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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실크로드와 복음루트] 최하영 목사/ GMS 우크라이나선교사 |

(15회) 몽골제국 일칸 제2대 아바가 칸… |

이때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71-1299)가 1271년에 중국대륙을 여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바가의 통치 기간에 몇 가지 동전에 기독교 십자가가 새겨졌고, 유일하신 한 하나님이신 성부와 성자, 성령이 아랍어로 기독교 묘비에 새겨질 정도로 기독교가 보편화되었었다. 이렇게 일칸 제2대 아바가 칸은 기독교인 고관들 등으로 인해 기독교적인 칸으로 알려졌다…

칭기즈칸(Ghinghiz Khan, 1160~1227)의 막내 아들 톨루이(Toluy, 1190-1232)와 케레이트족네스토리안 토그릴 왕칸(Toghril, Wang Khan, 1131~1203)을 삼촌으로 둔 소르각타니(Sorghaghtani, 1190-1252) 사이에서 일 칸국(Ilkhan, 1256-1353)을 세운 훌라구(Hulagu, 1218-1265)가 태어났다. 1258년 훌라구가 압바스 왕조(Abbasid, 750-1258)의 수도 바그다드(Baghdad)를 점령하여 그 바그다드의 압바시드 칼리프 궁전을 네스토리안의 총대주교 마키카 2세(Makika II, 1257-1265)에게 주고 일칸의 새수도는 마르가(Maragha, 현재 이란 동 아제르바이잔 주)에 두었다. 그리고 훌라구의 아내 도쿠즈 카툰(Dokuz Khatun, 1229~1265)은 그 당시 믿음의 여왕으로 칭할 정도로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는데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1265년 훌라구의 장자 아바가(Abaga, 1265-1282)가 제2대 일칸국의 칸으로 아버지 훌라구처럼 네스토리안 기독교를 보호하였다. 당시 일칸국은 북방으로 이슬람화된 킵착크칸국(Kipchaks, Golden Horde)과 남쪽으로 이슬람 이집트 맘룩크 왕조(Mamluk, 1250-1517)와 대치하고 있었다. 이런 외교적 고립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eror, 395-1453)과 서구 국가들과 동맹이 절실하였다. 그래서 아바가는 비잔틴 황제 미카일 8세(Michael VIII Palaiologo, 1223-1282)의 딸 마리아(Mary, Despina Khatun)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1266년 여름 혹은 1267년 초에 교황 클레멘트 4세(Clement IV, 1265-1268)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이 친기독교적임을 밝혔다. 그리고 1268년 여름에 교황에게 두 번째 서신을 보내 맘룩크를 공격하기 위해 십자군(Crusades)을 결성하자고 하였다. 이에 영국의 에드워드 1세(Edward I, 1272-1307)가 마지막 십자군을 이끌고 맘루크 왕조 바이바르스(Baibars, 1228 – 1277)에게 대항하였으나, 겨우 10년간의 강화조약을 맺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약 200년간의 십자군(Crusades,1095-1291)도 끝났다. 그리고 동서간의 교섭의 문을 열어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71-1299)가 1271년에 중국대륙을 여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아바가의 통치 기간에 몇 가지 동전에 기독교 십자가가 새겨졌고, 유일하신 한 하나님이신 성부와 성자, 성령이 아랍어로 기독교 묘비에 새겨져 있을 정도로 기독교가 보편화되었었다. 이렇게 일칸 제2대 아바가 칸은 기독교인 고관들 등으로 인해 기독교적인 칸으로 알려졌다.

1281년 몽골 투르계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마르 야발라하 제3세(Mar Yaballaha III, 1281-1317)와 위구르인(Uighur) 랍반 소마(Rabban Sauma, 1225-1294)가 일칸국의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다. 이것은 몽골 제국에서 몽골인이 최초로 네스토리안 총대주교가 된 위대한 사건이었다. 야발라하 3세전에 의하면 마가(Mark, 1245-1317)는 1245년에 내몽골 웅구트족 네스토리안의 부제(Archdeacon)였던 바이니엘(Bayniel)의 네 아들 가운데 막내로 호라산의 코샹(Koshang)에서 출생하였다. 그리고 라반 소마는 칸발리크(Peking)에 살던 순회사제 쉬반(Shiban)과 케얌타(Keyamta)사이에서 태어났다. 쉬반은 몽골제국 제5대 대칸 쿠빌라이(Kublai, 1260-1294)의 가장 초기의 기독교 고문이었다.

