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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의 눈물

[로마칼럼]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

충성스런 제자 누가가 흘린 눈물의 중량은?|

사람은 감정이 격해질 때 눈물을 흘린다. 사람이 감정에 젖어 흘리는 눈물의 양은 적지만 희소가치가 있다. 쿼바디스 도미네의 영화를 보면 황제 네로는 눈물을 흘리게 되면 시종에게 눈물 병을 가져오게 하여 담는 장면이 나온다. 다윗도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달라고 간구하였다(시56:8). 그런데 그 눈물을 분석해보면 98.5%의 수분과 1.5%의 염류와 알부민 등의 단백질과 지방이라고 한다. 그런데 눈물은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고 쉽게 공감의 자리로 인도하는 힘이 있다…

가끔 시내에서 여인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목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몹시 아파온다. 이유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감정에 따라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짐승은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의아심이 있다.
이유는 어릴 때 이웃집 아저씨가 암소를 키웠는데 어느 날 그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암소의 반응 때문이다.
새끼가 성장하여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아저씨가 끌고 가던 날 남겨진 어미 소는 며칠 동안 밤낮으로 울며 새끼를 찾았다.
동네 사람들의 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계속 울어댔다.
음매, 음매하면서 새끼를 찾는 엄마소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커다란 눈에서 말이다.
그 때 나는 짐승도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가에게는 오랫동안 함께하던 스승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스승이 갇혀있는 오스티아 가도의 사형장(현 세분수 수도원)의 한 평 반 정도 되는 작은 지하 감옥, 그 감옥 안과 밖은 쇠창살 하나로 분리되었고 안은 사망이고 밖은 생명으로 나뉘어져 있다.
스승은 쇠창살로 나누어진 밖에 있는 제자 누가에서 마지막 편지를 구술하고 있다. 누가는 스승님의 마지막 편지를 놓치지 않고 받아 적고 있었다.
이윽고 숨을 몰아쉬면서 스승 바울은 말씀한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 왔도다.”
이 말씀을 받아 적는 누가는 자기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을 것이다. 스승 바울을 통해 은혜를 깨달았고 바울을 쫓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길임을 알았기에 편안한 삶을 정리하고 전도자 바울을 쫓은 누가였다.
그 길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결코 마가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복음을 위해 함께 동거 동락하던 위대한 스승 바울이 이제 곧 순교의 제물이 된다고 할 때 누가는 만감이 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꾹 눌러 참으며 바울의 구술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아마도 디모데 후서를 받아 적었던 원본은 온통 흘러내린 누가의 눈물로 범벅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작별의 순간에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가 한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가며 받아 적는 모습을 창살 안에서 바라보는 스승 바울의 눈시울도 벌겋게 충혈 되었을 것이다.
그 충성스런 제자와 떠나야 한다는 현실 앞에 말이다.
목숨이 위험스런 상황에서도 충성스럽게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누가!
그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세상은 데마처럼 약삭빠른 자들로 가득한데 말이다.
충성스런 제자 누가가 창살 너머에서 흘리는 눈물,
그 눈물의 중량은 얼마나 될까?
더 나아가 우리는 과연 그런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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