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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같은 그리스도인다운 한 사람

[유크시론 205호]  이창배 발행인

이달을 여는 창: 2018-12월호 사설

세상으로 볼 때 참으로 볼품이 없을 만큼 대강절 초가 그렇다. 사람들의 눈이 번쩍 떠질 만큼 화려한 장식도, 구호도 없다. 대강절에 불 밝히는 초 하나가 세상을 밝힐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러면 진정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 …

12월 첫 주일. 첫 대강절 주일을 보냈다. 보라색 예전 색을 배경으로 첫 촛불에 불이 켜졌다. 이 촛불의 이름을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이라고 한다. 이는 임마누엘 되신 메시아의 오심을 대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함을 나타내는 의미를 담는다. 이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보면, 세상살이에서 지치고 공고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영적인 혼탁함과 어두움에 가려져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빛, 진리의 빛을 밝혀주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아낸 의식이다.
오후 4시가 되면 벌써 어둑어둑해지는 12월로 접어들자마자, 곳곳에서 창가에, 정원에 성탄을 밝히는 전등불이 켜지고 있다. 집을 나와 동네를 둘러보면 예년과 비교하면 더 많이 불이 켜진 느낌이 든다. 어느 집은 정원에 얼마나 많은 LED 전구로 장식을 해놓았는지 장관을 이루는 곳도 있다. 하지만 과연 대강절을 손꼽아 보내며 성탄의 그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며 밝히는 빛에, 그 의미까지도 담아낸 것인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슈퍼 마당에는 어디에서 실려 왔을 크리스마스 장식용 나무가 밑동이 잘린 채 자신을 선택해 줄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를 구입하기 위해 이 나무, 저 나무를 고르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슈퍼 안에도 각종 크리스마스 장식이 진열되어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각종 불을 밝히는 전구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뿐만이 아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각양의 장식들이 매대에 그득하고, 누군가에게 나눠줄 성탄 선물로 포장된 상품들이 저마다 화려한 장식들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녁의 시내는 또 어떤가?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불빛만으로도 아주 아름답다. 캐럴에, 음식물의 향취까지, 온통 미각과 시각, 냄새를 자극하는 상점과 상점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 화려한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도 한몫을 거둔다.
한마디로 축제 분위기이다. 제법 세상에 알려진 유럽의 크리스마스 시장을 보기 위해 몰려오는 관광객들도 많다는데…. 어딘지 모르게 이 화려한 시즌의 물결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몰려가는데, 그 뒷맛이 마냥 씁쓸해지는 건 또 뭔가?

낮에 등불을 켠 철학자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자, 이를 이상하게 본 사람들이 “자네는 왜 밝은 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가?”하고 궁금해하자, 디오게네스는 “사람 같은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혹시 등불을 들면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대답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쯤에서 뭔가 건드려지지 않는가? “사람 같은 사람이란?” 무슨 의미일까? 다같은 사람인데, 뭐가 달라서 사람 같다고 하는 것일까? 디오게네스가 찾아 나선 인간형은 이성과 덕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그를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사는 인간이다.
사람 같은 사람은 관습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디오게네스는 자신처럼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동료를 찾아다니며 “사람 같은 사람을 찾고 있다!”라고 외쳤다. 결과적으로 디오게네스가 찾아 나선 사람은 관습과 도시, 정치에 둘러싸여서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일광욕하고 있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소원을 묻자,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했다는 말로 유명하다. 평생에 번듯한 집도, 대단한 저서도 가진 것도 없이 나무통 속에서 살았지만, 당시 알렉산더 대왕의 부러움을 산 철학자이다. 자신만의 햇볕을 권력으로, 재물로 바꾸려 하지 않았던 사람, 가난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自足) 생활을 실천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게 사람 같은 사람이 없는 것인가? 디오게네스가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망정, 이성과 덕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안 보여 대낮에도 등불을 들어야 했다면, 이 시대는 어떤가?

그리스도인 같은 사람
이 시대는 세상 어디고 불빛이 범람하는 시대이다. 불빛이 없어 어두운 것이 아니다. 불을 밝힐 등이 없어서 어둠이 세상을 덮은 게 아니다. 역설이지만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적인 어둠이다. 세상의 빛으로는 밝히지 못하는 이 어둠에 대해서 성경이 증거 해준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9-1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으로 보지 못하면 결코 볼 수 없는 영적 흑암이 세상을 덮고 있음이다. 곧, 죄로부터 온 것이다.
다시 로마서 5:12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며 죄와 사망의 출처가 바로 사단이라고 밝힌다. 이 세상을 가득히 덮고 있는 흑암의 실체가 죄의 어두움이며, 음습한 사망의 그늘이다. 이 진리를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깨닫게 된 사도 바울이 탄식했다. 그가 슬퍼하며 외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는 고백이다.
지금은 밤이 깊다. 또한, 겨울철의 북유럽은 밤이 길고 춥다. 하지만 영적인 밤은 또 어떤가? 이 밤을 밝히도록 이제는 진리의 빛을 높이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4-16).
세상으로 볼 때 참으로 볼품이 없을 만큼 대강절 초가 그렇다. 사람들의 눈이 번쩍 떠질 만큼 화려한 장식도, 구호도 없다. 대강절에 불 밝히는 초 하나가 세상을 밝힐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러면 진정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 우리 각자 한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더 늦어지기 전에, 그리스도인 같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야 한다.

이달의 말씀 ㅣ 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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