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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종교개혁 현장을 가다”

[현장답사] 유럽부흥과 선교아카데미, 4개국 유럽종교개혁 비전트립

종교개혁자 영성 리바이벌 될 수 없을까!

8박9일 동안 4개국, 17개 도시, 약 86여 곳의 유적지를 방문하는 강행군이었다. 참석한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은 매일 저녁 토론 주제를 정하여, 심도 깊은 토론을 이어갔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종교개혁자들, 진리가 진리 되는데 어떤 장애가 와도 굴하지 않고 인내하였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용기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부흥과 선교아카데미(원장 김현배 목사, 베를린비전교회)에서는 8월 2일 부터 8월 10일 까지 독일, 체코, 프랑스, 스위스 등 4개국 유럽종교개혁 비전트립을 개최했다. 지난해에 이어 제 2기 비전트립에는 13개국에서 교수, 목회자, 선교사 및 평신도, 청년 등 39명이 참여했다.
첫날, 체코 프라하에 있는 얀 후스의 유적지를 방문했다. 그는 유럽 종교개혁의 불씨요, 진리를 지키기 위해 화형을 당한 순교자이다. 후스가 목회했던 베들레헴 교회와 그의 동상에 새겨진 ‘오직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는 명언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의 외침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 했다. 과거 후스파의 격전지 틴성당과 시청사 바닥에 하얀 십자가로 새겨진 27명의 개신교 지도자들의 순교 신앙에 도전을 받았다.
둘째날, 이른 아침 모라비안 형제들의 흔적으로 가득한 헤른후트에 도착했다. 독일 후기 경건주의 지도자였던 진젠도르프의 흉상, 모라비안 교회, 진젠도르프 부부와 모라비안들의 묘지, 그리고 하루 24시간 365일, 100년 이상 쉬지 않고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했던 ‘후트버그 기도탑’에 큰 감동이 되었다. 이들의 중보기도가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어 진젠도르프가 태어난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루터 종교개혁 사상으로 인해 개신교로 변한 프라우엔 교회와 루터 동상을 보면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북부 독일까지 큰 영향력을 끼쳤음을 알게 되었다.
셋째날,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먼저 독일 통일을 위해 1982년 9월 부터 매주 월요일 5시, 동독의 젊은이들이 모여 기도했던 성 니콜라이 교회를 찾았다. 독일 통일의 기적이 이곳 젊은이들의 작은 기도회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큰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세반스찬 바흐가 성가대 지휘자로 27년간 섬겼던 성 토마스 교회를 둘러보았다. 교회 안에 바흐 무덤과 교회 밖에 바흐 동상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손에는 대표곡 마태수난곡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에 도착했다. 루터 참나무와 루터하우스(종교개혁사 박물관), 멜란히톤 하우스와 박물관, 옛 비텐베르크 대학 건물, 루카스 크라나흐 생가, 비텐베르크 시교회에서의 종교개혁제단화, 교회 외벽에 새겨진 유대인 돼지 조각상, 요하네스 부겐하겐 집과 동상, 비텐베르크 성교회 등을 둘러보았다.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비텐베르크 성교회가 많은 감동을 주었다.
넷째날, 오전에 1989년 11월 9일 무너진 베를린 장벽(이스트사이드갤러리), 브란덴부르크 문, 체크 포인트 챨리, 시내 장벽,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 홀로코스트 기념비, 베를린 돔교회를 탐방했다. 오후에는 베를린비전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이날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는 “깨끗한 그릇”(딤후 2:20-26)이라는 주제로 설교했다. 예배 후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섯째날, 이른 아침 아이슬레벤에 도착했다. 불꽃같은 종교개혁자로서의 삶을 마감한 마틴 루터의 사가와 생가, 루터가 유아세례 받은 성 베드로-바울교회, 루터가 임종 전에 4편 설교했던 성 안드레아스 교회, 루터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마켓광장에 세워진 루터동상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왼손은 성경을, 오른손은 교황청에서 발부한 신부 파문장을 구겨 버리고 있었다. 루터의 용기와 강한 믿음을 볼 수 있었다.
