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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시론

그 때로 돌아가자, 그 때가 행복이거늘

[유크시론 154호]  발행인 이창배 목사

하늘도 무거우면 비로 떨구듯 털어낸다. 가벼움이 영성이 아닌가? 그 때로 돌아가자. 가진 것도, 쥔 것도 없지만 홀홀 주님만을 붙잡고 살 때 그 때가 행복이거늘.

늦은 밤,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비는 리듬을 타고 내린다. 창문 유리를 때리는 소리는 멋없이 툭툭 거리며 무뚝뚝 하기 짝이 없어 귀를 거슬리지만 그래도 그 너머 푸른 잎 무성한 나무에 사륵사륵 스치듯 내리는 빗소리가 있어 적잖은 위안이 된다.

이 밤에 새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 몸으로 온갖 비를 다 맞으며 밤을 지새는 것은 아닐지, 별난 걱정을 다한다. 그래도 우짖는 소리 없는 것을 보면 어디선가 잠을 청하고 있는가 보다. 한결 내 마음도 개운해 진다. 그러고보니 이 시간 창문에 불빛이 새는 곳은 유독 내 서재뿐인가 싶다. 동리의 주택가엔 불켜진 집이 안 보인다.
7월 여름밤, 자정을 넘기며 아직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지금, 동무삼아 주는 빗소리 있어 그래도 외롭지 않으니 남다른 고마움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길건너 가로등 불빛이 흐리고, 흠뻑 젖은 땅바닥에 물기가 번지는 것을 보니 두어시간 내린 비가 작은 개울을 이루며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다.

이 흐르는 물은 어디로 갈까? 여기서 저 멀리 라인강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까? 조금 흐르다 도랑을 만나고, 실개천을 만나서 내려가다보면 언젠가 큰 강에 도착하겠지. 그렇게 흐르다보면 또 멀리 대서양까지도 나가겠구나. 종이배 하나 접어볼까? 참 별스런 생각도 다 해본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동심인지 모르겠다. 심술궂게 창문을 노크하는 불청객같은 빗방울 소리에 잠을 청하다가도 그만 깨고말 것만 같다. 점점 오는 빗소리가 세지는가 싶더니 멀리서 우르릉 우뢰소리도 들려온다.  그래도 독일땅에 살면서는 세찬 태풍 지나는 소리가 안들려서 다행이고, 콩볶듯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줄줄이 안들려 어느 때는 여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보낸 적이 얼마이던가. 참 격세지감이 든다. 그러고보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갖춰진 문화생활에 익숙해지다보니 사람이 사는 게 무언지 지루하기 짝이 없어 이젠 인생 감각마져도 무디어진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깊은 병, 그 젊은 날의 자화상
학창시절, 미술학도로 인생항로를 정하고 그림에만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동양화를 좋아하던 탓에 수채화가 좋았고, 담채화를 주로 그렸던 기억이 많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 미술학도가 되어서 늘 미술가방을 챙겨다니던 시절에 무슨 낭만이 있다고 비를 쫄딱 맞고 돌아다니는 게 버릇처럼 됐었다.

수업시간에도 비만 오면 왠지 마음이 싱숭거려서 견딜 수 없어 그저 운동장에 나가 비를 맞고 와야만 했었다. 그러다가 아예 비가 오는 시간에는 수업시간을 빼먹게 됐고, 그나마 그림시간에는 선생님에게 혼이 나면서도 그림에 손이 안갔다. 우두커니 창가에 턱괴고 쏟아지는 비 구경하는 것이 낙이 됐었다. 어쩌다 그림을 그릴라치면 그야말로 종이가 온통 시커머죽죽할 정도로 물감에 물감을 덧칠해 결국은 망치고 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나중에는 동기들은 물론하고 지도교수가 비오는 날은 아예 열외를 시켜주기까지 했으니 아무튼 비오는 날은 공치는 시간이었고, 혼자 고독을 삼킬 수 있도록 해방된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슨 연애를 한다거나, 누구를 짝사랑 한 것도 아니다. 그저 홀로 고독을 즐기며 우울함에 젖어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았었던가 싶다. 거기에 비와 함께 젖어드는 음악이 있다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갇힌 것처럼 그렇게 젊은 날의 내 자화상은 깊은 병이 들었었다. 그러다가 결국 미술을 포기했다.

