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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라스팔마스, 33명의 선원들, 타이타닉 (1)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 김학우 목사 »

금년 4월은 필자가 유럽에 첫 발을 내 디딘지 어느 새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유럽에 살면서 아름다운 추억도 많았지만, 반면 잊지 못할 애수의 이야기들 또한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금번 4, 5월 호, 두 차례에 걸쳐 유럽 생활 30년 가운데 잘 잊혀 지지 않는 목회 실화(實話)하나를 회고해 보고자 한다…

“호산나는 간다.”라는 비명소리만 남긴 채 배 안에 탄 33명의 선원 전원은 마치 타이타닉 호처럼 곧바로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다. 금년 4월은 필자가 유럽에 첫 발을 내 디딘지 어느 새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니까 유럽에서 한 세대를 보낸 셈이다. 그동안 유럽에 살면서 아름다운 추억도 많았지만, 반면 잊지 못할 애수의 이야기들 또한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금번 4, 5월 호, 두 차례에 걸쳐 유럽 생활 30년 가운데 잘 잊혀 지지 않는 목회 실화(實話)하나를 회고해 보고자 한다. 물론 이 실화는 지금껏 연재되고 있는 “유럽에서 보는 유럽이야기”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라스팔마스 부두에서, 찬송이 울려 퍼지다.
1991년, 늦가을답지 않게 따가운 햇살이 대서양 바다 저 너머에서 눈부시게 비쳐왔다. 한국선원들의 아지트이자 곳곳에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스페인령 라스팔마스(위도 28°, 경도 15°)산타 카타리나 부두에는 일찍이 처녀 출항준비를 마친 배가 여러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000톤급 호산나 호가 그린란드 조업을 앞두고 고사(告祀)대신 출항 예배를 드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뱃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고사를 지내지 않고 출항하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일로, 이날 출항 예배는 뱃사람들의 금기를 깬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지중해에서 조업을 하는 참치 독항선이나 서부 아프리카 근해에서 조업하던 한국 트롤어선의 대부분은 오래된 중고선으로 선내에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공간이 협소하였다.

평소 500-700톤 정도 되는 작은 트롤어선만 보던 나에게 그 날 출항하게 될 호산나 호는 마치 군함처럼 커보였다. 나는 선내에서 선장을 만나자마자 “아이고 배가 엄청나게 큽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우람한 곡선미를 갖고 길게 쭉 뻗은 호산나 호는 조업하는 선원이라면 한 번쯤 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완벽했다. 잠시 후 갑판에는 150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선주와 선사 직원들은 잔칫집 주인답게 흥분된 마음으로 방문객들을 정성스럽게 맞이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선내를 감돌고 있을 때에 나는 얼른 선미 가운데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나 그랬듯이, 출항 예배는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교인들이 많았지만 기독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곳 교민사회는 초창기부터 친형제나 다름없이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었던 사이었기에 경조사, 특히 배가 출항하는 일만큼은 종교를 떠나 큰 교민 행사로 치러졌다. 그래도 목사인 나로서는 많은 교인들과 교민들이 참석하는 경사인 만큼 신경이 많이 쓰였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특히 선원들이 출항 후에도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메시지를 준비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았다. 그 전날 밤을 넘겨, 자정쯤에서야 겨우 “바다에 나가려면” 이라는 출항 예배 설교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늦가을 하늘아래 수평선과 맞닿은 배 선상위에 옹기종기 앉아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 시골집 벽면에 붙여 있는 한 폭의 그림과도 흡사해 보였다. 하지만 순간 평온했던 부두에서 갑자기 정적이 깨어졌다. 호산나 호의 선상에서 외친 목사의 메시지가 잠잠했던 대서양의 바다를 가른 것이다.

