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유크시론 > 우리가 정본청원(正本淸源)의 길로 돌아가자
유크시론

우리가 정본청원(正本淸源)의 길로 돌아가자

[유크시론 160호] 발행인 이창배 목사

선교의 원리대로 보자면, 복음이 있는 곳에서 복음이 없는 곳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이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로 보내짐을 받은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분명 먼저 우리가 ‘정본청원’(正本淸源)의 길로 돌아가자. 그 길이 곧 열쇄이리라.

새해라는 말은 엄밀히 따져보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365일의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를 말한다. 합법적으로 인정이 된 이 날수 동안에 펼쳐질 일들은 과연 어떤 일들일까? 그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언제나 최대의 적인가 보다. 뭔가 조금이라도 앞을 내다볼 줄 알면-아니, 사람은 누구도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그래서 그 좀 안다고 하는 것은 곧잘 신통력에 비유되곤 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같았다. 결국 잔뜩 기대심리만 부풀렸다가 바람빠진 풍선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볼품없이 쭈그러들고마는 일이 왕왕 세상에 있어 온 터이다. 그래서 늘 회자되어온 말들의 끝에는 이러한 수식어가 따른다. 설,설,설..

그 무수했던 설들 때문에 새삼 빛을 보게된 말이 있다. 이름하여 사자성어란 것인데, 지난해 12월 8∼17일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를 설문한 결과 265명(36.6%)이 ‘정본청원’(正本淸源)을 선택했다고 4일 교수신문은 밝혔다. 그 뜻을 풀이하면, 근본을 바로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으로 ‘한서’(漢書) ‘형법지’(刑法志)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과)는 정본청원을 추천한 이유에 대해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했고, 이 사자성어를 고른 윤민중 충남대 명예교수(화학과)는 “2014년에 있었던 참사와 부정부패 등은 원칙과 법을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며 “새해에는 기본을 세우고 원칙에 충실한 국가, 사회를 희망한다”는 뜻에서 선택했다고 한다.

그만큼 지난해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사건·사고를 조명해 보면서 관행이란 인습으로 법의 근본정신이 사라지고 말았음을 새삼 발견한 까닭이었으리라 싶다. 그래서 모두가 이 말뜻처럼 고치고, 바로 잡고, 바로 세워, 윗물이 깨끗케 된다면 그 보다 다행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정본청원(正本淸源)의 원형은 무엇인가?

오늘 바로 본지의 편집 마감일이자, 마무리 중에 프랑스 언론사에 일어난 테러로 프랑스 자유신문 “Charlie Hebdo” 편집진 9명이 이슬람 테러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해 충격적이다.

이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린 채희석 목사(파리 모두제자교회)에 따르면, 이에 프랑스 모든 국민이 거국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이는 단순한 테러이기 전에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의 근본에 도전하는 전쟁 선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풍자만화로, 논평과 기사로 그 시대를 고발한 프랑스 언론인들, 언론 억압, 표현의 자유 탄압에 모든 것을 걸고 저항하는 프랑스 시민들, 이들은 오늘 모두 “내가 샤를리이다(Je suis Charlie)”라고 소리 지르면서 국민적 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일 목요일 8일은 “사를리 에브도” 기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국가적 애도의 날로 정하였다고 알려왔다.

새해들어 첫 충격적인 테러소식일 듯  싶다. 이렇듯 미래는 전혀 예측 불가항력적이다. 하지만 이 파장은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관련해 종교적 극단주의의 전형이라고 할만한 이슬람국가(IS)와 피치못할 전쟁의 상황이 예견되기도 한다. 이 전쟁은 영토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사람들과의 분리와 대결이고, 무차별적인 테러리즘으로 비화될 것이란 우울한 소식이다. 그러나 바로 종교근본주의 사상적 뿌리에는 “의무적인 신조체계”와 “무결성, 진리의 배타적 독점”을 고수하거나 주장과 때로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살인, 폭력, 전쟁 등 피의 보복까지도 당연시하는 그들만의 신학이 자리하고 있음이다. 이야말로 ‘정본청원’의 원형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해 보이게 됐다는 점이다.

정본청원(正本淸源)으로 돌아가자

“독일에서 기독교의 마지막 시대, 최후가 시작되었다.” 라고 시작되는 충격적인 신문의 타이틀은 다름 아닌 독일의 저명한 역사가이며 저녈리스트인 마르쿠스 귄터가 지난 12월말에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 주일판(2014년 12월 29일) 신문에서 기고한 기사의 제목이다.

귄터는 많은 부분에서 오늘의 교회는 동독의 마지막 때의 모습과 닮아 있다. 곧 “(외관상) 견고하게 보여지지만, 붕괴의 직전에 서 있는 모습이다.”많은 목사들과 주교들은 현상황에 대해 꽃이 만발하고 있는 대지로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황페한 곳, 사막과 같은 곳이 되었다라고 묘사하면서 교희의 현재는 화려한 외관과 견고한 구조로 인해 기만 속에서 지탱되고 있을 뿐이라고 표현했다고 이성춘 목사(프랑크푸르트 국제교회)가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

여기에서 귄터의 표현으로는 “통계적으로는 독일 사람의 3분의 2가 교회에 등록된 교인들 임에도 불구하고, 그 3분의 1은 예수의 죽음에서의 부활을 믿지 않고 있다. 또한 많은 독일사람들은 최후의 심판보다는 외계인 비행체를 더 믿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믿음을 가진 자들 중에서 기독교 복음의 중심 교리들을 대대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60% 이상의 기독교인들은 내세적인 영원한 삶을 믿지 않는다는 것인데, 과연 얼마나 소수의 교회 멤버들만이 믿음에 따라 살고 있는지를 조사한 카톨릭 교회의 결과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왜 카톨릭 교인이 되었느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8%는 인생에 중요한 사건들, 곧 결혼식, 세례 등과 같은 일들을 교회에서 축하하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했으며, 두번째로 많이 응답한 근거는 집안에서 카톨릭 교인이 되는 것이 전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귄터의 평가에 의하면, 이러한 형태로는 교회에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보여진다.

하지만 이런 소식은 우리에겐 기회이다. 이 땅으로 디아스포라로 보낸 것이 그저 삶의 자리만 다독거리고 말 일이라면 굳이 주께서 여기로 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곳에 디아스포라로 교회를 세우게 한 그 뜻이 설명이 되지를 않는다.
선교의 원리대로 보자면, 복음이 있는 곳에서 복음이 없는 곳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이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로 보내짐을 받은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분명 먼저 우리가 ‘정본청원’(正本淸源)의 길로 돌아가자. 그 길이 곧 열쇄이리라.

이달의 말씀 : 에스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댓글 남기기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Previous Next
Close
Test Caption
Test Description goe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