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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16세기, 네덜란드의 17세기, 영국의 18세기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90회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16세기에 스페인이 종교정책과 식민지 정책을 통해 강자가 되었다면, 네덜란드는 17세기 세계 무역을 주도함으로 해양강국이 되었다. 그리고 영국은 18세기 국토확장과 식민지 정책을 바탕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의 탐험가인 월터 롤리 경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고 한 말과 같이 스페인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은 바다와 식민지 정책을 통해 세계를 지배했다.

종교와 식민지 정책으로 가장 큰 권력을 소유한 스페인

스페인의 근대 역사는 중세기를 마감하는 1469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가 정략적으로 결혼함으로 기틀을 닦게 된다. 1492년 스페인에서 세계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스페인이 남부 그라나다를 함락시킴으로 781년 동안 이슬람의 통치를 끝내고 국토를 통일하게 된다. 같은 해 10월 국왕부처의 후원을 받아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함께 “식민지 개척시대”를 열어 남미의 마야와 잉카 문명을 접수했다. 스페인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것은 신성 로마제국황제, 카를 5세(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 재위 1516-1556)치세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치세에 스페인은 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과 필리핀 제도까지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함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뒤를 이어 펠리페 2세(제위 1556-1598)가 42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스페인을 최전성기 시대로 이끌었다. 그는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의 국왕으로 1580년부터는 펠리페 1세로서 포르투갈의 국왕까지 겸하게 됨으로 세계 최대 두 해양국을 통합하게 되었다. 거기에다 그는 메리 1세의 배우자로서, 잉글랜드 또한 공동으로 통치하는 국왕이기도 했다. 1556년 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부왕 카를로스 1세로부터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모든 영토까지 물려받았다. 그의 치세기간 스페인은 남미와 중미, 멕시코, 지금의 포르투갈, 베네룩스 3국 등을 지배함으로 황금시대를 열었다. 스페인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바탕 위에서 식민지 정책을 시도함으로 가장 큰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1547-1616)는 스페인 황금시기에 태어나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격파당한 뒤 몰락하기까지 생존한 증인으로, 레판토 해전에 출전하여 왼쪽 팔을 잃은 전쟁 영웅이기도 하다. 그는 스페인의 황금시대와 몰락을 “돈키호테”라는 작품을 통해 “이상과 현실세계의 이중성”을 풍자적으로 담아냈다. 그는 스페인이 한 세기 동안 전성기를 누렸지만 쉽게 몰락한 것은 바로 사치와 낭비 그리고 무능으로 표현했다. 스페인은 세르반테스가 예견한 것과 같이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서서히 침몰하는데는 약 400년이 걸렸다. 침몰의 속도가 너무 느렸던것이 결국 침몰의 원인이 된 셈이다.

