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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안 핍박과 위축

[실크로드와 복음루트] 최하영 목사/ GMS 우크라이나선교사

(8회) ‘선지자 계약’체결, 네스토리안 기독교 관용

이슬람 왕조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 조로아스터교인을 디미스(dhimmis)라고 불렀다. 이들로 하여금 각기 페르시아 사산 왕조 때의 밀레트(Millet)라는 특수한 사회를 형성토록 하였다. 디미스에 속한 자에게는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하였고 대신 인두세를 부과하게 하였다. 반면, 기독교 성직자들은 인두세를 면제 받아 특혜를 누렸다. 이것이 나중에 성직자들을 부패케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슬람을 세운 무함마드(Muhammad, 571-632)로 부터 시작하여 이슬람 왕조가 점령한 지역마다 기독교인들에게 관용정책, 즉 차별정책을 썼다. 무함마드는 나지란(Najran, 북쪽 예멘)의 아랍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조약을 맺었고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예슈얍 2세(Yeshuyab II, 628-643)와 ‘선지자 계약’를 체결하여 네스토리안 기독교를 관용으로 대하였다. 족장 칼리프(632-661)의 우마르(Umar, 634-644)는 당시 가장 강력한 두 제국 사산 페르시아와 비잔틴 로마를 패배시키고 예루살렘에 첫 이슬람 모스크를 세웠다. 그 다음 칼리프 우스만(Uthman, 644-657)은 무함마드의 딸인 루카야(Ruqayya)와 움큘숨(Umm Kulthum)과 결혼하였는데, 651년 페르시아 국왕 이즈드거드 3세(Yazdegerd III, 632-651)를 피살시키면서 사산왕조(226-651년)를 멸망시켰다. 그 후 사산왕조 내에 있었던 내스토리안 기독교는 이슬람 왕조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였다.

우마야드 칼리프 시대(Umayyad, 661-750)에는 기독교 지역인 다마스쿠스(Damascus)를 정치와 생활의 중심지로 삼고 기존의 기독교인들에게 관용으로 대하였다. 당시 무슬림의 맹습과 잔학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세 기독교 단체인 네스토리안과 멜키트파(Melkite, 비잔틴 정통), 단성론(안디옥의 야곱파)은 이슬람의 통치를 지지하였다. 그 이유는 네스토리안은 사산왕조의 조로아스터교의 지배보다 아랍의 무슬림이 더 관용적이라고 생각하였고, 멜키트파 성직자들은 기독교 비잔틴 제국의 과잉 간섭에서 해방되는 감격이 있었고, 단성론자들은 기독교 정통파에 의한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디옥 야곱파의 주교 미카엘(Mischael)은 ‘칼케돈 신조(451년)의 가혹한 강제보다는 이슬람군의 파괴가 견디기가 더 쉬웠다’고 말하였다. 제 8대 우마르 2세(’Umar II, 717-720)는 무슬림에게는 토지세(Kharaj)만 내게 하였다. 그러나 비무슬림들에게는 토지세와 추가하여 인두세(jizya)를 부과하였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 무거운 인두세 세금때문에 자신들의 신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압바시드 왕조의 제2대 만수르(al-Mansur, 754-775)가 762년에 수도를 다마스커스에서 바그다드(Baghdad)로 옮길때 네스토리안 교회 본부도 셀류키아 크테시폰에서 바그다드로 옮겼다. 그 이유는 아랍인들은 네스토리안들로부터 나중에 유럽으로 전수한 의학과 수학, 천문, 예술, 직물, 염물 등 각 분야에 걸쳐 상당한 교수를 받았었다. 제3대 알 마흐디(al-Mahdi, 775-785)는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디모데 1세(Timothy I)와 친구이나 드문드문 일어나는 핍박을 막지는 못하였다. 마흐디가 비잔틴에게 패하자, 몇몇 교회를 파괴하도록 명령했고 기독교인들의 노예 소유를 금하였다. 제5대 하룬 알 라쉬드(Harun al-Rashid, 785-809)는 압바시드 왕조의 권력의 절정을 이루었으나 기독교에 대한 억압을 좀 더 허용하였다. 하룬 알 라쉬드는 신성로마 황제 샤를마뉴(Charlemagne)와 서방에서 온 기독교 순례자들의 안전한 예루살렘 방문과 그 예배드림에 대한 조약을 맺었다.

나중에 이 조약의 파기로 인해 십자군의 발단이 되었다. 하룬 알 라쉬드는 다시 파괴되고 타버린 교회를 재건축하라고 했지만, 가난한 기독교인들은 그 중 십분의 일도 보수 및 재건축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강제로 비무슬림인 기독교인과 유대인, 타종교 소수파들에게 공개적으로 표시 나도록 그들만의 옷을 입도록 하는 초기의 관례를 회복시켰다. 또한 코란에에 의해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무슬림 앞에 증인으로 설 수 없고 무슬림의 법규에 따라 그 죄 만큼 벌을 받아 신체불구자가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 여자가 무슬림과 결혼하게 되면 무슬림의 예식에 타협하거나 순종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남편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만일 기독교 여성이 무슬림이 되면 기독교인인 남편의 부재시 그가 돌아오기 전에 재혼할 수 있었다. 더구나 기독교 부모가 무슬림이 되면 그들의 미성년 자녀들도 무슬림으로 간주하였다.