스스로가 견딜 수 없는, 그리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아득한 절벽을 마주한 사람처럼  더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폐인처럼 살며, 어둠에 깊이 잠긴 채 끊임없이 빠져드는 수렁을 경험했었다. 너무도 아까운 청춘의 황금기를 그렇게 허비해 버리고 겨우 정신을 차려서 새롭게 한 일이 바로 글 쓰는 일이었다.

결국 그 무서운 우울증과 고독의 깊은 터널을 빠져나온 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애의 반전을 겪고난 후 부터이다. 아마도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기에 그렇게 하셨을까, 무엇을 먹어도 튼튼했을 20대 중반, 위 천공이라는 급작스러운 상황을 만났고, 세개의 구멍이 난 위에서 독한 위액이 복부로 흘러가며 급성복막염을 일으켰다. 그것도 집을 떠나 경부선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 안에서이다.

우여곡절이 많다. 그러나 결국엔 이 일로 거듭났다. 뒷말로는 3%의 가능성, 그것도 불확실한 기우에 근거했다지만 다시 살아났고,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비로서 했으니, 이제 돌아보면 그 때 온전한 중생을 했던 것이다. 그 죽음의 경계애서 나를 살리신 그 분, 무언가 붙들어 보려고 그렇게 몸부림쳤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비로서 완전하신 그 분을 만난 게 감사할 뿐이다.

너는 행복자로다.
비온 뒤 화창하게 개인 세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통 만물이 푸르고, 깨끗하게 말끔히 개인 하늘, 투명한 햇살이 하늘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에 기대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지나간 스물여섯의 생애는 지우개로 지우듯 털어내 버리고, 지금부터 내 생애가 시작이라고, 새롭게 카운트를 하면서 지금이 한 살이라고 했던가. 그랬었다. 갓 태어난 갓난아이 같은 심령이 되고보니 마치 새처럼 하늘을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도 남보다 스물여섯 뒤늦은 삶을 사는 늦깍이라는 생각을 이따금 해본다. 그 나이가 사실은 내 영혼의 나이이다. 주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됐으니 틀린 계산은 아니다. 그 뒤로부터 나에게 그 지독했던 날들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그 때로 주어진 새로운 인생의 하프타임을 경주했고, 그 반환점을 돌았다. 이젠 후반전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보며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같은데, 분명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산다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그 다르다는 심정을 늘 느끼며 산다고 해도 이제까지 다른 어려움과 위기와 고통이 왜 없겠는가. 그 일들을 다 돌아보며 하나 둘 끄집어 내라면 얼마나 될런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자리를 지키고 산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지금 이 시간은 몇시인가? 어느덧 밤의 깊은 정적은 더 깊어가고 사위는 고요한데, 그 사이 툭툭 떨어져 유리창으로 퉁겨지는 빗방울 소리만 점차 커져간다. 정말로 아득한 과거를 순식간에 훑어낸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 저 먼 기억의 창고에서 케케묵은 먼지를 떨구어내면서 하나 둘 드러난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백한다. 그 부르심에서 여전히 이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고, 행복함이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33:29)

그렇다. 이제로 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무게를 더는 연습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어느덧 육적인 비만이 아니라 영적인 비만에 걸려있는 것이나 아닐지, 내가 붙잡아 두고 있는 것들이 나를 무겁게 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늘도 무거우면 비로 떨구듯 털어낸다. 가벼움이 영성이 아닌가? 그 때로 돌아가자. 가진 것도, 쥔 것도 없지만 홀홀 주님만을 붙잡고 살 때 그 때가 행복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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