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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정관님, 눈치 좀 보시지그랬어요!”

[로마칼럼]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콤모두스(Commodus161-192)는 누군가?

아버지 아우렐리우스는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로 훌륭한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이었다. 그는 게르만 장벽을 방어하기 위해 말을 타고 전선을 다니면서 번뜩이는 단상들을 메모한 내용들이 지금도 서점에서 현대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현명한 황제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전혀 달랐다. 아들은 로마 황제 가운데 학문을 멀리한 최초의 황제이었다….

우리 교회 주소는 비아 퀸틸리(Via Quintili)이다.
교회 주변은 이상하게도 길 이름들이 모두 공화정 시대의 탁월한 정치가나 집정관, 그리고 호민관 법무관 등등의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다. 대부분 기원전 2-3세기에 활동했던 위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앞길은 기원 후 2세기에 활동했던 정치가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공화정 시대에는 국가의 어려움이 일어날 때 원로원에서 결의하여 집정관을 선출했고, 그 임기는 6개월 동안으로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는 제도이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제도를 시저는 파기해버리고 스스로 종신 집정관에 취임하였다.
그는 막강한 힘을 구사한 영웅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볼 때 그로 인해 로마의 공화정은 몰락하게 되었고 황제 일인체제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 길은 로마가 서서히 쇠락의 길로 나아가는 단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세기의 제정 시대의 정치가의 이름을 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퀸틸리오 형제가 탁월한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퀸틸리는 퀸틸리의 가문을 일컫는 이름이다. 퀸틸리 가문에 탁월한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세스토 퀸틸리오 콘디아노와(Quintilio Condino)와 퀸틸리오 발레리오 마시모(Quintilio Valerio Massimo)로 뛰어난 형제 정치가다.
대체적으로 형이 똑똑하면 동생이 조금 못하고, 아니면 반대인 경우가 흔한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학문, 직업, 관심과 취미까지도 같았다. 막대한 재산이 있었음에도 이해관계로 서로 다투지도 않았다. 로마의 최고 지위인 집정관도 형제가 차례로 역임하였고, 원로원 의원도 사이좋게 함께 했다. 그래서 로마에서 존경 받는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로마 역사에 그런 예가 없을 정도로 특이한 형제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이 섬기던 황제는 포악하기로 유명한 콤모두스이었다.
황제의 아버지 아우렐리우스는 오현제 중 한 사람으로 철인 황제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국가를 평안하게 했고 백성을 잘 다스렸던 황제다. 그런데 아들은 전혀 달랐으니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이들의 집이 참피노 공항으로 가는 길인 아피아 누오바(Via Appia Nuova 1082)에 남아있는 데, 이 빌라는 로마시대에 개인이 소유했던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이다.
중세에는 요새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입장료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다.
언젠가 한번 들어가 보았더니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이었다. 개인 집 치고는 터가 지나치게 넓고 궁궐처럼 웅장하고 화려하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도시를 방불할 정도이었다.
개인 목욕탕도 있는데 마치 황제들의 목욕탕과 버금 갈 정도로 대단하였다. 이런 놀라운 개인 저택을 보면서 의구심이 일어났다. 꼭 이런 식으로 대 저택을 건축했어야 할까? 라는 의구심, 그토록 정치적 감각이 있었고 지혜로운 형제들이 말이다.
이 형제는 로마의 역대 황제들 가운데 미친 황제로 역사가들의 가십거리로 사용하는 콤모두스 황제가 다스리던 시기라는 사실을 왜 파악하지 못했을 까 싶다.
황제는 형제 신하가 우애가 좋기로 유명하였고, 재산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들의 집이 왕궁 이상으로 드넓고 화려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를 것이다.
그에 비해 황제 자신은 친 누이가 원로원과 결탁하여 자신을 암살하려고 할 정도로 사이가 나빴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 형제들이 황제의 눈에 얼마나 아니꼽게 여겨졌을 까 싶다.
그는 결국 형제는 황제에 의해 역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182년에 죽임을 당했고,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말았다. 황제가 부자나 신하의 재산을 강탈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즉 역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이다. 이런 것은 세계가 공통일 것이다.
적당히 증거자를 몇 명 세우면 일사천리로 엮이게 된다.
콤모두스(Commodus161-192)는 누군가?
아버지 아우렐리우스는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로 훌륭한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이었다.
그는 게르만 장벽을 방어하기 위해 말을 타고 전선을 다니면서 번뜩이는 단상들을 메모한 내용들이 지금도 서점에서 현대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현명한 황제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전혀 달랐다. 아들은 로마 황제 가운데 학문을 멀리한 최초의 황제이었다. 그는 정치나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검투사 경기에만 몰두했다.
당시에는 검투사 경기가 가장 인기가 있었기에 황제가 즐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콤모두스는 자신이 직접 갑옷을 입고 선수로 경기장에 나가서 싸운 황제로 유명하다.
무려 735번이나 피 터지는 싸움을 했다. 죽고 죽이는 경기가 검투사 경기다. 아마도 그가 행한 경기는 100전 100승이었을 것이다. 누가 감히 황제가 검투사로 나섰는데 그를 이길 수 있었겠는가!
글라디에이터 영화에서는 황제가 검투사 경기 중에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것은 픽션이다.
황제는 항상 승리했고,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검투사가 경기 후 받는 공동 기금에서 수당을 받아갈 정도로 도저히 이해 불가한 자였다.
그 금액이 상당하였기에 백성들에게 새롭게 세금을 부과해야 될 정도이었다.
그러니 점잖은 원로원 의원들은 얼마나 눈살을 찌푸렸을 까?
더구나 그는 수많은 소년소녀들과 궁에서 어울리느라 정사는 돌보지도 않았다.
이런 미치광이 황제를 보필해야 하는 두 형제는 눈치 없이 왜 그런 큰 저택을 건축했을까 싶다. 눈치가 없으면 21세기에도 절대로 권력의 실세가 될 수 없고 살아남을 수 없다.
고로 이 시대는 아부하고 눈치를 보는 일에 더욱 예민하다.
힘없는 자가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유능하고 백성의 사랑을 받던 집정관 형제는 왜 황제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을까? 집을 지을 때 으리으리한 저택을 짓지 말고 평범하고 소박한 집을 지었다면 태풍을 피해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돈이 넘친다면 곡간에 쌓아놓고 가난한 원로원을 돕는다거나 둘이서 조용히 기뻐하였다면 후에 역적으로 몰리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황제는 자신이 헤라클레스 신이라는 망상이라는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원로원들은 미친 황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되자 공모하여 레슬링 선수를 침실에 들여보내 황제를 목 졸라 죽였다. 그렇다면 형제가 조금만 견디었다면— 다시 말해서 대 저택을 건축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해도 현명한 황제가 일어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당신들이 역적모의에 고발당하여 오랏줄에 묶여 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이 눈물 뿌리며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 싶다. 차라리 그 돈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 걸 그랬다고 후회하지 않았을 까?
당신이 눈치 보지 않음으로 그 귀한 재능이 땅속에 묻히게 되었고, 더 살아서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할 집정관 형제가 억울하게 삶을 끝내야 하였으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막시무스 형제 집정관님!!!
눈치 좀 보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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