다. 더 이슬람이 아니라며, 예수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고백했다. 그들과 아쉬운 작별을 할 때는 함께 했던 교회 청년 지체들이 마치 자기 형제와 생이별을 하던 것처럼 얼싸안고 울음바다를 이뤘던 그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도 순식간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였다.

디아스포라 이슈의 전면 등장
사전에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한편의 생생한 드라마였다. 그때 사지를 벗어나 아테네에 도착하자마자, 선교센터에서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필자 일행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들이 어찌 알았을까. 우린들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일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 일을 겪으면서 뜻있는 사역자들과 난민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교감을 나누며, 난민사태가 유럽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에 새로운 선교가 열리게 될 것을 예감했다. 그로부터 불과 수개월 만에 만들어진 행사가 바로 목회 및 선교 사역자들을 초대해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를 나눠보자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교회 네트워크 디아스포라 사역자 써미트(Kodianet Diaspora Ministries Summit, 2016 Frankfurt)였다.
마침 연일 유럽과 세계 곳곳에서는 급증하는 난민 문제로 그 이슈가 뜨거운 감자처럼 세간의 관심을 끌던 때이다. 유럽의 국경을 폐쇄하는 등, 급격하게 증가하는 난민 문제로 정치 상황이 불안해지고, 난민들에 섞여서 유입된 테러리스트가 수천 명이라는 등의 설이 난무하던 때이다. 실제로 IS의 테러가 연이어 발생하여 이슬람권 난민들에 대한 혐오 감정도 비등해지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이런 시기에 열렸던 디아스포라 사역자 써미트에는 50여 명의 중동지역 전문 사역자와 북아프리카 사역자, 유럽 곳곳에서 사역 중인 디아스포라 한인교회 목회자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난민의 이슈가 무엇이고, 이제껏 단 한 번도 복음을 접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땅으로 왔다는 그 사실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효과적인 논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일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얼마 후 실제 난민의 행렬은 끝났다. 그 문이 열렸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셈이다.
갑작스러운 변화, 깜짝 쇼에 그치고 말까? 이를 보는 필자의 시각은, 우연히 사이판의 어느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며 봤던 그 날의 기상예보와 어쩜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다시금 미래를 준비하려는 의도에서 차세대 코리안 디아스포라 목회 포럼&컨퍼런스, 2019 다름슈타트가 곧, 시작된다.
새로운 선교의 길을 찾고, 모색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코리안 디아스포라 교회, 그리고 차세대 사역자들이야말로 이때를 위하여 마련된, 물가에 심어진 열매 맺는 나무가 아닐까 싶다.

이달의 말씀 ㅣ시편 1:1-3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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