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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오직 은혜 일 뿐, 작은 간증으로 고백한다

[유크시론 179호]  이창배 발행인

창간 15주년에 부쳐서…

사도 바울에게 멈출 수 없는 용기의 근원이 되었듯이,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그분께서 부르시고, 이끄시며, 가는 길이, 그뜻에 합당하다면, 그 어떤 유라굴로 광풍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그대로 믿는다.

정말로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꾼 것만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물론 세익스피어의 원작처럼 요정들의 세계와 연결되는 판타지, 달콤한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그저 이러한 일이 내게서 일어났다는 그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나고보니 한편의 긴 꿈을 꾼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글로 다 쓰자면 길다. 그런데 한편의 문학으로 표현을 하자면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란 시를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짧지만 함축적인 이미지가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사실 지난 1년 동안의 고민은 컸다. 지난해 창간 14주년을 맞이해 쓴 유크시론“복음 정론직필(正論直筆)이 생명”이란 제목의 글에서 밝혔듯, “분명히 다음 15주년을 맞이하기까지 앞으로 1년 간은 본지에 있어서 분수령을 맞이한다는 각오로 …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또한 이제부터의 앞날을 겸손히 그분께 맡겨드리는 심령으로 진정 하나님만이 유크의 주인 되심을 고백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 주신 말씀이 사도행전 27:23-25절이었다.“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분명한 사명, 확고한 부르심에 대한 믿음이 사도 바울에게 멈출 수 없는 용기의 근원이 되었듯이,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그분께서 부르시고, 이끄시며, 가는 길이, 그뜻에 합당하다면, 그 어떤 유라굴로 광풍이 몰아친다 할지라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그대로 믿는다. 이 일은 그 목적지까지 분명히 당도하게 될 것이며, 그날까지 주님의 손에 붙잡힌 바 담대함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선포했다.

1년 전, 선포된 약속 그리고 응답

이렇게 1년 전에 느닷없이 꺼낸 유크 창간 15년 예고는 그 정점이 바울 사도가 첫 유럽 땅에 발을 딛게 된 항구 네압볼리와 첫 복음을 전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 교회를 시작하게 된 빌립보였다.
지난 8월 17일, 땅속에 묻혔던 도시의 흔적이 발굴이 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빌립보 유적자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안내를 받으며 간 장소가 바로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부리던 귀신을 좇아낸 후 그 주인에게 고소를 당해 매를 맞고 온 몸에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두 손과 두 발에는 쇠고랑이 채워지고, 기둥에 묶여서 캄캄한 지하감옥에 갇히게 된 그 장소, 감옥이었다.
사도행전 16장의 말씀들이 머리를 스쳐가는데, 순간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이 온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을 느꼈다. 딱히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은혜의 전류였다.
마치 내일 해가 뜨면 사형에라도 처해 질 듯 불안하기 짝이없는 밤, 빌립보 지역에 누구 하나 그들을 위해 변호해 줄 사람도 없는 막막 하기 짝이 없을 상황이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고 한 밤중을 맞도록 찬송을 소리높여 불렀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기쁨과 감사의 빛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는데,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신뢰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러자 그렇게 견고하던 옥터가 진동을 하며, 몸을 칭칭 감아맨 쇠사슬이 두부가 잘라지듯 툭툭 끊어지고 육중한 자물쇠로 채워졌을 옥 문이 저절로 열려지며, 그 감옥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절정을 맞는다.
그런데 거기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놀랍게도 내 모습이아니던가? 마치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듯, 나의 연약함 모두가, 나를 옥죄고 억누른 모든 육체의 고통이 그 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할렐루야.  이 기가막힌 타이밍을 무엇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마치 연출된 시나리오라도 이처럼 극적일 수 있을까? 그렇게 맞이한 유크 창간 15주년, 그 은총을 고백한다.

15주년의 은총, 오직 은혜일 뿐

누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만한 타이밍도 아니다. 그럴 수도 없었다. 왜, 유크 창간 15주년 행사를 부득불 멀리, 그리고 한창 성수기로 최고조로 비싼 지역에서 엄청난 비용부담을 지불하면서 까지 해야만 하는지 누구에게나 쉽사리 납득이 될 만한 일도 아니다. 단, 이유가 있다면 한 가지였다. 그 당시 내가 처한 질병에 의한 고통의 상황,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데살로니키 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뤄졌다.
이유라지만 사실 내게는 어디가 어떻게 탈이 난 것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고, 병리적인 증상으로는 이제 얼마를 더 살 수 있을까 두려움이 몰려오던 7월 중순에 들어서며 급작스레 한국을 나가야 하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행여나 모를 일이지만 무언가 정리도 필요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교회에 3주간의 안식달을 요청했고, 일사천리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지인의 도움으로 연결되어져 급기야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이 됐고, 주치의의 진료를, 각종 검사를 겸한 수술까지 무려 보름을 넘겨가며 받았다. 이로 인해 정해진 출국일자를 넘기게 되어 8월 10일자 티켓을 이틀을 연장해 12일로 조정한 것이 내게는 마지노 선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15일부터는 유크 창간 15주년 행사가 그리스에서 진행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더 이상의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조금의 여유도 없이 11일 오후에 퇴원을 하고 다음날 오전 독일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니고, 이리저리 잔뜩 검사란 검사는 거반 받았지만 뚜렷한 병명도, 그 원인도 분명한 것이 없이, 이대로 독일로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연하게 단지 의사가 처방해 준 한달치 가량의 약만 받아 온 것이 전부가 아닌가?
하지만 거기에서 희망을 보았다. 나의 이 질병이 주님의 손에 달렸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주님의 뜻이고, 그 분께 맡기고 사는 순간까지 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 나의 몫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 유크는 15주년 기념호를 여러 동역자들의 사랑과 기도, 수없는 격려와 박수 응원을 받으며 발행케 된다. 오직 은혜 일 뿐이다.

이달의 말씀 ㅣ 빌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나는 아직 내가 잡은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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