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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수호 성자 클라우스 형제

[교회유적기행] 최용준 목사/ 한동대학교 교수 – <3회>

니클라우스 폰 플뤼에(Niklaus von Flüe: 1417–1487)

1417년 운터발덴(Unterwalden)이라는 지역에서 부유한 농부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1세에 입대한 후 스위스연방에 반발했던 취리히를 상대로 싸운 라가즈(Ragaz) 전투(1446)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습니다…

얼마 전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특별히 의심 많던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내용에 관해 리서치 하던 중, 동일한 제목으로 유명한 기도문을 남긴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스위스 및 세계 많은 나라에서 영적으로 매우 존경 받는 클라우스 형제입니다. (그림 1)
클라우스 형제의 본명은 니클라우스 폰 플뤼에(Niklaus von Flüe: 1417–1487)입니다. 1417년 운터발덴(Unterwalden)이라는 지역에서 부유한 농부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1세에 입대한 후 스위스연방에 반발했던 취리히를 상대로 싸운 라가즈(Ragaz) 전투(1446)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습니다. 나중에는 투르가우(Thurgau) 전쟁(1460)에도 참전하여 오스트리아의 지기스문트 대공(Archduke Sigismund)과도 싸워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승전 후에 그의 조언으로 오스트리아의 성 카타리넨탈 도미니칸 수도원(Dominican convent St. Katharinental)은 파괴되지 않았으며 적군들에게도 최소한의 상처만 주었다고 합니다. 30세에 그는 도로테아 베이스(Dorothea Wyss)와 결혼하여 작셀른(Sachseln) 위의 언덕인 플뤼엘리(Flüeli)에서 농사를 지으며 슬하에 5남 5녀를 두었습니다. 37세까지 군대에도 복무하여 대위까지 진급했으며 그 후 1459년에는 그 지역의 판사로도 일하면서 각종 지역 분쟁의 조정자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말이 백합을 먹는 신비한 환상을 본 후 그는 이것을 세속적인 삶이 영적인 삶을 삼킨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남은 생애를 온전히 명상적 수도생활에 헌신하기로 결단합니다. 1467년, 50세에 그는 아내의 동의 하에 가족을 떠나 란프트(Ranft)라는 골짜기에서 은둔수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19년간 성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생존하면서 주님과의 깊은 교제와 평화를 경험하였습니다. (www.bruderklaus.com)
그의 영적인 깊이가 더해 가고 지혜와 경건에 대한 명성이 알려지면서 유럽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조언을 받기 위해 찾아왔고 그 때부터 그는 ‘살아있는 성자’로 인정받으며 ‘클라우스 형제’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지도 못했고 세상 경험도 제한적이었지만 그는 지금도 개신교 및 가톨릭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있으며 나아가 스위스의 국가 통합에도 공헌했습니다. 가령 1481년 스탠스 조약(Treaty of Stans)을 통해 스위스 연방이 평화를 이루는데 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습니다.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교회적인 논쟁에서도 그는 피스메이커로 섬겼습니다. 그가 1487년 3월 21일 소천하자 그를 기념한 교회(www.pfarrei-sachseln.ch)가 세워져 그의 유해를 안치하였고 1947년에는 교황청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며 기념교회 옆에 그를 기념한 박물관도 건립되었습니다. (www.museumbruderklaus.ch)
그가 받은 영적인 비전과 통찰력 중 유명한 것은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인데 그 중심으로 모이는 세 개의 칼이 두 눈과 입에 닿아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세 개는 반대 방향으로 퍼져 나가고 있어 솔로몬의 인장과 같은 6각형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림 2) 이와 연결된 다른 이미지에서는 6가지 그림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가 ‘나의 책’이라고 부를 정도로 항상 묵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밑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수태고지, 예수님의 탄생, 천지창조, 수난, 십자가에 죽으심 그리고 성찬이며 네 구석에 있는 그림은 4복음서 기자들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그림은 당시 배우지 못한 농부들에게 개인적 경건을 훈련하는 좋은 교육적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림 3)
지난 2017년은 Reformation 500주년 기념으로 많은 행사가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www.refo500.com) 스위스에서는 이 분의 탄생 600주년을 기념한 특별한 행사가 열렸음을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www.mehr-ranft.ch) 나아가 스위스 출신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인 피터 춤토어(Peter Zumthor)가 설계한 기념 채플이 독일 메셰르니히(Mechernich)의 바헌도르프(Wachendorf)에 건립되었습니다. (www.feldkapelle.de 사진 4)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요 20:28) 평화와 화해의 사도로 살았던 이 클라우스 형제의 깊은 영성을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분의 기도문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Mein Herr und mein Gott, nimm alles von mir, was mich hindert zu dir.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 방해가 되는 나의 모든 것을 가져 가소서.
Mein Herr und mein Gott, gib alles mir, was mich führet zu dir.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 이끄는 모든 것을 저에게 주소서.
Mein Herr und mein Gott, nimm mich mir und gib mich ganz zu eigen dir.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저를 취하셔서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삼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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