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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자 훌라구와 네스토리안 기독교

[실크로드와 복음루트] 최하영 목사/ GMS 우크라이나선교사 |

(14회) 기독교 승리 이끈 두 위대한 빛이 떠나다 |

1265년에 홀라구가 사망하고, 몇 개월 후 토쿠즈 카툰도 죽자, 당시 기독교인들은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1265년에 왕중의 왕 훌라구가 이 세상을 떠났다. 이 사람의 지혜와 그의 위대한 혼과 그의 놀라운 행위들은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그해 여름 믿음의 여왕 토쿠즈 카툰 마저 세상을 떠나자 기독교를 승리로 이끈 이들 두 위대한 빛이 떠남으로 해서 전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은 큰 슬픔에 잠겼다”고 하였다….

11세기 초 북방 투르크 몽골계(Turko-Mongolian) 유목민인 케레이트족(Keraites)이 복음화되었다. 케레이트족의 마르쿠즈 칸(Marghuz Khan)과 그의 부족 남자 20만 명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마르쿠즈 칸의 손자인 토그릴 왕칸(Toghril, Wang Khan, 1131~1203)과 자하감보(Jakha-gambu) 형제도 네스토리안 기독교인이 되었다. 토그릴은 칭기즈칸(Ghinghiz Khan, 1160~1227)의 아버지 예수게이(Yessugai, 1134~1171)와 의형제(anda, blood-brother)를, 칭기즈칸과 의부자를 맺었었다. 또한 칭기즈칸은 자하감보와도 절친이었다. 그 자하감보의 딸이며 네스토리안인 소르각타니(Sorghaghtani, 1190-1252)가 칭기즈칸의 막내 아들 톨루이(Toluy, 1190-1232)의 아내가 되었다. 톨루이와 소르각타니 사이에 일 칸국(Ilkhan, 1256-1353)을 세운 훌라구(Hulagu, 1218-1265)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훌라구의 아내는 토그릴 왕칸의 손녀인 도쿠즈 카툰(Dokuz Khatun)이다.

1254년 10월 19일 훌라구가 일칸을 세울 때에 선봉에 선 사령관은 케드부카(Kedt-Buka)로서, ‘황소’라는 별명을 가진 네스토리안 기독교인이었다. 1258년 2월 훌라구는 압바스 왕조(Abbasid, 750-1258)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였을 때 안디옥 공국(Principality of Antioch, 1098 – 1268)과 트리폴리(County of Tripoli, 1109년 – 1289년)의 보헤몽드 6세(Bohemond VII, 1252 – 1275)와 그의 장인 아르메니아(Armenia) 헤툼1세(Hethum I, 1226 – 1270)와도 합세하였다. 한편, 바그다드의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마키카 2세(Makika II)의 교회로 피난처 삼은 기독교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여왕 도쿠즈 카툰이 보호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37대 칼리프 알 무스타심(Al-Mustasim, 1242-1258)을 마지막으로 압바스 왕조는 멸망하였다. 그리고 이슬람 통치 약 630년 기간 동안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켰던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일칸의 왕후 도쿠즈 카툰 덕분으로 지속될 수 있었다. 훌라구가 이집트를 공격하다가 큰 형인 몽골제국 제 4대 대칸 몽케(Möngke, 1251-1259)의 부보를 듣고 케드부카 장군과 2만 명의 군대만 남겨 두고 회군함으로써 이집트에서의 이슬람문화 자취는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사운더(J. J. Saunders)는 말하길, “1241년 제2대 대칸 오고데이(Ogetai, 1229-1241)가 죽자 기독교 유럽이 구원받았고 1259년 몽케가 죽자 무슬림 아시아가 건짐 받았다”고 하였다.

한편, 1260년 훌라구 없을 때에 케드부카는 이집트 맘룩크 왕조(Mamluk, 1250-1517) 쿠투즈 (Qutuz, 1259-1260)와 그 용병 사령관 바이바르스(Baibars, 1223/1228 – 1277)와 나사렛(Nazareth)부근인 아인 잘루트(Ain Jalut)에서 싸웠으나 처음으로 패하였다. 1262년 훌라구가 돌아왔을 때에 몽골제국의 최초로 무슬림 칸이된 킵착칸국(Kipchaks)의 제3대 베르케(Berke, 1257-1266)와 맘룩크 제4대 술탄이 된 바이바로스(1260-1277)와 연합하여 훌라구를 공격하였다. 베리케는 훌라구가 무슬림 친구 압바스의 마지막 칼리프 알 무스타심과 무슬림들을 죽였다는데 분노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대몽골제국의 연대는 깨지고 킵착칸국과 일칸 간의 첫 내전(Civil War)이 발생한 것이다. 여기에 몽골제국의 더 큰 내전이 새 대칸을 위한 훌라구 형제들인 쿠빌라이(Kublai Khan, 1215-1294)와 아릭부케(Ariq Buke, 1219-1266)와의 50년간 있었다. 훌라구는 쿠빌라이 편이였고 킵착칸국과 차카타이(Chagatai Khanate, 1225-1340), 오고데이 가문(House of Ogedei)은 아릭부케를 지지하였다. 이처럼 몽골제국의 내전으로 인해 아인 잘루트 전투 패배이후 몽골제국은 한번도 이집트를 정복하지 못하였다.

