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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반전은 반드시 온다

[유크시론 206호]  이창배 발행인

이달을 여는 창: 2019-2월호 사설

그래도 감사하자. 도매금에 넘어간다고 할지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자.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믿자. 두려워 말자. 정녕 하나님의 구원은 이 막다른 데에서 시작된다. 그 반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질 것이다….

지난 수일간 칙칙한 날씨로 이어지면서 겨울비가 내렸다. 음산한 날씨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시린 바람이 가는 휘파람 소리처럼 들려온다. 그 끝에 간밤엔 눈이 왔나 보다. 아침 창밖을 보니 소복이 쌓인 눈이 눈길을 끌었다.
세상이 하얗다. 나무도 하얗고, 가까이 보이는 뒷산도 하얗다. 오랜만에 보는 눈 내린 동네 정경이 정겹게 느껴진다. 경사진 독일 집 지붕보다 오두막집 지붕이라면, 게다가 아침밥 짓는 연기 굴뚝으로 뭉클뭉클 피어오르기라도 한다면 더 좋았으련만. 그래도 이게 어딘지? 잠깐이나마 흰 눈으로 인해 고맙단 마음이 차오른다. 하지만 그 고마움도 잠깐일 뿐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웬일인지 오전이 지나기도 전에 하얀색 겨울 풍경은 끝나고 말았다. 눈 오면 날씨가 푹해진다고 했던가. 햇볕은 없는데 흰 눈은 금세 사라져버렸고, 여전한 겨울 일상을 되찾았다. 푸른 하늘을 온통 가려버린 잿빛 구름과 그 공간으로 흘러가는 바람결이 잎새도 없는 나뭇가지를 훑고 지나간다. 아직 겨울인 것을 잊지 말라는가? 찬 기운이 시리도록 얼굴에 와닿는다.
멀리 고국 땅에는 극심한 미세먼지로 눈앞 시야가 뿌옇게 가려질 정도라 하던데, 공기 좋다는 독일 땅에선 잔뜩 흐려진 날씨로 온통 사방이 재색 빛이다. 멀리 보이는 것은 고사하고, 잠시라도 바깥을 나가는 일조차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바깥 기온이 그다지 차가운 편은 아니던데, 기분으로 느껴지는 온도가 실제 이상으로 차갑다고 할까, 체감 온도보다는 마음 온도가 낮다.
사실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뭣이 그리 즐거운 일이 많은 텐가? 그렇다고 여기 사람 사는 분위기가 시끌벅적하지도 않으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무슨 재미로 살아가는 것인지가 때론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날씨까지 이 모양이니 어쩌러나. 어서 이 칙칙한 겨울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잠시도 쉴 새 없이 지나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가지를 본다.
단 1초의 멈춤도 없이 나무 사이로 통과하고 있는 이 바람의 끝에는 또 무엇이 오려나. 이렇듯 시린 바람과 비구름과 눈과 비로 엉켜버린 겨울이 그래도 가고 있다. 변덕꾸러기로 이름난, 이 겨울은 엉거주춤거리며 나뭇가지를 붙잡고 늘어지지만, 여전히 시곗바늘은 돌고 돈다. 어느덧 1월의 마지막 날이고, 또 새달의 시작이 내일이 아닌가. 2월은 이렇게 다가왔다.

정신 줄을 다시 잡는 촌극도 감사
지난 연말, 이리저리 분주한 시간을 보내며, 정신을 못 차렸던지 자동차 표면에 스치는 상처를 입혔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조수석 쪽 기둥을 살피지 못하고, 성급하게 핸들을 꺾다가 순간적으로 시멘트 기둥에 뒤 문짝을 긁히고 말았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저질러진 물처럼 제법 깊은 생채기를 내고 만 것이다. 후회도 소용이 없는 결과를 두고 더는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는가이다. 하지만 이때로부터 자동차를 타고내릴 때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자동으로 눈길이 거기로 간다. 그리곤 또다시 속이 쓰려온다. 아마도 깨끗하게 수리를 한다 해도 그 쓰라림이 쉬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고 보면 새해 들어 심방을 가는 길에 미처 시속 30Km 제한속도 구간 표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넓고 큰 길이라 당연히 시속 50Km 일반도로로 착각한 것이다. 그나마 나름대로는 시속 43Km 속도로 달리며, 이 정도면 법을 잘 지키는 착한 운전자라고 자신을 스스로 자화자찬 하던 중 사진이 찍혔던 모양이다.
얼마 후 범칙금이 일반 범칙금보다 좀 세게 발부가 되어서 우편으로 날아왔다. 아무튼, 연말과 연초에 연이어 터진 자동차 이슈로 인해서 한동안 풀렸던 정신을 바짝 차리는 계기가 됐다. 돌아보면,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히 아닐까?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언제부터라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냥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로 운전을 계속했더라면, 어쩜 또 다른 일,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난관에 부닥쳐서 번쩍 정신을 차리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당하기보다는 그래도 이쯤에서 감사로 매듭을 짓자고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달, 2월을 맞이하는 게 어쩜 그리 반가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둑 터진 강보, 그래도 감사하자
성경에 보면,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는 바 되지 아니하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도 귀하니라.”(마 10:29, 눅12:6-7) 하는 말씀이 있다.
앗사리온이라는 화폐단위는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던 때 통용되던 동전의 명칭인데 얼마쯤의 가치가 될까? ‘포도원의 품꾼비유’(마20:1-16)를 살펴보면,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에게 약속한 하루 임금이 1데나리온이었다. 그로써 살피면 1앗사리온은 1데나리온의 16분지 1에 해당하는 화폐가치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씀의 요소는 정말로 하찮은 단위의 푼돈에 해당할 만큼 그리 작고 초라한 참새 한 마리까지도 결코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 사랑이 그 참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너희에게로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대상이 바로 나라는 사실로 귀결이 되지 않는가? 그러니 감사하자.
그렇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이 어수선하기도 하고 하 수상쩍다. 이런저런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많아 어디에서 풀어낼지, 되감을지도 모를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세계정세도 소위 G2라고 하는 미·중의 대립 구도로 안개가 드리운 것 같고, 국내문제도 혼미하다. 그런 가운데 교회는 또 어떤가?
마치 성경의 사사 시대를 보듯 지도력 부재의 현상이 그대로 느껴진다. 진영이 무너지고, 푯대도 없다. 이젠 저마다 자기 본분을 잘 지키는 것이 최선이 된 것은 아닐지, 사실 어디 기대고 싶어도 기댈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는 우려가 깊다. 무너진 것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둑 터진 강보를 예를 들어보자. 물 빠진 뒤 움푹 파인 웅덩이에 고인 물, 그곳에 물고기들이 가득해 입만 뻥긋거리고 있는 모양은 아닐지 그만큼 위기상황이라는 인식이 가중되고 있다. 점차, 그러나 가속도가 붙은 채로 세속화의 물결은 이제 교회를 온통 흘러넘치고, 그 세찬 물줄기를 가로질러 건너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래도 감사하자. 도매금에 넘어간다고 할지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자.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믿자. 두려워 말자. 정녕 하나님의 구원은 이 막다른 데에서 시작된다. 그 반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질 것이다.

이달의 말씀 ㅣ사사기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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