제 7대 알 마문(al-Ma’mun, 813-833)은 이슬람 지역에서는 새교회나 회당의 건축을 금지하였다. 제10대 무타왁킬(Mutawakkil, 847-861)은 당왕조 제16대 무종(840-846)의 경교(네스토리안)의 핍박과 병행된다. 무타왁킬은 849년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데오도시우스(Theodosius)를 물러가게 할 정도로 기독교 핍박의 강도를 높였다. 이에 3년간(849-852년) 네스토리안 총대주교직이 공석이 되었다. 그리고 무타왁킬은 850년에 기독교인들에게는 노란 옷과 천으로 표시하는 무례한 관례를 회복시켰다. 네스토리안 역사가 마리(Mari)는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무타왁킬은 그를(데오도시우스)물러나게 한 한 달 후에 바그다드로 보내 감옥에 넣었다, 계속해서 교회들과 수도원들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말 타는 것을 금하였고 옷에 물들이고 와이셔츠에는 점을 넣도록 하였고 금요일에 시장에 나타나서는 안 되었다. 그들의 죽은 자의 무덤은 없애야 했고 자녀들은 학교에서 아랍어를 배워서는 안 되며 가정의 세금은 모스크에 가져와야 했다.···.” 그 중에 조상의 무덤을 남김없이 파괴하여 강제로 손상시켰다는 것은 아시아 기독교인의 눈으로 볼 때 상당히 부끄러운 표시였다. 그리고 이스마일 이븐 하흐마드(Isma’il ibn Ahmad, 892-907)는 893-894년에 탈라스(Талас)와 미르크(Мирк)의 네스토리안 교회들을 모스크로 바꾸기도 했다. 이는 이슬람이 투르크 세계에 대한 종교전쟁을 선포한 것이 되었다. 이후 이 지역은 투르크계 이슬람 지역이 되었다.

압바시드 왕조의 다음 100년간의 이슬람 국가는 시아파 페르시아 아미르(amir)로 순니파 칼리프를 계승하였다. 이 기간을 부이드 기간(Buyids Amir, 945-1055)라 한다. 아미르 알 콰디르(al-Qadir, 991-1031)는 1012년에 기독교인들에게 구별된 옷을 입도록 했고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돌로 치거나 소유를 빼앗도록 했다. 1000년경에는 지난 200년 동안 유지되던 네스토리안 교사와 서기관직도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998년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아랍어 도서목록(圖書目錄)이 발표되면서 아라비아 학문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고, 기독교인들의 학술용어도 시리아어에서 아랍어로 쓰여 졌고, 과학과 철학의 저술도 헬라어 대신 아랍어로 쓰여 졌다. 오히려 이슬람 고유문화를 위하여 기독교가 방해가 된다는 미명하에 박해를 받게 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이와같이 이슬람 왕조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 조로아스터교인을 디미스(dhimmis)라고 불렀다. 이들로 하여금 각기 페르시아 사산 왕조 때의 밀레트(Millet)라는 특수한 사회를 형성토록 하였다. 디미스에 속한 자에게는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하였고 대신 인두세를 부과하게 하였다. 반면, 기독교 성직자들은 인두세를 면제 받아 특혜를 누렸다. 이것이 나중에 성직자들을 부패케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네스토리안의 총대주교가 디미스 공동체의 총대주교가 되어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5~14세기 네스토리안 주교 수 통계를 보면 650년부터 1000년의 어간이 이슬람 왕조의 통치 시기와 맞물려져 그 시기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얼마나 위축되었었는지 엿볼 수 있다. 더구나 경교가 왕성했던 당왕조가 멸망하면서 네스토리안은 위축되어 갔고, 복음이 일찍이 들어가 북방으로 왕성하게 전파했던 중앙아시아와 북인도는 이슬람으로 바뀌어갔고, 남인도의 도마파 기독교인들은 카스트 제도 때문에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던 시기였다.

이렇게 무함마드부터 시작하여 우마야드 칼리프(661-750), 압바시드 칼리프(749-1258)의 이슬람 왕조가 사마니드 왕조(819-1005)와 사파리드 왕조(Saffarids, 867-1495), 카라가니드 왕조(Karakhanid, 922-1211), 부이드 왕조(932-1062), 가즈나비드(Ghaznavid, 977~), .호레즘 왕조(Qwarezm, 1077-1231), 셀죽크 왕조(Seljuks,1038-1194), 살구리드 왕조(Salghurids, 1148-1270), 이스마일 왕조(1100-1273), 아이우비드 왕조(Ayyubids, 1169-1500, 맘룩크 왕조(1250-1517) 등으로 번져갔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네스토리안은 살아남아 몽골제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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