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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와 벤 존슨”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베토벤과 브람스”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 91회 |

고대로부터 각 분야에 아버지라 불린 세 사람… |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상황에 노출된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 사회 전반에 걸쳐 경쟁이 존재한다. 걸출한 영웅들, 세기의 작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비록 패하더라도 경쟁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고, 실패가 더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경쟁을 통해 도약하고, 경쟁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꾼 영웅들을 만나보고자 한다.

경쟁자에서 스승과 제자가 된,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 윌리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가 남긴 작품과 유산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그의 작품(극작품 37편, 소네트 154편, 장시 4편 등)대부분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고, 전 세계 학생들이 그가 쓴 작품의 절반 이상을 배우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영향력은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후대 걸출한 작가들, 디킨스와 괴테에서 차이콥스키, 베르디, 브람스까지, 그리고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 “셰익스피어가 곧 연극이다.”라고 했고, 괴테는 “나는 셰익스피어의 소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토머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 없이는 살 수가 없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를 말할 때 어김없이 벤 존슨(Ben Jonson, 1572-1637)을 빠트리지 않는다. 존슨은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으로 희곡뿐 아니라 시와 산문, 그리고 궁중 가면극을 썼으며 그리스와 라틴고전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영국 연극의 황금기를 살았던 존슨은 셰익스피어와는 달리 신고전주의 양식에 입각한 작품들을 많이 썼다. 셰익스피어보다 8살 아래로,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벤 존슨은 자본주의 대도시로 급성장하던 런던의 사회상을 풍자하는 “도시 희극”으로 새 바람을 일으켰다. 존슨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볼포네, 또는 여우”는 도시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기꾼, 권력, 성 문제 등을 실감나게 극화함으로 명성이 높았다. 흥미로운 것은 생존 당시만 해도 존슨의 명성이 셰익스피어보다 높았다는 점이다. 한편 존슨은 셰익스피어와 경쟁자이기도 했지만 그와 가깝게 지냈으며, 셰익스피어는 존슨의 대표작 “기질 속의 인간” 등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존슨은 셰익스피어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친애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스승을 추모하며”라고 추도 시를 남겼다. 그는 송시에서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의 작가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작가였다.”라고 애정을 토로하며 자신의 스승이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다만 4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는 동안 셰익스피어가 세상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신화화되는 동안 존슨은 그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제임스 1세의 연금을 받은 사실상 영국의 희극의 선구자이자 최초의 계관시인이었지만 결국 천재에 의해 2인자의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존슨은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경쟁자였음을 숨기지 않았다. “역경에 부딪쳐 고난을 극복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참된 능력을 알지 못한다.”

경쟁자에서 친구가 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Amadeus Mozart, 1756-1791)와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는 “세기의 라이벌”로 알려져 있다. 후대의 사람들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와 쌍벽을 이뤘으나 모차르트의 벽을 넘지 못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2인자”로 부르고 있다. 살리에리는 이탈리아인이지만 비엔나에서 거의 60년 살면서 모차르트와 비엔나에서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 살리에리는 당시 비엔나 궁중음악가로 고전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교회음악부터 오페라까지 모든 장르를 작곡할 만큼 다재다능했다. 또한 그에게는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음악가들, 베토벤과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궁중 악장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모차르트의 명성에 가려 오늘날 대중들에게는 그의 음악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1799-1837)이 당대에 유명한 두 사람의 관계를 임의적으로 각본을 설정하여 무대에 올렸다. 그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에서 천재 음악가와 평범한 음악가를 대비시키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하여 독살한 것으로 그려냈다. 그 후 러시아의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는 한술 더 떠 이 사실을 오페라를 통해 재현함으로 이 이야기가 사실처럼 되어 버렸다. 세월이 한참 지나 유명한 역사 소설가 피터 쉐퍼와 밀로스 포만 감독이 만든 영화 “아마데우스”(1984)에서 살리에리가 질투에 불탄 나머지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처럼 그려내 근거 없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영화 “아마데우스”는 작품상을 비롯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런 가설과 추측에도 불구하고 독일 출신의 음악학자 티모 유코 헤르만은 푸시킨이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빈에서 활동하던 시절 살리에리가 작곡을, 모차르트는 피아노 연주를 맡는 식으로 공동 작업을 하곤 했다.”라고 주장하며, 두 사람은 경쟁자였지만 협력자이며 친구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둘은 한 무대에서 오페라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있었다. 1786년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궁전에서 당시 황제 요제프 2세의 초청을 받은 모차르트는 단막 오페라 “극장 흥행사”를, 같은 무대에서 살리에리는 “음악이 먼저, 말은 나중에”를 상연했다. 갈채 받은 쪽은 살리에리였다. 그 후 1788년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무대에 올려 공연을 했다. 또한 최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함께 작곡한 작품 “오필리아의 회복된 건강을 위하여”란 성악곡이 새롭게 발견됨으로 두 사람은 앙숙이 아닌 동료였음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었다.

경쟁자에서 롤 모델이 된, 베토벤과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일생동안 큰 인기를 누렸으며 그의 음악은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브람스는 관현악곡 피아노곡 실내악 등 여러 장르의 곡을 작곡하며 자신의 곡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요한 세바스티안과 바흐 그리고 베토벤(Beethoven, 1770-1827)과 “3B”로 불리며, 음악사 최초로 교향곡에 중세와 바로크 음악을 접목하는 놀라운 시도를 한 음악가로 극찬을 받고 있다. 그러나 브람스를 항상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힌 거인이 있었다. 브람스는 베토벤이 죽은 지 6년 후인 1883년에 태어나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에 압도되어 그를 존경하고 실제로 베토벤을 닮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브람스는 베토벤을 자신의 경쟁자로 생각한 반면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다. 브람스는 자신의 롤 모델인 베토벤의 작품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교향곡을 계속해서 쓰고 지우느라 43살이 돼서야 첫 곡인 “제 1교향곡”을 발표할 수 있었다. 1876년 발표된 제 1 교향곡은 무려 20년에 걸쳐 완성됐을 정도였다. 또 교향곡으로는 베토벤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합창곡을 작곡하게 됐고, 이것이 그의 대표작 “독일 레퀴엠”이 되었다. 브람스는 당시 낭만주의의 대표 주자인 슈만의 제자였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고전파 음악을 고집했다. 두 사람이 비슷한 길을 걸은 것같이, 두 사람의 곡 또한 어딘가 닮은 데가 있다.
브람스는 베토벤보다 적은 곡을 남겼으나 모든 곡들이 명곡으로 남았다. 네 곡의 교향곡을 비롯해 2대 서곡, 두 곡의 피아노 콘체르토와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처럼 딱 한 곡만을 남긴 바이올린 콘체르토 역시 클래식 애호가들이 반드시 감상해 볼만한 곡으로 유명하다. 브람스는 “네 개의 엄숙한 노래”(1897)의 작곡을 끝낸 후 향년 6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중 마지막 제 4곡은 사랑을 주제로 한 고린도전서 13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필자: 김학우/
2070czmk@daum.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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