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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엔 젊은 목회자가 없나요?

[유크시론 210호]  이창배 발행인

이달을 여는 창: 2019-5월호 사설

잠시 잠깐 즐거움도, 여기가 좋다는 행복함도 어느 정도까지 족했다. 우리 일행은 눈에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의 경이로움을 뒤로한 채 아쉽지만 언제 다시 찾을 기약도 없이 머물렀던 자리를 떠나왔다. 그처럼 어디에도 영원히 머물 곳은 없다. 그러기에 이제는 보다 솔직한 심정으로 유럽 목회자 세미나의 전통과 미덕을 계승해 갈 더 젊고, 에너지가 왕성한 후진들이 더 많이 참여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신록이 푸르른 오월, 햇빛이 찬란한 삼일간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보낼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때맞춰 열린 유럽 목회자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독일과는 사뭇 다른 날씨와 기온이 경이롭기까지 한 스페인에서의 뜻깊은 만남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은혜요, 감사라고 말하고 싶다. 한여름 못지않을 만큼 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화창한 날씨 속에 돌아본 스페인의 풍광은 파란 하늘, 파란 바다, 만발한 꽃나무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과거의 영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중세 스페인 왕국의 흔적을 말라가와 세비야와 그라나다를 더듬어보면서 길재(吉再)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를 머리에 떠올렸다.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 찬란했던 스페인 왕국의 역사의 어제와 오늘의 경계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만큼이나 엄청난 세월의 간격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그 과거로 돌아보면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고, 다시 가톨릭의 회복이 이뤄지며 겹겹 싸인 그 역사의 흔적은 마치 말라가에서 만난 피카소의 초현실적 그림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상을 가르고 자르며, 곡선과 직선으로 나누는 분할 입체구성과 추상적인 표현을 떠올렸다. 유럽의 문화와 이슬람적인 묘한 어우러짐이 묻어나는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이 그대로 온몸에 전달이 된다.
사실은 26회 유럽 목회자세미나가 지난 4월 29일부터 스페인 남부 지중해에 위치한 해양도시 말라가에서 열렸기 때문에 여러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참석하게 되어 얻은 기회이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유일의 유럽 목회자들의 만남의 장이자, 목회자 세미나로 영적이며 지적인 재충전을 얻을 기회이고, 한 해 동안 각처의 목회 현장에서 쌓인 노고를 격려하고, 지친 심신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쉴 기회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도 가급적이라면 이 자리에 참석하고자 해왔다.

유럽 목회자 세미나의 오늘

이번에 열린 행사의 차수가 26회이다. 1993년에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회원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회원이 모두 60대를 훌쩍 넘긴 목회자들이고 보니 이번 세미나에 처음 온 어느 강사가 하는 말이 기억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 온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언 피 이해가 되질 않는 발언이지만, 그 이유를 들으며 한쪽 이해도 됐다.
사전에 세미나에 참석하는 이들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몰라서, 청중 대부분이 젊은 목회자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 강사인 자신이 그래도 나이가 제법 들었단 생각을 토대로 강의를 준비해 왔는데 막상 이 자리에 와보니 잘못됐다며 진땀을 흘렸다. 좌중을 둘러보니 오히려 강사인 자신이 가장 나이가 어린 것 같다는 푸념을 했다.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목회 선배들 앞에 감히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느냐며 어려워했다. 그냥 웃어넘기기엔 석연치 않았다.
이렇듯 적어도 유럽의 목회 현장에서 20년 넘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유럽이라는 타 문화권에서 터 잡고, 교회의 뿌리를 내리며, 힘겨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를 지켜낸 그 인고의 세월, 그 훈장이라도 되는 것인 양 허허 백발과 주름 굳게 팬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면면이고 보면 마음은 아직도 30년 전의 젊음, 그대로인데 세월을 어쩔 수 없다는 미덥지 않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하얀마을이라고 하는 그라나다에서 말라가로 오는 길에 위치한 프리힐리아나(Frigiliana)에 다녀온 생각이 난다. 온통 하얀색 칠을 한 아기자기한 집들로 구성된 산악마을이다. 바닷가도 아닌 산중턱에 하얀 집들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이유를 모르긴해도 너무도 아름답기에 찾는 사람도 많고, 보는 이의 감탄을 사기에도 충분했다.
거기에서 필자는 근 30여 년을 한결같이 유럽의 척박한 목회현장을 지켜온 이들, 지긋한 연륜이 몸에 밴 모습, 앳띠고 해맑은 손자손녀의 사진을 스마트폰의 배경사진에 넣고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꺼내보고 즐거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세대에 접어든 노회한 목회자들의 헌신과 열정에 대해 경의를 새삼 다시금 느꼈다.

유럽 목회자 세미나의 미래

지중해의 파란 바다가 탁 트여 저 멀리 수평선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네르하(Nerja), 유럽의 발코니라고 명명된 곳에 갔다. 해안을 향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야자수 가지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시간은 가고, 또 새로운 시간은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머리에 떠올렸다.
잠시 잠깐 즐거움도, 여기가 좋다는 행복함도 어느 정도까지 족했다. 우리 일행은 눈에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의 경이로움을 뒤로한 채 아쉽지만 언제 다시 찾을 기약도 없이 머물렀던 자리를 떠나왔다. 그처럼 어디에도 영원히 머물 곳은 없다. 그러기에 이제는 보다 솔직한 심정으로 유럽 목회자 세미나의 전통과 미덕을 계승해 갈 더 젊고, 에너지가 왕성한 후진들이 더 많이 참여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실은 눈 씻고 찾아보아도 젊은 목회자가 보이질 않는다는 농담 아닌 농담 속에 그런 분위기가 배어나고 있다. 실제로 또 다른 어느 강사의 물음에서 “유럽에 젊은 목회자들은 없나요? 여기에 오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나요?” 그 뉘앙스가 예사롭지 않다.
오랜 세월 만남이 익숙해진 이들에겐 마치 동창회 분위기랄까? 서로 다시 만나는 재회의 기쁨과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는 정겨운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순수함으로 가득 찬 이런 목회자 모임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다. 그래서 이 모임에는 꼭 온다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가 옳을까? 참석자들 가운데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 한 사람, 두 사람, 늘 얼굴을 보이던 회원이 빠지게 되면 대략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큼 건강 상태가 하루하루 다른 게 현실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젊은 사역자들이 참여해서 영적인 재충전과 쉼과 교제를 함께 나누도록 그들이 어울릴만한 분위기를 조성해 가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할 수 있다면 유럽 한인 디아스포라 목회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회원들의 심기일전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이제껏 임원진이 눈물겹게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땀과 수고로 아름답게 쌓아올린 전통과 명성을 그대로 청출어람의 정신으로 대를 물려가는 미덕이 역사로 남게 되는 그 날도 곧 오리라. 이번 스페인을 둘러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세대교체와 같은 아름다운 날을 기대해 본다.

이달의 말씀 | 딤전4:11-13
11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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