훌라구는 바그다드의 옛 압바시드 칼리프 궁전을 네스토리안의 총대주교 마키카 2세(Makika II)에게 사용토록 할 정도로 총대주교에게 특별히 대우를 해주었고 수도는 마르가 (Maragha)에 두었다. 이 시기를 타타르의 평화(the Peace of Tartan)라 불러질 정도로 동서간의 여행과 교역이 자유로웠다. 그래서 니콜로 폴로(Niccolo Polo)와 마페오 폴로(Maffeo Polo)가 부하라에서 3년간(1261-1264) 상업을 하였고 1266년 칸발릭(베이징)에 갈 수 있었다. 그 후 1271년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와 함께 중국에 다시 갔었다. 폴로는 24년만인 1295년에 베니스(Venice)로 돌아와 동방견문록(The Travels of Marco Polo)을 썼다.

도쿠즈는 늘 훌라구와 동행하였고 여행 중에도 짐마차에 휴대용 네스토리안 예배당을 운반하고 다녔다. 무슬림 역사가 라쉬드 알딘(Rashid al-Din)은 “그 왕후(도쿠즈)가 기뻐한 것은 훌라구가 (기독교인들)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고 새교회를 계속적으로 세우도록 모든 물품을 후원한다는 것이고 자신의 천막(ordu) 문에는 종들이 울러 퍼지는 예배당이 항상 있었다는 것이다”고 기술하였다. 1264년 도쿠즈의 종교적 고문인 아르메니아인 역사가 바르단(Vardan Areveltsi, 1198-1271)이 훌라구 궁전에 있을 때에 아르메니아(Armenia)와 조오지아(Georgia)의 기독교 왕들과 안디옥 공국의 십자군 왕자가 배석한 자리에서 훌라구가 사적으로 밝힌 내용을 적고 있다. “나의 어머니(소르칵타니)는 기독교인이었고 나도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애착을 느꼈다…우리는 기독교를 사랑한다…그리고 우리의 종교는 우리 궁전에서 인기 있는데 반하여 그들(나의 6촌)은 무슬림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훌라구의 6촌들은 무슬림 베리케 킵착 칸과 그의 동생 투크 티무르(Tukh-Timur)를 말한다.

1265년에 홀라구가 사망하고, 몇 개월 후 토쿠즈 카툰도 죽자, 당시 기독교인들은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1265년에 왕중의 왕 훌라구가 이 세상을 떠났다. 이 사람의 지혜와 그의 위대한 혼과 그의 놀라운 행위들은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그해 여름 믿음의 여왕 토쿠즈 카툰 마저 세상을 떠나자 기독교를 승리로 이끈 이들 두 위대한 빛이 떠남으로 해서 전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은 큰 슬픔에 잠겼다”고 하였다. 당시 모든 동방기독교 공동체(네스토리안과 아르메니안 교회, 야곱파 교회)도 훌라구와 도쿠즈를 “기독교 믿음의 두 개의 위대한 별”, “또 다른 콘스탄틴(Constantine), 또 다른 헬렌(Helen)”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네스토리안 총대주교 마키카 2세(Manicha II)도 사망하자, 중동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슬픔과 불길한 예감을 가져왔었다. 그 첫 사례가 새총대주교 덴하 1세(Denha I, 1281년 사망)가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세례식을 베풀자, 이에 무슬림들이 폭동을 일으켜 덴하 1세는 바그다드의 통치자인 주바이니(Juvaini)의 집에 피난처를 얻었다.

훌라구의 장자 아바가(Abaga, 1265-1282)가 제2대 일칸국의 칸으로 네스토리안 기독교인되어 아버지 훌라구처럼 기독교인을 보호하였다. 이렇게 훌라구의 손자 제7대 가잔(Ghazan, 1295-1304)이 무슬림이 될 때까지 37년간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이슬람의 핍박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성장하였다. 이런 기독교 분위기가 오늘 이 지역에 다시 도래하길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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