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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죽음과 중요성

[루터&종교개혁] 김현배 목사/ 베를린 비전교회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18. 마지막회)

우리는 500년 전 루터가 붙잡았던 말씀과 교리, 기도, 성령,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루터의 마지막 사역들

1546년 1월 17일, 루터는 비텐베르크에서 마지막으로 설교했다. 그후 1월 23일 비텐베르크를 떠나 할레를 거쳐 1월 28일 아이슬레벤에 도착했다. 2월 10일, 루터는 아이슬레벤에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서신을 보냈다. “우리는 여기 일을 잘 마치고 주께서 허락하시자마자 집으로 돌아갈 거요. 아멘! 당신의 마틴 루터.” 이것이 그의 마지막 서신이다. 2월 14일, 루터는 성 안드레아스(St. Andrew’s) 교회에서 크라우제와 발라에게 안수하였다. 두 명의 목회자를 임명하여 세운 후 성만찬 예식을 거행하였다. 루터의 공식적인 마지막 사역은 성만찬이었다. 이어 루터는 성 안드레아스 교회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는 본문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오래 할 수 없었다. 그는 설교를 하던 중에 힘들어서 중단하고 내려왔다. 이것이 루터의 마지막 설교였다. 1546년 2월 14일이다.

불꽃같은 루터의 심장이 멈추다.

루터가 임종했던 방(아이슬레벤)

1546년 2월 17일, 늦은 저녁부터 루터는 심장 발작을 일으켜 곧 침상으로 옮겨졌다. 가슴 쪽 통증은 다시 찾아왔다. 루터는 “고통이 크고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픈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루터는 침울한 목소리로 “오, 주 하나님이여”라고 부르짖었다. 루터의 일행들은 전부 잠에서 깨어 루터 침상 주위로 달려왔다. 이미 루터가 죽음에 임박했다는 슬픈 소식은 온 도시로 퍼져가고 있었다. 루터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꼈는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아버지, 자비로운 하나님,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셨습니다. 나는 그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쳤고 예수님 안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그를 사랑하고 나의 구주와 주인으로 영화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 예수님을 대적들은 핍박하고 모욕합니다. 주님 나의 작은 영혼을 받으소서.” 루터는 마지막 고통 중에서도 세 번이나 시편 31:5절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고 반복했다. 임종 전 루터의 기도문이다. 이어 루터는 자신의 삶과 사역의 기초가 된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을 고백했다.
루터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달은 유스투스 요나스는 루터에게 “존경하는 목사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와 구원자임을 믿음으로 고백하십니까?” 물었고 루터는 짧게 “예”로 대답하였다. 이러한 질문들이 몇 개 더 있었고 루터는 그때마다 예로 대답하였다. 이러한 신앙 고백은 당시 중세에서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의식 중에 하나였다. 이처럼 루터는 죽기 전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완전한 신앙 고백을 하였다. 1546년 2월 18일 새벽 2시 45분, 그의 나이 62세, 심장병으로 루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 번 멈춘 심장은 다시 뛰지 않는다. 그의 영혼은 이 땅을 떠나 하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시신은 비텐베르크성교회 안에 묻혔다.
루터의 죽음 후 그의 탁상위에 메모 한 장이 발견되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이다. 이것이 참이다.” 루터가 남긴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모두 파산한 거지와 같다는 것이다. 인간은 엄마의 태 안에서, 태에서 나와 첫 호흡을 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께 의존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걸인이다.”는 루터의 마지막 메모는 유언과 같이 지금도 울려 퍼지고 있다.

루터의 사역 – “종교개혁의 중요성”

중세교회는 칠 흙 같은 영적 어두움으로 가득했다. 무지와 미신이 지배했고 신학과 교리가 변질되었다. 중세교회는 신약교회로부터 이탈하여 교리의 순수성을 잃어버렸다. 즉 성경관, 교회관, 성찬관, 구원관, 예배관 등 문제가 너무 많았다. 타락과 어두움이 독일과 유럽을 덮고 있었을 때 루터는 95개의 논제를 비텐베르크성교회 문에 내 걸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신호탄이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거짓되며 비성경적인 요소들에 대해 대항하며 외쳤다. 그는 계시의 무기고인 말씀을 가지고서 교황의 권력에 맞서 진리의 빛을 비추었고 말씀으로 부패한 중세 어두운 하늘을 찔러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복음의 나팔을 불어 교회를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했으며, 타락한 교회를 깨끗하고 순수한 교회로 세워나갔다.
종교개혁은 전통을 믿고 따르는 로마교회와 성경을 믿고 따르는 개신교회와의 싸움이다. 즉 권위에 대한 영적 전쟁이다. 종교개혁의 영적 전쟁 한 복판에 마틴 루터가 서있었다. 중세의 암흑을 깨고 거대한 종교권력과 맞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빛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 16세기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총체적인 부패와 타락으로부터 기독교의 근본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운동이다. 즉 성경으로 되돌아가며, 십자가로 다시 돌아가며, 신약 성경에 나타난 표준으로 돌아가며, 그리고 사도적 신앙과 초대교회 예배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운동이다. 종교개혁은 복음의 재발견이고 복음의 능력을 회복한 사건이었다.
루터 종교개혁이라는 말씀운동은 중세를 문 닫게 했고, 개신교를 탄생시켰다. 루터는 신학자, 목사, 교수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던 불굴의 종교개혁자 루터의 삶은 감동적이고 위대했다. 위대한 승리자, 그의 이름은 루터이다. 그래서 존 칼빈은 루터를 개신교 종교개혁의 아버지로서 경의를 표했다.