무역과 식민지 정책으로 가장 큰 바다를 지배하게 된 네덜란드

미국의 사회학자인 윌러스틴(1930-)에 의하면 “17세기 네덜란드, 18세기 영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17세기는 흔히 네덜란드의 세기라고 불린다. 우선 네덜란드의 패권은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에 형성되었다. 16세기 스페인의 힘은 다른 모든 유럽 국가들을 크게 앞질렀다. 그러나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스웨덴 왕국 등 유럽의 권력투쟁의 상황은 네덜란드가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배경이 되었다. 네덜란드가 당시 막강한 스페인에 대항하여 80년간 전쟁을 치른 후 1648년에 독립하면서 공화제를 채택하므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가장 폭넓게 보장했다. 그 결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이 네덜란드를 찾았고, 프랑스의 위그노들과 영국의 청교도들이 이주하면서 인재와 자본이 축척되었다. 데카르트가 숨 막히는 구교의 영향아래 있는 프랑스를 떠나 자유롭게 학문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나 볼테르가 성직자들의 위협을 피해 도망간 곳이 바로 네덜란드였다.
무엇보다 네덜란드는 1602년 설립된 동인도 회사를 통해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므로 무려 2세기 동안 세계 무역을 장악하였다. 또한 1621년에는 서인도 회사를 통해 아프리카에서는 노예들을 미주와 유럽으로, 카리브 해에서는 금과 은을 무역하면서 북미 지역과 카리브 지역에 많은 식민지들을 건설하게 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세계 속에서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해상을 통한 무역거래가 밑바탕이 되었다. 1634년 네덜란드 상선의 숫자가 2만 4천여 대로 이는, 당시 유럽 전체 상선의 3/4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1670년에 네덜란드 선박의 총 톤수는 영국의 세배로,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에스파냐, 독일 연방의 선박 총 톤수를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지금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17세기 황금기를 화폭에 담았던 렘브란트의 작품을 추앙하며, 옛 영광을 추억하고 있다. 영어에서 네덜란드를 뜻하는 “더치”(Dutch)란 말은 네덜란드의 상술과 깊은 관계가 있다. “각자 계산하다.”는 뜻의 관용어가 돼버린 “더치페이”(Dutch pay)는 17세기 네덜란드가 세계 무역에서 주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일본이 발 빠르게 “더치페이”를 “뿜빠이”(分配)라는 말로 경제에 적용시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국토 확장과 식민정책으로 가장 큰 영토를 확보한 영국

16세기 초 영국은 유럽의 조그마한 섬나라에 불과했다. 국민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했고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영국의 현실과 미래는 암울했다. 하지만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까지 불과 50여 년 만에 영국은 유럽의 최강자가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엘리자베스 1세로, 지금도 영국 사람들은 그녀를 영국의 기반을 마련한 군주로 칭송한다. 종교문제로 늘 어지럽고, 바닥난 국고에 프랑스의 칼레마저 잃어 자신감을 상실한 유럽의 2등 국가를 물려받은 엘리자베스 1세는 당시 유럽의 강대국인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제치고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내 비록 사자는 아닐지라도 사자의 자손이며 사자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라고 외치며 유럽의 강대국들을 떨게 한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을 황금시대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스페인과의 해상 전쟁 승리가 결정적이었다. 동시에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무너뜨린 영국은 인도에 동인도 회사를 통해 아시아로 진출했고,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함으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 열강과의 식민지 확보 싸움에서 절대 우위를 점한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설립, 인도를 포함 여러 대륙의 노른자위를 차례로 차지했다. 영국은 국내 산업혁명으로 공업화에 성공하여 막대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20세기 초반, 빅토리아여왕 재임(1837-1901)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였다. 한 때에 대영제국은 전 세계 영토와 인구의 1/4 이상을 지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은 1, 2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 대공황으로 치명타를 입게 되었다. 2차 대전 중 영국은 상선의 절반과 해외투자의 1/4인을 상실하였으며, 미국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채무까지 지게 되었다. 아시아지역, 호주, 캐나다가 영연방에서 독립하게 됨으로써 해외의 경제기반을 대부분 상실하게 되었다. 특히 홍콩이 중국에 반환됨으로써 영국의 식민지 경영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홍콩반환 뒤에도 영국 식민지는 전 세계에 13개 정도가 남았지만, 대부분 작은 섬들로 실익이 별로 없는 곳들이다. 반면 요충지라고 생각되는 스페인 남단의 지브롤터와 아르헨티나 동쪽 포클랜드제도는 스페인과 아르헨티나가 각각 영유권을 주장, 국제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근대 식민지 정책은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식민지에 대한 탐욕은 희귀한 자원획득과 함께 특히 노예확보를 위해 식을 줄 몰랐다. 산업혁명 이후는 자원 확보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고, 동시에 생산된 제품을 판매할 판매처가 필요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가 니얼 퍼거슨은 영국 식민주의가 “자유시장과 법질서, 투자보호 그리고 세계 약 1/4 지역에 대해 부패를 방지한 결과를 가져왔다.”라고 식민주의 정책을 옹호했지만, 아일랜드 작가 –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는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필자: 김학우/
2070czmk@daum.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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