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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

“성경을 잃은 교회”

[현장탐방] 박심원 목사, 영국 웨일즈 부흥의 시발점이 된 교회 방문기

교회를 그늘지게 하는 요소

교회의 영적 수준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에 있습니다. 교회가 병들고 세속화 되었다는 것은 선포되는 메시지가 병들었으며 세속화 되었다는 것과 일치합니다. 교회의 쇄락하는 원인중 하나는 모든 예배의식에 숨겨진 메시지들이 사라지고 의식만 남을 때입니다. 교회의 뿌리인 성막과 성전의 모든 것에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전에 사용된 모든 기구들에 의미가 없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거대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물두멍입니다.

교회의 뿌리인 성막과 성전의 모든 것에는 영적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전에 사용된 모든 기구들에 의미가 없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거대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물두멍입니다. 성전에 들어갈 때 제사장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물대야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거울이 없었으니 물로써 거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국의 전통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물두멍을 대신하는 천정을 향해 비추도록 장치해 놓은 거울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거울을 통해서 천정 장식을 볼 수 있게 해놓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전의 물두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물두멍을 바다를 부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왕상7:23-25)
바다를 부어 만들었다는 것은 상징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을 범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세워진 모든 기구 하나하나 마다 영적인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타락하기시작했습니다. 타락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사라지고 의식만 남았다는 의미 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기구 들을 엎으시고 어떠한 기구를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요2:13-17)
성전의 상을 엎으시고 기구를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신 것은 성전에서의 제사를 금하신 것입니다. 제사를 금하셨다는 것은 기구 안에 담겨진 영적 의미가 백성들 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말씀에 있습니 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는 가나안 땅에 관한 지도를 가지고 간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라는 영적 나침반을 가지고 간 것입니다.(창12:4)
교회의 핵심은 선포되는 말씀에 있습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가 복음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강론하는 것인가? 이는 교회의 기초가 됩니다. 교회를 방문하면서 과연 그 교회에 그러한 메시지가 선포된 흔적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영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에 말씀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더이상 성경을 들고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에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교회에 비치되어 있는 성경을 펼치지도 않고 한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형식적으로 듣기만 합니다. 목사의 선포에도 성경말씀의 핵심에서 벗어나고 있음이 교회를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영광이 가려지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은 기구에 담겨진 영적 의미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사견을 말하게 됩니다.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는 것을 업을 삼았습니다. (렘 5:31) 그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1904년 웨일즈 부흥의 시발점이 된 ‘타버나클’ 교회는 성막(장 막) 교회입니다. 성막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하심을 사모하여 교회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입니다. 성막은 의식 중심으로 예배했던 곳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구약시대는 제사, 신약 시대에는 예배로 표현되어 집니다. 제사와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전파하는 자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사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과 교회의 타락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 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렘26:5)
1903년 플로리 에반스라는 17세 소녀의 고백인 “온 맘 다해 주님을 사랑합니다.” (I love Jesus with all my heart)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그 교회와 지역에 임재 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플로리 소녀의 고백을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타버나클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에 대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웨일즈 부흥이 있은 지 100여년 이 지난 이후에 타버나클 교회에서는 그 어느 곳에도 성령님이 임재하실 말씀의 흔적, 복음의 메시지를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 놓인 성경은 누구 하나 떠들어 보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성경을 펴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강단에 놓여 있는 빛바랜 메모지 한장이 지금 타버나클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의 현주소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타버나클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 교회에 만연된 문제 입니다. 영국교회의 쇠퇴에 대해 우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에 성경이 없다는 것을 첫 번째 원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는 영국교회에 느낀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교회는 쇠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 교회에 말씀이 없을까요? 매 주일마다 예배하며 목사나 사역자 들은 강단에서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말씀이 아니라 개인의 사견이며 철학이나 윤리 도덕적적 교훈일 뿐입니다.
초대교회에 부흥이 있었던 것은 말씀이 흥왕했다는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행19:20) 말씀이 없다면 그만큼 교회의 순수성을 잃게 되는 것이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영국 교회 뿐 아니라 많은 교회들이 말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의 사역자들은 성경을 백독하려 힘을 썼던 흔적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있게 됩니다. 성경을 다독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현대는 다독에 무게를 두지 않고 한절을 읽고 그것을 묵상하는 큐티에 무게를 두게 됩니다. 물론 무엇이 더 옳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자체에 무한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타버나클 교회는 내가 속한 오늘날의 교회의 자화상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강단은 강연대가 되었으며, 복음을 듣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예배당은 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다용도로 사용 되어지는 문화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는 교회에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사회정의와 지역 주민들의 수준높은 문화를 나누는 것은 교 회안에 우상의 모형을 세워놓고 그것에 절하는 것보다 더 큰 타락 이 아닐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속한 교회, 내 영혼을 다해 목회하는 교회의 강단은 건강한가, 타버나클 교회를 통하여 진단 받게 됩니다.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하는 언변 가가 아니라 설교를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하고, 개인의 신앙철학을 강론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임을 되새기게 합니다. 17 세기 영국이 나은 설교가 ‘매튜 심슨’ (Matthew Simpson)의 외침이었으나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 목사님이 인용하여 유명하게 된 글을 다시금 되새기게 합니다.
“나의 왕좌는 강단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그 강단에 선다. 나는 통로요, 도구요, 매개 체이다. 나의 매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의 삶, 행위, 언어는 67권 째의 메시지이다. 불멸의 영혼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으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구세주께서 내 곁에 서 계신다. 성령님께서 회중들 위에 임재하시며, 천군천사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는 가운데 천당과 지옥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다. 아, 이 얼마나 장엄한 광경인가? 아, 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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