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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하라. 더는 침묵하면 안 된다.

[유크시론 203호]  이창배 발행인

이달을 여는 창: 2018-10월호 사설

이제는 말하라. 더는 교회가 침묵하면 안 된다. 점차 커지는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불안함, 정치와 사회, 경제를 막론한 전 방위에 드리워지고 있는 불안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주체사상은 종교이다. 우상 종교를 신봉하는 맹종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고 그에 대해 싸워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제 10월이다. 독일에 있어서는 10월 3일은 동독과 서독이 통일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개천절(開天節)이다. 개천절(開天節)은 서기전 2333년,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기리는 날이다. 단군왕검께서 역사의 창업을 일으켜 홍익인간 즉,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을 건국이념 삼아 우리 겨레의 뿌리를 내린 뜻깊은 날이다. 그러므로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 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천제를 올렸던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고, 민족국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4351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가 자랄 때 늘 듣고 배운바 뛰어난 반만년 역사를 지닌 민족이라는 자긍심이 문득 떠오른다. 개천절이 공식적인 국경일로 지정된 것은 1919년으로써 중국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해 음력 10월 3일을 건국기원절(建國紀元節)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행사를 했다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
이후 교민들을 중심으로 ‘개천절’이라는 이름으로 행사가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행사를 해왔는데, 민족의식의 고취를 두려워한 일제의 탄압으로 활성화되지는 못했다가 대한민국 건국 후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53조로 정해진 4대 국경일 중 하나로 제정이 된 자랑스러운 날이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반드시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꼭 태극기를 게양해 민족적인 자긍심을 고취했으면 싶다.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제4조로 2007년 7월 개정되어 현재까지 사용되는 국기에 대한 맹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이 문장이 더없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 어떤 때보다 태극기를 볼 때 가슴이 뛴다. 태극기를 사랑하게 된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나의 뿌리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나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대한민국에서 자랐고,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대한민국에서 신앙을 가졌다. 대한민국을 나는 사랑한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대한민국 사람답게, 대한민국을 위해 살아가는 것에 단 한 번도 배신해 본 적이 없다.
또 나는 대한민국 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이다. 대한민국에 뿌리를 둔 교단에서 선교사 파송을 받았다. 나를 받아 준 독일의 관공서에서나, 함께 협력하는 독일교회에서도 여전히 나는 한국 목사이다. 설령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가장 먼저 묻는 게 국적이다. 그래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고, 목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을 절대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피와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나는 한국 사람이다. 더 크게, 더 높이, 더 많이 누리거나, 받은 것 없이 그저 평범하게 태어나 숙명처럼 가난을 물려받아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생존의 힘겨운 싸움을 살아냈지만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 됨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지금 해외에서 오랜 세월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20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버릴 수 없다. 아마도 나의 생애는 그렇게 끝이 날 것이다.
그런 내가 정녕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대한민국 국기를 가리려 한다는 점이다. 하다못해 자기 백성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해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고, 인면수심이 되어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탱크로 깔아뭉개고,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여겨 짐승만도 못하게 짓밟아 죽이는 그런 최악의 인권 말살 국가로, 악명이 자자한 나치의 아우슈비츠수용소에 버금갈만한 정치범강제수용소를 운용하고 있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 말이다. 자국민을 개나 돼지처럼 여기는 배부른 공산주의자들도 자랑스럽게 인공기를 가슴에 새기고, 배지를 옷깃에 달고 밝은 세상을 부끄러움도 없이 활보하고 돌아다니는 판에, 무엇이 부끄러워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태극기 배지를 떳떳하게 달지 못한단 말인가. 그들은 정녕 대한민국을 버린 것인가?

나는 태극기를 사랑한다.
대한민국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격으로 북한 평양을 방문한 자리를 면면히 살펴보아도 태극기를 보지 못했다. 국가 정상이 만나 회의를 한다면서 쌍방국가 국기를 나란히 꽂아야 할 자리에 인공기와 국적 없는 한반도기만이 펄럭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일한 국가는 인공기를 꽂은 북한뿐이고, 대한민국은 그 한반도의 부속 영역쯤 된다는 말인가!
지금도 서울시청에서, 아니 국영방송사에서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인공기가 게시되고, 방영되고, 북한의 평양이 서울과 부산보다 더 가깝게 비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건 도대체 말이 되질 않는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어쩌다 천박 말썽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는지. 말이 나오질 않는다. 저들은 정녕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주말마다 서울의 길바닥에서 나부끼는 태극기의 행렬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대한민국의 방송과 언론이 깎아내리고 한 줄로도 보도조차 하지 않는 태극기 집회가 날이 갈수록 마음을 파고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면면을 돌아보지 않고,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뜨거운 여름에도, 차가운 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명의 수천, 수만 명의 태극기를 든 국민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이제는 말하라. 더는 교회가 침묵하면 안 된다. 적어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지켜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럴 생각조차 없는 북한의 소수 특권 지배층을 위한 조건 없는 쏠림은 개천(開天), 곧 맨 처음 하늘을 연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대한 배신이자, 대한민국과 국민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서울대, 부산대를 비롯해 각 대학에 대자보가 붙고, 거리에 태극기를 든 청년들의 모습이 갈수록 늘어남을 보라. 그들은 “위장된 평화, 비겁한 평화를 택하기보다는 전쟁이 차라리 낫다”라고 말한다. 점차 커지는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불안함, 정치와 사회, 경제를 막론한 전 방위에 드리워지고 있는 불안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주체사상은 종교이다. 우상 종교를 신봉하는 맹종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고 그에 대해 싸워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달의 말씀 ㅣ 엡6:10~12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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