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오피니언유크시론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유크시론 215호]  이창배 발행인 |

이달을 여는 창: 2019-11월호 사설 |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무엇보다 젊은 층이 주 소비층으로 되어버린 SNS 미디어 분야에 대해서 어떻게 복음적인 접근을 이뤄갈 것인지를 살피며, 그 대책 마련을 위해 본지가 앞장서는 것은 물론 하고, 개교회의 관심도, 그 지원도 높아지기를 소망한다.

온통 회색빛으로 음산한 기운이 사방을 덮고 있다. 청명한 날에는 멀리 뵈던 푸른산 타우너스가 어디 만치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다. 부쩍 차가워진 날씨와 함께 부슬부슬 빗방울이 떨어진다. 때마침 우반(U-Bahn)이 멈추고, 전차 정거장에서 내리는 젊은이들이 저마다 두툼한 외투로 몸을 감싼 채 총총히 캠퍼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확연히 달라졌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나름 밝은색의 옷, 가벼운 옷차림만으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일상이었는데, 11월을 맞으며 이렇게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먼저 살던 집과 환경이 퍽 달라졌다. 다름슈타트 외곽의 조용한 동네로, 건축된 해가 1965년이나 된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이곳에서 사는 분들이 대부분 은퇴하신 고령의 주민들이었다. 10년여 이곳에 살다 보니, 아시아계의 주민은 우리 집 식구뿐이고, 더구나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아울러 교회 목사라는 직분까지도 공개되어 이웃들과 관계가 신중해야만 했었다. 그러니 항상 노심초사하며 조심조심 살 수밖에 없었기에 그곳을 벗어난 지금, 프랑크푸르트 북쪽, 리트베르크(Riedberg)란 동네로 이사 온 것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아직 낮이 설기는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 리트베르크(Riedberg)캠퍼스 옆에 살기에 항상 젊은이들이 오가는 것을 아침저녁으로 지켜보며 산다는 것이 즐겁다. 전형적인 독일마을의 고적한 분위기와 달리 활기가 있어서 좋다.
여기에서 온전히 유크 11월호를 발행하게 됐으니 감사하다. 앞으로 이곳이 일하며 살아갈 곳이 됐다는 것이 새롭게 마음에 다가선다. 그동안은 독일 생활을 이래저래 맛보며, 온갖 부침을 경험했던 시기이다. 소위 말하자면 지금까지 독일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 근 20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기간을 다름슈타트에서 마감하고, 이제부터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는 점에서 가슴 버겁도록 만족하고 감사한 것이다.

그분의 손길이 함께 하심

이제 한 달 후에는 그동안 생명처럼 여기며 사랑해 온 다름슈타트 아름다운 교회의 담임목사직에서 이임을 하게 된다. 앞서 밝혔던 것처럼 본지의 발행과 미디어 확장을 위한 사역으로 주된 사역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은퇴 또는 퇴임이 아니냐 하는데, 이는 아니다. 아직 은퇴할만한 나이도 아니거니와 더 목사로서의 사역을 멈추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지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교회를 돌보는 목양사역과 신문을 발행하는 매스미디어 사역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그동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항상 이 두 사역 사이에서 적절할 균형을 유지하는 편을 택해 왔기에 사실 어느 쪽으로도 흡족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한편을 확실하게 택하는 만큼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그런 점에서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선교사적인 삶을 살 게 됐다고 자신을 소명한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 염려도 생긴다. 어떤 지인이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냐 하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도 한다. 물론 넉넉하진 않아도 고정적인 사례가 있는 목회 직을 내려놓으면 100% 자비량 사역이 될 매스미디어 사역으로 인해 당장 다가올 경제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뉘앙스이다. 그렇다고 전혀 아니라고 할 만큼 대안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주저 없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지난 2001년 9월 이래로 이어온 본지의 발행이 그 증거가 된다. 불모지와 다름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매달마다 신문의 인쇄와 발송이 이뤄져 왔다는 것이 그 명백한 근거이다.
또 그 어떤 손이 도와준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자면 하나님이시다. 신문을 발행하기 위한 고가의 편집장비를 갖추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고 그일을 해왔던 것은 그분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이분이 함께하시는 데 무엇을 주저하고 망설이겠는가. 이것이 나의 고백이다.
또한 복음을 담은 매스미디어의 확장에 있어서 그 당위성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 이 시대가 급격히 IT 사회로 전환되어가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 부응하기 위해서 한길로 나의 에너지를 쏟는 게 절대 이상스럽지 않으리라 여긴다.

이 시대 복음을 위한 교회의 대안은

본지 이번 달 호 4페이지에 실린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아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19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조사” 결과조사가 의미심장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 않은 개신교인의 비율은 20대가 압도적이며(15.0%), 드문드문 출석하는 신자들의 비율을 합하면 20대 신자의 42.2%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령대별 분포의 추이는 이러한 양상이 젊을수록 급격하게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교회로부터의 이탈을 주도하고 있는 신자들은 젊은이들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결과가 시사하고 있는 이슈는 “20대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 층에서 근본주의적 제도교회로부터 이탈하여 동시대의 시대정신에 따르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우리 교회들이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다.
또한 제기된 동시대의 시대정신에 대해서 무어라고 특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반 기독교정서와 동성애 같은 사회적 이슈가 SNS를 통해 젊은 층에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볼 때, 교회의 대안이란 게 더욱더 철저한 개혁 외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식의 원론적인 범주에 머물고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독일지역이나, 유럽의 어느 지역에서든지 20대 유학생 또는 젊은 층의 교회 출석상황을 살펴보면 그 정황이 설문조사의 결과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가면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결코 나아질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교회는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타개를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선 게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무엇보다 젊은 층이 주 소비층으로 되어버린 SNS 미디어 분야에 대해서 어떻게 복음적인 접근을 이뤄갈 것인지를 살피며, 그 대책 마련을 위해 본지가 앞장서는 것은 물론 하고, 개교회의 관심도, 그 지원도 높아지기를 소망한다.

이달의 말씀 ㅣ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