쉬반은 오랜 기도와 금식 끝에 얻은 아들이라 소마(Sauma, 금식)라 하였다. 한편, 몽골인 총대주교 야발라하 3세인 마가는 23세에 모든 재산과 의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7년 동안 수도원에서 수행을 하고 산중의 동굴로 들어가 금욕생활을 하였다. 마가보다 20살이나 많은 바르 소마는 마가에게 강한 소명과 사제 길에 들어가도록 격려하였다. 그래서 마가가 30세일 때에 바르 소마에게 성도 예루살렘에 순례할 것을 제안하였다. 쿠빌라이는 마가와 소마에게 예루살렘을 순례하도록 소위 여행허가증이라고 할 수 있는 패(牌)와 부(符)를 주어 그들이 지나가는 곳 마다 관리자들로 하여금 백방의 편의를 제공하도록 명령하였다. 수도 칸발리크(뻬이징)에서 다수의 공공도로가가 지방으로 뻗어 있었는데, 25마일 마다 역점(얌브)이 있어 칸의 사신이 숙박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얌브에는 400필 정도의 말이 사육되어 사신이 이용할 수 있었다. 또 칸에게 보내는 통신 문서를 전달하는 파발꾼이 3마일 마다 있고 많은 방울을 달고 있어 그 방울 소리가 가까워 오면 다음 파발꾼이 준비하여 인계 받아 달렸다. 이렇게 하면 10일 길도 하루면 전달되었다. 이렇게 마가와 소마는 쿠빌라이의 편의에 의해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마르 덴하(Mar Denha I, 1265-1281)를 만났다. 당시 무슬림들에게 세례주었다고 해서 강성 무슬림들에 의해 바그다드의 총대주교 자리를 떠나도록 강요받았던 덴하는 마라가에 있었다. 마르 덴하는 칼케톤 공의회(451) 이후 800년간의 네스토리안 교회와 시리아 정교회와의 분쟁을 종식시켰다.

마가와 소마는 일칸과 맘룩크와 킵착칸국과의 전쟁으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방해를 받자 네스토리안 기독교 성지인 바그다드와 셀류키아 크테시폰(Seleucia Ctesiphon), 아르벨라, 니시비스(Nisibis), 니느웨(Neneveh), 모술(Mosul) 등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기독교인과 교회, 수도원, 거룩한 유물들이 많음에 놀랐다. 한편, 마가와 소마는 예루살렘의 순례의 길이 열릴 때까지 아르벨라 근처 타릴 수도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때에 1280년에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마르 덴하가 마가에게는 카타이(Cathay)와 웅(Ong)의 대주교(metropolitan)로, 소마에게 총순회사제(Visitor-General)로 긴급히 임명하여 파송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동방으로 돌아가던 중 중앙아시아에서 원제국 황제 쿠빌라이와 오고데이 가문(House of Ogedei) 카이두 사이의 내전으로 다시 타릴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이 몽골제국의 내전은 제4대 몽케 대칸 후임을 위한 것이다. 즉 훌라구 형제들인 둘째 형 쿠빌라이와 막내 아릭부케(Ariq Buke, 1219-1266) 계열의 50년간의 내전이 있었다. 일칸 훌라구는 쿠빌라이 편이였고 킵착칸국과 차카타이(Chagatai Khanate, 1225-1340), 오고데이 가문은 아릭부케를 지지하였다. 그런데 1981년에 총대주교 마르 덴하가 갑자기 죽자 네스토리안 고위성직자 회의에서는 최초로 몽골인 마가를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마가는 네스토리안 교회의 언어인 시리아어 조차 말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총대주교로 추대되었다. 이는 400년간의 사산제국과 600년간의 이슬람 제국의 정복자들의 통치 하에 성공적으로 살아왔던 현명한 네스토리안들은 13세기 몽골제국에는 몽골인을 총대주교로 추대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선출된 마가는 일칸국의 훌라구의 아들 아바가 칸으로부터 조그만 왕관이 장식되어 있는 의자(sandali)와 태양이나 비를 막아주는 산개(shather), 금으로 된 패자(paiza), 서임장(pukdana)을 받았다. 마가는 바그다드로 돌아와 마르 코케(Mar Koka)에 있는 대교회에서 1281년 11월에 즉위식을 치르고 네스토리안 총대주교가 되어 마르 야발라하 제3세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렇게 일칸의 훌라구와 아바가까지의 통치는 네스토리안 기독교 르네상스라 할 정도로 동서교류가 활발하였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초기 일칸은 유럽의 국가들과 연대 및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란 등 페르시아 영역에 기독교가 부흥하는 시기였는데, 지금은 이슬람 땅이 되어있다. 그러기에 이 지역을 다시 복음이 확산되도록 기도하자.

필자: 최하영 목사
/ hydavid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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