33명의 선원들이, 바다에 몸을 맡기다.
“…바다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 “싸움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그리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라고 선상에서 외쳤을 때는 나 자신도 바다에 함께 나갈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시간 누구보다도 목사의 설교에 귀를 쫑긋 기울였던 사람은, 이후 자신의 모든 것을 배에 맡기게 될 선장과 32명의 선원들이었다. 1년 이상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서, 때론 차디찬 갑판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기떼를 찾아 험한 바다를 누벼야 하는 그들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평소에는 “흔들리는 배 위에 있으면 평안하고, 육지에 내리면 오히려 멀미를 느낍니다.”라는 농담까지 하던 선원들이었지만, 그 날 만큼은 진지한 표정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더욱이 선장은 막중한 책임을 더 느꼈던지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느라 고심하는 듯했다. 선장은 1등 항해사에서 이제 막 진급하여 처녀 출항하는 배의 책임을 맡았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나는 선장과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선장에게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고, 선장은 “이제부터 믿음생활을 잘하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며 깍듯이 짧은 인사말을 건넨 후 배에서 내려왔다.

출항준비를 마친 호산나 호는 금세 시꺼먼 연기를 내 뿜으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양손을 흔들어댔다. 부둣가에서 누군가 “무사하게 귀항하거라!”, “만선해서 돌아오너라!”는 외침에 선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예,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로 화답하며 꾸벅꾸벅 절을 해댔다. 비록 부모와 형제, 애틋한 사랑을 나누다 헤어지는 연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별이 가져다주는 마음은 역시 애꿎은 데가 있었다. 이국땅 정든 기지에서 또 다른 이국의 바다로 항해하는 이별은 타국 땅에 사는 이민자들이나 외항선원들만이 별도로 감내해야 하는 이별의 아픔이기도 했다. 무사 귀환을 간절히 바라던 몇몇 사람들은 풍랑보다 더 거센 시간의 파도와 싸워야 하는 선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든지 배가 새까만 점이 될 때까지 부둣가를 떠나지 못하고 손을 흔들어 됐다. 만선의 부푼 꿈을 안고 막 부두를 출발한 호산나 호의 선원들은 마치 타이타닉 호에 몸을 실었던 수천 명의 사람들과 같이 그들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들 모두에게서 사라졌다. 배는 밤낮 쉬지 않고 몇 날 며칠을 달려 예정대로 캐나다와 그린란드 해협을 무사히 통과했다.

호산나 호는 거대한 빙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망망한 대해에서 그물을 내리고 올리기를 거듭하면서 몇 개월이고 떠 있을 참이었다.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곧바로 거대한 거물을 바다에 드르륵 드르륵 내렸다. 마치 “노인과 바다”에서처럼 거센 바람과 파고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고기떼들과 승부를 겨루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 닥친 거센 폭풍과 바람이 배를 덮쳤고, 배는 삽시간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처음 내린 그물을 제대로 한번 끌어올려 보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불행하게도 호산나 호는 출항한 지 꼭 일주일 만에 그린란드 해안,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호산나는 대서양에서, 타이타닉이 되다.
이 충격적인 소식이 라스팔마스 기지에 들려 왔을 때는 하늘도, 땅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못한 새벽시간, 곳곳에서 울린 전화벨 소리는 뭇 사람들의 단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모모옥사님! 큰 일 났습니다. 호산나가 갔습니다.”라는 수화기에서 들려온 말은 정확하게 알아 들 을 수 없었지만,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예상대로 호산나 호는 보이스로 단 한마디, “호산나는 간다.”라는 비명소리만 남긴 채 바다에 수장되었다는 것이다. 3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신붓감을 겨우 만나 항해 후에 결혼하겠다던 선장, 고등학교 입학한 아들의 학비를 마련키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던 갑판장, 가난이 죄처럼 여겨져 “딱 한 번만 더 타자!”라고 독한 마음을 먹고 배에 올랐던 조리장, 배 아니면 오갈 때 없어 배를 천직으로 여기며 억세게 살아왔던 기관장이 끝내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입항할 때마다 가장 먼저 찾아와 싱긋 웃으며 “사모님! 반찬고깁니다.”라며 생선을 듬뿍 들고 아내에게 건네주던 참 좋은 친구들…, 꽃다운 청춘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바다에 잠겨버렸다. [다음호에 계속]
필자/김학우[kmadrid@hanmail.net]/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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