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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 최초의-과나바라(Guanabara) 신앙고백서

[교회유적기행] 최용준 목사/ 한동대학교 교수 – <4회>

과나바라(Guanabara) 신앙고백이란?

이 신앙고백서는 1558년 신대륙에서 최초로 작성된 신앙고백서로 위그노 평신도들이었던 쟝 뒤 부르들(Jean du Bourdel), 마띠유 베르뇌일(Matthieu Verneuil), 삐에르 부르동(Pierre Bourdon) 그리고 앙드레 라 폰(André la Fon) 네 명에 의해 12시간이라는 매우 짧은 시간에 완성되었습니다…

얼마 전 저는 브라질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의 교회들과 역사를 돌아보면서 새롭고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정착한 개신교도들은 미국 청교도가 아니라 브라질에 온 프랑스 개신교도들인 위그노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청교도보다 약 백 년 전에 이미 이 신대륙에 정착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16세기 프랑스에 교회개혁 운동이 일어나면서 위그노의 세력이 확산되자 로마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는 이들을 더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위그노들은 고국을 떠나 새로운 땅에 그들만의 신앙공동체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마침내 1555년 7월 16일, 빌르가뇽(Nicolas Durand de Villegagnon)의 인솔하에 600명이 두 배에 나눠 타고 라 로셸(La Rochelle)을 출발하여 4개월간 목숨을 건 항해 끝에 11월 10일 지금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가 있는 과나바라 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라 로셸 및 제네바 출신의 위그노들이었으나 가톨릭 선원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세리기뻬(Serigipe)라는 작은 섬에 정착하였고 이 섬은 나중에 빌르가뇽 섬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 섬에서 그들은 위그노의 지도자요 후원자인 꼴리니(Gaspard de Coligny)의 이름을 따 그 지역에 ‘포트 꼴리니’(Fort Coligny)를 건설하게 됩니다. (사진 3) 지금 이 섬에는 브라질 해군학교가 있습니다. (사진 1)
빌르가뇽은 이곳을 거점으로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을 계획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1556년 더 많은 사람들을 보내줄 것을 국왕 앙리 2세(Henry II)에게 요구하였고 제네바의 깔뱅에게 목회자 파송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앙리 2세는 세 척의 배와 함께 300명의 사람들을 추가로 보내주었고 깔뱅은 삐에르 리시에(Pierre Richier) 목사를 포함한 14명의 선교단을 조직하여 필리뻬 드 꼬르귀여레이(Philippe de Corguilleray)의 지도하에 포트 꼴리니로 파송하게 됩니다. 이들은 6개월에 걸친 여행과 항해 끝에 마침내 1557년 3월 10일 과나바라 만에 도착하여 개신교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빌르가뇽은 신앙적 입장이 애매한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톨릭신자들 및 빌르가뇽과 칼빈주의자들 사이에 신학적인 갈등(특히 성만찬교리에 대해)이 일어나자 칼빈주의자들중 4명이 잡혀 신앙고백서를 쓰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 결과 바로 “과나바라 신앙고백서”라는 귀한 고백서가 태어나게 됩니다.
이 신앙고백서는 1558년 신대륙에서 최초로 작성된 신앙고백서로 위그노 평신도들이었던 쟝 뒤 부르들(Jean du Bourdel), 마띠유 베르뇌일(Matthieu Verneuil), 삐에르 부르동(Pierre Bourdon) 그리고 앙드레 라 폰(André la Fon) 네 명에 의해 12시간이라는 매우 짧은 시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서는 17개조항으로 나눠지며 라틴어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나중에 나온 신앙고백서만큼이나 논리정연하고 나아가 신학적인 용어 사용뿐만 아니라 중간에 초대교부들까지 인용하는 것을 보면 이 평신도들의 신학적인 수준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네 명의 위그노들은 빌르가뇽에 의해 체포되었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 후 리시에 목사를 비롯한 제네바 선교단은 7개월 정도 머물다가 10월 말에 추방당하고 맙니다. 결국 포트 꼴리니는 나중에 포르투갈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포트 꼴리니를 향한 항해 여정과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당시 선교단의 일원이었던 평신도 구두수선공 장 드 레리(Jean de Léry)가 “아메리카라고도 불린 브라질 땅에서의 여행 역사(l’Histoire d’un voyage faict en la terre du Brésil, autrement dite Amérique)”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쓰게 되어(1578년) 당시 상황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진 2) 그에 의하면 당시 브라질이 아메리카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돌아온 리시에는 라 로셸에 개혁교회 목회자가 되었고 라 로셸은 한동안 프랑스 개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이 역사는 프랑스의 역사소설가인 쟝 크리스토프 루펭(Jean-Christophe Rufin)에 의해 “붉은 브라질(Rouge Brésil)”이라는 제목으로 소설화되었으며 그 후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우리는 이 네 명의 평신도들이 남긴 귀한 신앙고백을 더욱 귀하게 여기며 그들의 순교적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히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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