종교개혁의 불꽃, 루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루터는 위대한 설교자이다. 루터는 박해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목숨 걸고 설교했다. 그의 능력 있는 설교는 부패한 심령을 일깨웠고, 교회를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루터의 설교는 불과 진리였다. 감동적인 루터의 설교는 교회사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2. 루터는 저술가이다. 종교개혁의 확산은 루터의 설교와 펜이었다. 그는 많은 양의 저술을 출판했다. 그의 모든 저작이 교회에 바른 길을 제시하였고, 종교개혁에 대한 모든 비판에 방파제 역할을 했다. 루터의 개혁적인 저서들은 독일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를 뒤흔들었다.
3. 루터는 말씀의 사람이다.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무너뜨린 루터의 물맷돌은 성경이었다. 말씀의 능력을 믿은 루터는 목숨을 걸고 교회 개혁을 이끌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루터로 하여금 로마교회의 모든 거짓과 위선을 태워버릴 종교개혁의 불꽃이 되게 하셨다.
4. 루터는 종교개혁자이다. 루터는 누구나 성경을 읽도록 했고 성찬예식에 참석한 모두에게 떡과 잔을 분배하게 했다. 예배는 독일어로 진행했으며, 성직자 중심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예배로, 의전 중심의 예배로부터 말씀 중심의 예배로 바꿨다. 루터는 예배개혁에 집중하였다.
5. 루터는 성경 번역자이다. 루터는 말씀에 대한 무지가 교회부패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진단하면서 성경번역의 긴박성을 깨달았다. 루터는 먼저 신약의 헬라어를 독일어로 번역했고, 나중에 구약성경 전체를 번역했다. 루터의 성경번역은 독일 국민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다.
6. 루터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였다. 루터는 예수를 높였고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예수를 붙잡았다. 루터의 설교와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찼다. 그는 다양한 사역과 삶 속에서 그 어떤 것 보다 도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함을 보여 주며 몸소 실천하였다.
7. 루터는 십자가 신학자이다. 루터신학의 핵심은 오직 십자가이다. 십자가 체험은 루터의 불꽃같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중세 잘못된 면죄부를 비판했던 루터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분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임을 외쳤다. 십자가는 중세를 문 닫게 했다.
8. 루터는 성경적인 교회를 세워갔다. 잘못된 신학과 교리로 인해 중세 교회는 병든 상태가 되었고 무너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루터는 말씀으로 교회를 다시 살리고 생명력 있게 했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교회를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성경적인 교회로 세워갔다.
9. 루터는 기도의 사람이다. 루터는 기도사역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하루라도 기도를 쉴 수 없었다. 그는 영적인 고투 속에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루터는 시편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시편 기도로 하루를 마감했던 사람이었다.
10. 루터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루터가 독일인에게 미친 영향 가운데 하나는 그의 가정에 대한 것이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으며, 자녀들도 잘 돌보았다. 특히 루터는 온 가족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기에 힘썼다. 종교개혁이 깊숙이 영향을 끼친 삶의 영역이 있다면 루터의 가정일 것이다.
11. 루터는 성경교리 교육자이다. 교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루터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신앙성숙을 위해 ‘대교리 문답’과 ‘소교리 문답’을 완성하였다. ‘문답식’ 교육 방법은 루터 이후 오랫동안 교회교육의 모델이 되어 왔다. 교리와 신조, 신앙고백서는 종교개혁의 산물이다.

결론 : 개혁과 부흥 그리고 유럽선교

어두운 중세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말씀 사역을 통해 거짓되고 타락한 교회를 새롭게 하셨다. 루터와 칼빈 등 여러 종교개혁자들의 사역으로 인해 유럽 교회에 종교개혁의 부흥이 일어났다. 교회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는 16세기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은 신앙 부흥 운동이었고 영적 대각성 운동이었다. 하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 유럽교회는 복음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각 교회마다 점점 영적으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영적 쇠퇴 원인은 18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 밀려들었던 이성주의와 계몽주의, 합리주의, 현대주의의 영향이다. 또한 성경고등비평으로 인해 성경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이성이나 과학, 현대지식, 철학, 학문에 더 많은 권위를 두고 있다. 이러한 때에 제2의 루터가 많이 필요하다. 루터에게서 개혁신앙과 부흥의 답을 찾고자 한다. 우리는 500년 전 루터가 붙잡았던 말씀과 교리, 기도, 성령,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루터의 복음적인 삶과 열정, 용기, 믿음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선교의 출발은 바른 말씀 선포이다. 참된 말씀 선포 없이 바른 교회가 세워질 수 없고, 바른 선교를 할 수 없다. 루터처럼 말씀에 목숨을 건 사람이 교회를 살리고 부흥의 주역이 되며 유럽선교를 잘 감당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루터의 신앙이 리바이벌되기를 소망한다.
끝으로 그동안 루터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이창배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부족한 사람의 글을 읽고 격려해 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필자: 김현배목사<revivalk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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