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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정정숙 박사

[목회와 독서교육]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

무엇보다도 상담에 대한 성경적 접근을 배운 것이 커 |

1973년 3월. 총신대학교 사당 캠퍼스는 나에게 결코 작지 않은 공간이었다. 당시 학교 도서관의 규모는 지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서가에 꽂혀있는 다양한 많은 책들은 내게 작은 충격이었다. 또한 첫 수업 시간에 뵙게 되는 모든 교수님들이 내게는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인생의 선배들이요 학문의 선진들이셨다.

당시 학교 이름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대학’이었다. 줄여서 총회신학대학이라고 불렀다. 입학 당시 노량진초등학교 맞은 편 주택가에 살고 있던 나는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고, 가끔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가기도 했다. 학우들 중에는 신앙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친구도 있었고, 점심을 거르는 친구도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나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동태를 떼어다가 새벽 골목길을 누비며 팔기도 했고 재래시장 근처에서 주방용 수세미나 나프탈렌을 팔기도 했다. 물론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공부를 마치고 졸업할 수 있었다.

신학과 1학년 시절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이면서도 그런 줄도 모르고 있던 교만한 신입생이었다. 성경을 몇 번 통독했을 뿐이고, 목사님들의 성경공부반과 사경회 같은 집회에서 조금 귀동냥한 것밖에 없으면서도, 마치 성경을 통달한 자인 것처럼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학문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벗어나야 할 수많은 우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만남을 통해, 특히 스승의 도움으로 그의 세계와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고, 배움의 깊이도 더해 가는 법이다. 정정숙 교수님은 기독교 교육과 상담에 눈을 뜨게 해주신 은사이시다. 학부 시절에 친구들은 많은 훌륭한 스승을 접할 수 있었다. 역사신학자로서 1학년 <구약개론>을 자청하여 강의해 주셨던 김의환 교수, 주일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신 김득룡 교수, 겸손하신 구약학자 김희보 교수, 독특한 분위기로 복음서를 강의하신 한제호 교수, 영적 품위를 잃지 않으신 조직신학자 신복윤 교수, 현대신학과 변증학을 가르치신 박아론 교수, 멋쟁이 영문학자 최종수 교수와 조신권 교수, 성실하게 논어와 독어를 가르치신 이형국 교수, 서양사를 안내해주신 이석우 교수, 그리고 성경 통독을 강조하신 김진택 목사님 등등. 세월이 지난 후에야 많은 은사님들이 나의 삶과 배움에 끼친 은혜를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다. 대학과 신학연구원 그리고 대학원에서 은혜를 입은 많은 은사들을 이 자리에서 모두 언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졸업논문의 제목과 가목차를 정한 후, 나는 정정숙 교수님 자택을 방문하여 도움을 청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논문의 기본도 모르면서 연구 주제(한국교회 청소년교육의 가치관 확립)와 목차를 정한 후 교수님께 보여드린 ‘치기만만한’ 행동이었다. 논문 제목에 관하여 간단한 설명을 들으시고 논문 집필 계획을 훑어보신 후 교수님은 몇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기억에 남는 말씀 중 하나는 논문의 연구 대상이 너무 추상적이고 폭이 넓다는 점이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손을 댈 수 없는 논문제목이요 목차였다. 논문에 관한 지도를 받고 집을 나설 때 정교수님은 작은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부군 김남식 박사께서 번역하신 J .M. 스피어의 책이었다. 그 책이 바로 <칼빈주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새순출판사)이다. 학부 시절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책이었다. 내용을 훑어보면서 좀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중에 그 책이 헤르만 도예베르트의 사상을 소개한 입문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 교수님의 영향 중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도 상담에 대한 성경적 접근을 배운 것이다. 대학원(박사 과정) 시절 교수님에게서 <성경적 상담학>이란 과목을 석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수강하였다. 교수님은 첫 시간에 많은 상담학 관련 도서를 소개해주셨고, 특히 J. E. 아담스의 원서를 읽고 정리하는 과제도 주셨다. 당시에는 읽고 요약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부족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과제를 한다면 핵심을 잘 파악하고 요약하여 좀 더 나은 과제물을 제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교수님은 후에 그 책을 완역하여 <상담학개론>이란 이름으로 출간하신 것으로 안다.

이 글을 쓰면서 교수님의 따님에 대한 작은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따님이 방과 후 정 교수님 교수실에 들려서 잠시 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두 따님이 이제는 장성하여 미국 대학교의 교수로서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신앙과 말씀 안에서 반듯하게 성장하여 부모님처럼 후학을 양성하는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부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끝으로 정 교수님의 제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한국교회의 독서문화를 위해 한 귀퉁이에서 일하는 것을 보시고, 학술 세미나에서 논문을 발표할 기회를 주셨고, 또한 학술지 <상담과 선교>에 졸고를 실어 주셨다(특집: 독서치료 : 독서를 통한 성숙과 영적 치료). 필자는 그 글에서 “독서를 영적 성숙과 영적 치료에 관련지을 때, 우리는 영적 독서의 전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전통은 교회사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중요한 영적 유산이다.”라고 언급하였다.

필자는 학부 시절 학교 방침의 도움으로 영어 실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받았다. 당시 김희보 학장께서 교수님들에게 원서 강독을 권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과목에서 원서를 접하게 되었고, 다소 힘이 들었지만 그 덕택으로 영어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번역의 기회가 주어져서 1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 중에 한 권이 <기독교교육학>(마빈 테일러 편, 한국장로교출판사)이다. 이 책이 1995년 봄에 나왔을 때 나는 정 교수님께 증정본을 전해 드렸다. 사실 그 책의 필자들 중에 신정통주의 입장의 기독교교육 학자들이 있어서 정 교수님은 내게 한마디 조언을 해주셨다. 역자의 이름을 보고 책의 성격을 판단하기도 하는데, 기독교교육을 배우는 후배들이 이 책을 ‘개혁주의’ 입장의 책으로 오해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번역서라도 자신의 신학적 입장이나 가치관을 양보함이 없이 선별하여 소개하여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고, 지금도 그 가르침을 마음에 두고 있다.

이제 교수님을 기리는 글을 두서없이 쓰면서 부족한 제자는 신앙인으로서의 스승의 모범과 학자로서의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되새겨 본다. 정 박사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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