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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십자가형

[아트저널]  박심원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29회

거꾸로 된 십자가는 베드로의 십자가로 불린다…

귀도 레니Guido Reni (이탈리아, 1575-1642) 작품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AD64년경 로마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한다. 일반적인 십자가 형태가 아닌 거꾸로 한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역사상 십자가의 여러 형태가 있는데 거꾸로 된 십자가는 베드로의 십자가로 불린다. 현대에 이르러 역 십자가(거꾸로 된 십자가)는 베드로의 십자가가 아닌 사탄을 숭배하는 집단의 표시로도 사용된다. 어떠하든 고전에 기록된 역 십자가는 베드로의 순교를 상징하는 십자가이며, 엑스자 모양의 십자가는 제자 안드레의 십자가로 표기된다…

십자가 처형은 가문의 수치이며 인간으로서는 최악의 형벌이었다. 열십자 모양의 완성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세로 기둥 나무는 처형장에 미리 박혀있고 매질을 당한 후 대중들이 보는 가운데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않은 십자가의 가로 들보(patibulum)를 매고 형장으로 가게 되는데 보통 무게는 50kg에서 100kg 정도로 나무에 따라 무게는 달라진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들보는 75kg 정도였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죄 패가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글자로 표시되었다. (요19:21) 요약하면 INRI의 라틴어 약자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사람은 지쳐 심장마비로 죽거나 며칠씩 죽지 않고 매달려 있다. 철봉으로 죄인의 다리를 부러뜨려 죽음을 앞당기기도 한다. 십자가는 흉악범들을 공개 처형시키는 사형 틀이면서 동시에 변형된 종교의 상징이기도 했다. 예수님 당시에도 십자가 형태는 사형 틀과 이방 종교의 변형된 이미지 두 가지 개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현실적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제자 되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7)

그렇다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의미는 어떠했을까? 주님이 부활 승천 후 베드로의 행적으로 더듬어 보면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서신인 베드로전후서에서는 십자가를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베드로전서에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벧전2:24) 십자가를 나무로 표현했을 뿐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제자가 능히 될 수 없다는 말씀은 후세 신앙인에게 가장 핵심적인 사명선언문과 같은 말씀이지만 베드로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없었다. 베드로뿐 아니라 초대교회에서 제자들은 십자가를 신앙의 상징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다만 사도바울은 십자가를 신앙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사도바울이 내세운 십자가는 형태가 아니라 십자가에 담긴 영적 의미인 도(the message of the cross)에 관한 것이다. (고전1:18)

예수님의 승천 이후 베드로의 사고는 바뀌었다. 그것은 갈릴리 호수에서 주님의 물음이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반복되는 물음에 베드로는 고민하여 대답했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21:17) 베드로 생을 다해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였고, 순교하기까지 했던 단어는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였다. 브라이도리온(the Praetorium) 뜰에서 재판받을 때(막15:16) 베드로는 작은 계집아이의 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주님을 부인했다.

세 번이나 그렇게 부인한 후 닭 울음소리를 들을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 베드로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주님은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고 부활하셨다는 소문은 들었으며 베드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베드로는 중요한 약속을 이행해야만 했다. 그것은 주님이 살아 계실 때 너희들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을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여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전했는데 갈릴리로 가라는 메시지였다. (마28:7) 베드로는 주님의 당부를 지키기 위해 부리나케 갈릴리로 가야 했다. 그 현장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갈릴리에서의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그날도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를 잡지 못했다. (요21:3) 그물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주님은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처럼 고기를 잡았는지 물으셨다.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셨다. 결과는 물고기가 많이 잡혀 그물을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요한은 그 상황이 3년 전 주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 임을 알고는 베드로에게 주님이라 말한다. 베드로는 벗고 있다가 요한의 말을 듣고는 겉옷을 두른 후에 바로 바다로 뛰어내렸다. (요21:4-7)

베드로가 뛰어내린 갈릴리 바다는 육지에서 ‘오십간’ 떨어진 곳이었다. 오십간에 대해 헬라어 성경은 ‘페퀴스 디아코시오미’로 200페퀴스(규빗), KJV 200 규빗, NIV 약 100야드로 기록하였으며 현대적 거리는 약 91m가 된다.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베드로는 두 번이나 물 위로 뛰어내렸다. 첫 번은 풍랑이 이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향해 소리쳤다. ‘나를 물 위로 걷게 하소서,’ 처음은 주님처럼 물 위를 걸었으나 심하게 요동하는 물결을 보자 두려워하여 물속에 빠져들었다. (마14:24-32) 실패했다.

부활하신 주님을 갈릴리에서 만났을 때는 베드로는 이미 믿음으로 충만해 있었다. 주님이 확인되는 순간 그는 서슴없이 뛰어내렸다. 물론 요한복음에는 그가 물에 빠졌는지 기록은 없다. 이미 그는 물에 빠지는 일차적 믿음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극렬한 핍박을 피해 로마를 떠나려 했으나 베드로가 버린 로마를 위해 주님이 로마로 가신다는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라는 말씀을 듣고는 로마를 품고 그곳에서 순교하게 된다.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증표로 거꾸로 된 십자가에 달려 이 땅에서 그의 생을 마감한다. 귀도 레니의 <베드로의 십자가형>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중세 교회까지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신앙을 확증한 것이다. 베드로가 져야 할 십자가, 베드로가 안아야 할 십자가, 베드로가 배워야 할 십자가는 물리적 십자가가 아니라 주님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는 십계명 중 1계명부터 4계명까지를 완수하는 절대 신앙으로서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제자의 몸부림이었다. 십자가에 거꾸로 순교한다는 것은 곧 주님이 고백하셨던 ‘다 이루었다.’ (요19:30) 라고 선언처럼 베드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이룬 것이다. 베드로의 십자가형 그림 앞에 선다는 것은 내가 완수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지, 그것을 완수하는 것은 어떤 방법론이 아니라 주님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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