여섯째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에 도착했다. 대성당과 루터의 제자이면서, 칼빈의 스승이었던 마틴 부처가 목회했던 성토마스 교회를 찾았다. 스트라스부르크 종교개혁자 마틴부처의 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에 큰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칼빈이 프랑스 피난민들과 목회했던 부끌리어 교회(피난민교회, 방패교회), 금속 인쇄술(기)을 개발하여 유럽의 종교개혁에 촉매제 역할을 했던 구텐베르크 동상도 보았다. 구텐베르크가 새로 개발한 인쇄기로 인쇄한 성경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내용은 “빛이 있으라”(창1:3)는 성경구절이다.
일곱째날, 칼빈의 도시 제네바에 도착했다. 칼빈이 목회했던 제네바 성 베드로교회와 바스티용 공원에 세워진 4명의 종교개혁기념비, 존 낙스가 영국 피난민들을 위해 목회했던 칼빈 강당을 탐방했다. 그리고 취리히를 향해 떠났다. 잠시 후 종교개혁의 아버지 츠빙글리가 목회했던 그로스뮌스터 교회와 츠빙글리의 동상, 그리고 교회 벽에 새겨진 츠빙글리 이후 취리히 종교개혁을 이끈 하인리히 불링거의 석상을 보았다. 그후 프라우뮌스터 교회(당시 여성을 위한 수도원) 등을 방문했다. 종교개혁자 칼빈과 츠빙글리, 그리고 불링거는 영적 지도자였다.
여덟째날, 이른 아침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1518년 루터와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논쟁을 기념하여 대학 광장 땅 바닥에는 명판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한때 신구교 갈등을 대표하였지만 현재는 개신교 예배를 드리는 성령교회를 탐방했다. 성령교회는 1563년 칼빈의 사상을 따랐으며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을 작성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뿐만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대, 소요리 문답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마지막날, 유럽종교개혁 비전트립 39명은 보름스에 도착했다. 1521년 4월 17-18일, 마틴 루터가 출두했던 보름스 제국의회 건물은 없어지고, 현재는 공원으로 꾸며졌다. 그곳에는 당시 건물의 모습과 루터 신발 모양이 있었다. 그리고 100 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진 루터 종교개혁기념비를 찾았다. 그 기념동상에는 종교개혁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12명의 위대한 신앙 인물들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들을 진리를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오후에는 독일 루터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으며 영적 각성을 일으켰던 야코프 슈패너 목사가 목회했던 바울교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이 열렸던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을 방문했다. 그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떠났다.
유럽종교개혁 비전트립이 끝났다. 8박9일 동안 4개국, 17개 도시, 약 86여 곳의 유적지를 방문하는 강행군이었다. 참석한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은 매일 저녁 토론 주제를 정하여, 심도 깊은 토론을 이어갔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던 종교개혁자들, 진리가 진리 되는데 어떤 장애가 와도 굴하지 않고 인내하였던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용기에 숙연해졌다. 동시에 그러한 수고가 있었음에도, 작금의 유럽은 종교개혁의 본산지이지만, 교회가 침체되고, 세속화와 이슬람의 증가로 인해 오히려 선교지가 되었음을 실감케 했다.
한 참가자는 “종교개혁의 현장이 척박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교회를 위시해서 모든 교회들이 관광지로 변해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종교개혁이 우리의 사역에는 어떤 의미이며, 우리의 사역은 어떤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는지 점검해 보면 좋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참석자 모두는 종교개혁탐방을 통한 나의 결론은 무엇인가에 중점을 두었다. 하나님의 영광과 성령의 빗줄기가 다시 유럽 땅에 부어질 수 없을까! 종교개혁자들의 영성이 우리 모두에게 리바이벌될 수 없을까! 목회와 선교 사역현장에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영성이 적용되어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면서 각 나라 사역지를 향해 탑승했다. <취재 및 사진/ 김현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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