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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대한 가톨릭의 관점(II)

[기독교 기본교리 탐구] 조남민 목사/ 밸리성경교회/한인성경선교회- <8회>

가톨릭 교회일치 운동 교리는 비성경적인 교리이다:

성경해석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할 수 있겠나? 또 아무리 교회사역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성경해석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님 뜻대로 사역할 수 있겠나?

지난 호에 우리는 가톨릭의 권위가 성경과 성전(전통)에 있지만 적어도 가톨릭은 성경을 하나님이 감동으로 “인간에게 알리고자 하신 당신(하나님)의 진리를 그릇됨이 없이 기록”하신 말씀으로 믿고 있다는 말을 했다. 또한 성경은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었었지만 제2바티칸 회의(1962-65)이후로 금서령은 해제되었다는 말을 했다. 이에 따라 가톨릭은 성경을 자주 읽기를 권고한다는 말도 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33항에는 여기에 또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이 성경을 아주 중요시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성경 해석에 관한 것이다. 가톨릭이 만일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이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했다고 한다면 가톨릭과 개신교가 이렇게 큰 차이로 벌어질 수가 없다.
가톨릭의 성경해석: 중대한 문제는 가톨릭 교회는 개인으로서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톨릭에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은 개인이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권한은 따로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바티칸 제2회의>와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말하는 성경을 해석하는 권위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85]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곧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이는 <바티칸 제2회의>의 [계시헌장 10]항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고 한다. 또 [계시헌장 12]항은 가톨릭교회교리서 119항에서 다시 말하며 성경의 해석에 관한 것이 “교회의 판단”에 속했다고 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19] “…성경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만일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요약으로 결론을 맺는 부분에서 가톨릭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못을 박고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00]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오직 교회의 교도권, 곧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
이것으로 보면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책임과 임무는 교회의 교도권에만 주어져 있는 것이 확실하다. (여기서 가톨릭의 ‘교도권’에 대해서는 우선-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로 이해하면 좋겠다. 이 부분은 후에 기회가 있을 때 다루면 좋겠다.)
이 말은 가톨릭 신자들이 아무리 성경을 해석한다고 해도 그것이 교도권의 해석과 다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한 해석이고, 그런 해석은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일반 사제 신부들이나 수녀들이나 부제들도 교도권에 속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도권만이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책임과 임무를 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를 갖게 될까? [가톨릭교회교리서 133]항에서는 “모든 신자가……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필리 3,8)를 얻도록 강력하고 각별하게 권고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신자들이 성경을 읽도록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있게 해석하는 책무”가 교도권에 있는 고로, 성경을 읽는 신자들은 결국 교도권이 해석한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 성경을 아주 사모하는 가톨릭 신자가 있다고 하자. 그가 성경을 읽다가 의문이 생겼다. 자신은 앞뒤 문장을 통해 이런 의미일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도 미심적어서 가톨릭 교도권이 이를 어떻게 해석했나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톨릭에서 성경을 권위있게 해석하는 책무는 교도권에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교도권의 해석을 보면서 자신이 이해한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해석을 강제로 잊어야 하고, 교도권의 해석으로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교도권의 해석이 손에 닿지 않을 때, 가톨릭 신자가 일반적으로 하는 것은 자신의 의문점을 수녀나 사제 신부에게 가서 묻는다. 그렇다면 그들의 답변은 무엇을 근거로 말할 것인가? 당연히 교도권에서 해석한 것을 근거로 말할 것이다. 필자가 아는 가톨릭 신자는 성경의 문맥의 의미를 가르쳐주어도 미심적게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이 다니는 가톨릭 교회의 수녀나 신부에게 가서 물어보고, 결국 그들의 해석을 따르는 것을 종종 보았다. 이러한 예는 가톨릭의 전 교회 신자들이 성경을 읽기를 사모한다고 해도 그들은 교도권이 해석한 성경을 읽고 있다는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언급한 119항의 “만일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 근심이 되는 말이다. 왜냐하면 가톨릭 신자들은 성경을 통해 자신이 이해한 말씀대로 복음을 믿고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이끄는 대로 복음을 믿어야만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만일 가톨릭의 권위가 성경말씀대로 믿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한 것이고, 13억의 가톨릭 신자들이 이를 그대로 따른다면 그들은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씀이 성경적으로 해석되지 않은 다른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면, 13억의 가톨릭 신자들은 모두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결국 갈라디아서 1장 6-9절의 말씀대로 그런 다른 복음으로 인해 저주받게 될 것이다.
가톨릭의 구원에 관한 죄 사함에 대한 가르침은 세례를 통해 죄 용서함을 받는 성경과 다른 말씀이라는 것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모두 교도권이 성경을 해석하면서 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가톨릭의 13억이 어떤 길로 가고 있을까? 그 길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좁은 길이 아니라 넓은 길이다. 넓은 길은 생명의 길이 아니라 멸망의 길이다. 이런 말씀을 두고 잠언 14장 12절은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예수님이 마태복음 15장 14절에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게 된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다. 지도자들이 성경을 잘못이해하고 자신들부터 잘못 간다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구덩이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더 무섭다(마 7:21-23).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성경해석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할 수 있겠나? 또 아무리 교회사역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성경해석이 다른데 어떻게 하나님 뜻대로 사역할 수 있겠나? 결국 예수님은 심판 때에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예수님이 “내게서 따나가라”하시면 그때는 바로 끝장이다. 더 이상 회복할 길은 없다.

‘가톨릭의 교도권만이 성경을 해석하는 책무가 있다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지면상 다음에 알아보기로 하겠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누구나 성령님의 조명아래 각자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개신교 성도들은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해 필자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하기로 하겠다.
필자는 가톨릭에 다니는 몇몇 사람과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분이 우리가 공부한 것을 자신이 다니는 가톨릭 교회의 신부나 수녀에게 물어본 것 같았다. 때때로 그는 “신부님이 말하기를” 혹은 “수녀님이 말하기를”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목사님의 말은 이러 이러하지 않았나?”라는 식의 말을 했다. 그 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누가 무엇을 말했다고 하는 것이 기준이 되기보다는 본인이 직접, “성경을 읽고 이해하라”고 권면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부의 말을 듣고 그것을 따랐으며, 결국 필자는 그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필자가 의아했던 것은 그들이 복음을 들을 때 기뻐하며 감사하는 모습을 가졌었는데 그 후에 같은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더 이상 만나고자 하지 않은 것이었다. 후에 <무엇이 다른가?>를 쓴 프릿츠 리데나워가 지적한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해석에 관한 문제였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확신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점은 우리가 알고 있어야만 한다. 리데나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톨릭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단 하나의 권위자가 있듯이 신교에도 그와 같은 사람이 있지 않느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교에서도 셩경을 해석할 때 그들 목사들에게 의뢰하지 않느냐? 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양자 다 잘못이 아닐까? 처음에는 그런 것같이 생각된다. 잠시 동안 생각해보자.” 그러나 양자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물론, 목사나 선생들은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목사나 선생들이 완전무결하다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만 부여한 적이 있는가? 아니다. 신약에서 알려주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각 개인이며, 개인이 뜻을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도록 되어있다.

이 글에서 지적하듯이 가톨릭 신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이해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성경을 각자가 다 읽어야 하고, 각자가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성도가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그 근본 기초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의 어떤 구절을 생각하며 개신교 성도가 가톨릭 신자와 대화할 때, 개신교 성도들은 그것이 본문에서 무슨 말을 할까를 생각하며 말한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이 말을 신부가 뭐라고 말할까? 가톨릭 교회 교도권이 무엇이라고 말할까?를 생각하며 대화에 임하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 자신이 성경을 해석하면 그것이 옳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반드시 성직자들인 교도권에서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톨릭에 다니는 사람 중에 “교도권”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그들에게 이 성경해석의 교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을 것이고, 은연중에라도 이는 몸에 배어있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치 여호와의 증인이 와치타워에서 해석하는 것에 근거해서 앵무새처럼 말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이단 신천지에서 자기들의 성경해석 방법대로 읽는 것이 옳은 것으로 말하는 것처럼, 이런 것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톨릭 신자들과 대화할 때 계속 대화하면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지적해야할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글로 주신 것이고, 때문에 글의 법칙으로 주셨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성을 주셔서 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는 것을 지적해야한다. 어느 특정인만이 성경을 해석해야한다는 것은 독설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해서 지적해야만 한다. 물론 다른 이단들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 사고에서 나와 성경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필자: 조남민 목사/
밸리성경교회/ 한인성경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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